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5:19-20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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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9-20절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사도들과 리더들이 구원과 율법의 관계, 즉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만 받느냐 아니면 할례와 같은 율법을 함께 지켜야 받느냐에 대한 논쟁에 대해 야고보가 결론을 지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 성도들에게 지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를 알려 주는 내용입니다.
그 당시 모세를 통해 받은 율법을 지켜 오던 유대인들이 아닌 율법을 알지 못하고 살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은 이방인 성도들이 지켜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이기에 이 말씀 속에서 다시 한번 버려야 할 죄, 그리고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원합니다.
19-20절입니다.“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들도 율법과 할례를 받게 해야 한다며 율법과 특별히 할례를 구원의 조건으로 주장하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베드로 사도와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율법과 할례를 행함으로 성령을 받은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례를 통하여, 그리고 야고보가 그러한 이방인들의 구원을 받는 하나님의 역사를 통하여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예언, 특별히 아모스 선지자의 모든 민족을 회복하고 구원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시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라는 말씀에 근거한 주장으로 율법과 할례가 구원의 조건이 된다고 하는 주장하는 성도들을 잠잠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19절에 “그러므로 내 판단에는” 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라는 것은 구원과 율법과는 상관이 없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을 받는다고 결론을 짓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판단에는” 이라는 말은 우리가 듣기에는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의견처럼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원어를 보면 판단이라는 말이 ‘크리노’라는 단어인데 판결, 결정이라는 의미입니다. 즉 이 논쟁에 대해 마지막 판결을 내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율법이나 할례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을 결론지으며 더 이상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19절에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라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 믿고 난 후에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 믿기 전에 행하던 악한 일들을 버려야 한다며 이방인들이 행하고 있는 버려야 할 것 네 가지를 알려 줍니다. 20절입니다.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 음행, 그리고 목매어 죽인 것과 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믿고 섬기고 예배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입니다. 그렇기에 버려야 할 가장 우선적인 것이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 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이란 그동안 우상을 섬기는 삶을 의미합니다. 우상, 즉 사단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우상에게 바쳐지는 더러운 음식인 것입니다. 우상 즉 사단이 기뻐 받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세상의 욕심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미움과 다툼으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거짓과 속임수로 살아가는 삶의 모습입니다. 내 감정대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세상의 헛된 것을 쫓아가는 삶입니다. 그러한 삶의 모습이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용서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받은 우리들,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백성이라는 성도라 불림을 받는 우리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깨끗한 음식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음식이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인 제사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로마서 12:1절에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이제 우리의 몸을, 즉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제물로 드린다는 것은 죽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합당한 예배가 되기 위해서 예수 믿기 전에 살아있는 나의 이기적인 모습, 육신의 정욕, 욕심과 미움, 시기와 질투, 거짓과 속임, 용서치 못하는 마음과 쓴 뿌리들, 원망과 불평, 비난과 탓하는 모습을 죽여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로마서 12:2절에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라고 권면합니다. 구원 받은 우리들은 더 이상 이 시대의 흐름이나 가치관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말씀과 기도함 속에 마음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말씀과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 바로 우상에게 드려진 더러운 음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드려지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그러한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거룩한 산 제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예배자와 거룩한 성도의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버려야 할 부분 첫 번째를 나누었지만 사실 그것은 두 번째 음행과 함께 연결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음행은 좁은 의미에서 부부간 허락한 외의 모든 부정한 남녀 관계를 음행이라고 말합니다. 그 당시 이방인들은 음행이 성행했습니다. 성적으로 문란했습니다.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민족들을 전멸시키라고 행하셨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음행과 음란의 죄였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불로 심판을 받은 것 역시 음행과 성적인 죄였습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면 음행, 간음, 음란의 죄를 버려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대로 음행을 죄라고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된 우리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음행을 버리고 거룩함을 추구해야 합니다.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 라는 명령은 이방인들은 동물들의 피를 먹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상에게 동물을 죽여 드리는 의식을 할 때 그 의식에서 피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9장, 레위기 17장, 19장에 피에 생명이 있다고 하시면 동물을 산채로, 혹은 죽은 동물의 피를 먹지 말라고 금하셨기에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 할 때 부딪힘과 다툼이 될 수 있기에 금하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피를 멀리하라는 말은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피를 먹는 자체를 금하는 목적도 있지만 피가 상징하는 생명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죽이는 자가 아닌 살리는 자로 서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인 예루살렘에서 논의된 구원에 관한 결론,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직 은혜로 구원 받게 된 것을 확신하고 감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중에 누가 율법과 선행으로 구원 받은 자가 있겠습니까? 우상을 섬기고, 우상이 기뻐하는 삶을 살았고, 음행함 속에 살던 우리,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십자가 위에서 보혈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깨달아 이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산 제물을 드리는 삶, 거룩함을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는 자로 서기를 다시한번 주님의 이름으로 도전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