본문 : 사사기 15:11-20
11 그래서 유다 사람 삼천 명이 에담 바위 동굴에 내려가서 삼손에게 말하였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지 않소? 그런데 당신이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런 일이 미치게 하오?” 삼손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그들이 나에게 한 대로 나도 그들에게 갚아 주었을 뿐이오.”
12 그러자 그들이 삼손에게 말하였다. “우리는 당신을 묶어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 주려고 왔소.” 삼손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렇다면 나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하시오.”
13 그들은 삼손에게 다짐하였다. “결코 죽이지 않겠소. 우리는 당신을 묶어서 그들에게 넘겨만 주겠소. 결코 우리가 당신을 죽이지는 않겠소.” 그리고 그들은 새 밧줄 두 개로 그를 묶어서, 바위 동굴에서 데리고 나왔다.
14 삼손이 레히에 이르자 블레셋 사람들이 마주 나오며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 때에 주님의 영이 그에게 세차게 내리니, 그의 팔을 동여매었던 밧줄이 불에 탄 삼 오라기같이 되어서, 팔에서 맥없이 끊어져 나갔다.
15 마침 삼손은 싱싱한 당나귀 턱뼈 하나가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손에 집어 들고,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이나 쳐죽이고 나서,
16 이렇게 외쳤다. 나귀 턱뼈 하나로 주검을 무더기로 쌓았다.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이나 쳐 죽였다.
17 이렇게 외치고 나서 삼손은 손에 든 턱뼈를 내던지고 그 곳 이름을 라맛레히라고 불렀다.
18 삼손은 목이 너무 말라서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께서 친히 이 크나큰 승리를 주님의 종의 손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목이 타서 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붙잡혀 죽어야 하겠습니까?”
19 하나님이 레히에 있는 한 우묵한 곳을 터지게 하시니, 거기에서 물이 솟아나왔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자, 제정신이 들어 기운을 차렸다. 그래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레히에 있다.
20 삼손은 블레셋 사람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다.
———————————————-
삼손이 결혼식에서 수수께끼 내기를 하다가 져서 블레셋 사람 30명을 죽인 일과 그의 아내를 장인이 다른 블레셋 사람에게 주었다는 말을 듣고 분노하여 그 지역 밭과 과수원, 추수한 추수더미들을 불태워 큰 손해를 입혔고 그 일로 인해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장인과 그의 아내를 죽이자 복수하겠다고 수많은 블레셋 사람을 죽인 삼손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보복을 하겠다고 이스라엘 레히 지방을 치러 올라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천명을 이끌고 블레셋 사람들을 닥치는대로 죽이고 숨어 있는 에담 바위 동굴로 찾아옵니다. 삼손과 함께 블레셋 사람들을 물리치려고 온 것이 아니라 문제를 야기시킨 삼손을 잡아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겠다고 찾아 온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라고 하나님께서 삼손을 사사로 택하시고 나실인으로 살라고 신분과 사명을 주셨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호감과 존경이 아닌 문제를 일으키는 난봉꾼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잡아서 적국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기겠다고 3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 것입니다. 안타깝고, 한심하고, 한탄스러운 것입니다. 이러한 삼손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이 되지 않도록 말씀에 통제 받고,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 합당한 거룩하고 구별된 삶,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자로 서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삼손은 자기를 잡으러 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우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12절에 자기를 죽이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겠다는 맹세를 받고 스스로 묶여서 그들 앞에 나옵니다. 삼손을 묶어서 레히에 모여 있는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겨주려고 하자 블레셋 사람들은 기쁜 함성을 지릅니다.
하지만 이 때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임하며 삼손은 자신을 결박한 새 밧줄을 쉽게 끊어버리고 마침 눈에 보이는 나귀의 턱뼈를 집어 들어 블레셋 사람 천명을 쳐서 죽였습니다. 절대 이길 수 없는 1대 1000명의 전쟁에서 변변한 무기하나 없이 나귀 턱뼈로 승리한 것입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의 도우심과 힘 주심으로 이길 수 있는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승리한 후 삼손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16절입니다. “블레셋 사람을 천 명이나 쳐죽이고 나서 이렇게 외쳤다. 나귀 턱뼈 하나로 주검을 무더기로 쌓았다. 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이나 쳐죽였다”새 번역 성경에는 주어를 번역해 놓지 않았지만 영어로 보면 이렇게 삼손이 외쳤습니다. “With a donkey’s jawbone I have killed a thousand men”“내가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죽였다”
삼손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혼자서 천명과의 싸움에서 죽지 않고 승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내가 당나귀 턱뼈 하나로 천 명을 죽였다”라며 자신이 했다고 스스로를 높이는 것입니다. 삼손의 삶에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없었습니다. 잘하면 내가 잘 한것이고 못하면 다른 사람을 탓하고 원망하는 삶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로 살아 온 것이 아니겠습니까? 넘어지고 쓰러졌을 때 일으켜 세우신 분, 앞이 캄캄하고 빠져 나올 수 없을 것 같은 문제를 만났을 때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이끄시고 보호하셨던 손길들을 깨닫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손길과 보호하심, 인도하심, 역사하심을 깨닫고 감사하는 삶이 진정 믿음의 삶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손길을 깨닫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며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18절을 보면 삼손이 천명이나 싸워서 이겼지만 여전히 많은 적군들이 있는 상황인데 목이 심하게 말라 더 이상 싸울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그럴 때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삼손은 목이 너무 말라서 주님께 부르짖었다. “주님께서 친히 이 크나큰 승리를 주님의 종의 손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목이 타서 저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붙잡혀 죽어야 하겠습니까?”하나님에 대한 예배나, 감사, 찬양은 그의 삶에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는데 삼손은 자신이 적군에 붙잡혀 죽어야 할 상황에서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입니다. 평상시의 삶에서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고, 간구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개인적 곤경을 벗어나기 위한 부르짖음이었다는 것입니다.
곤경과 어려울 때라도 하나님께 간구하고 부르짖는 것은 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앙의 삶이 바로 사사기 전체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모습이었습니다. 자기 편한대로, 육신과 정욕을 따라 세상을 쫒는 삶, 즉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다가 그로 인해 고난과 곤경, 억압과 압제에 고통을 당하면 그제야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으며 자신들이 당하는 고난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고난과 고통, 압제와 억압에서 벗어나게 하시면 다시 우상을 섬기는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택한 사사요, 나실인이었던 삼손조차 그러한 모습의 신앙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이것은 삼손이 처음으로 하나님을 찾은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18절을 다시 보면 “주님께서 친히 이 크나큰 승리를 주님의 종의 손에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제가 목이 타서 저 할례 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붙잡혀 죽어야 하겠습니까?”라고 자신이 1000명을 죽였다 라고 했던 말을 바꿔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주님의 종의 손에 승리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서 목마름에서 벗어나 블레셋 사람들에게 죽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였다면 그런 삼손의 요청에 어떻게 반응했겠습니까? 나실인으로서의 거룩함을 지키지 않고, 하나님이 금하신 블레셋 이방 여인과 결혼을 했고,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분노함을 절제하지 않고 개인적인 복수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방금 전에도 하나님이 주신 힘으로 1000명의 군사들과의 전쟁에서 죽지 않고 승리했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내가 죽였다.’라고 하며 자화자찬하고 자기에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데 목이 말라 죽을 지경이 되니까 주의 종을 살려 달라고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외면하고 너는 안되겠다라고 포기할텐데 놀랍게도 하나님은 그런 삼손에게 긍휼을 또 베풀어주십니다. 19절입니다. “하나님이 레히에 있는 한 우묵한 곳을 터지게 하시니, 거기에서 물이 솟아나왔다. 삼손이 그 물을 마시자, 제정신이 들어 기운을 차렸다. 그래서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레히에 있다”엔학고레라 이름의 뜻은 ‘부르짖은 자의 샘’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자에게, 간구하는 자에게 목마름을 채워 주시는 샘에서 물을 솟아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긍휼하심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볼 때 그동안 행한 일들을 보면 하나님께 미안해서라도 이런 어려움을 해결해 달라고 하나님께 어떻게 기도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어려울 때, 궁지에 몰릴 때만 하나님을 찾고 부르짖는 신앙이 아니라 매 순간 마다, 주님과 함께 함으로 늘 엔학고레의 하나님, 이삭과 같이 가는 곳마다 우물을 팔 때마다 넘치는 물을 얻는 신앙으로 살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