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살리는 삶” (마가복음 2:13-28)
마가복음 2장과 3장에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병든 자를 안식일에도 고치시고, 죄인으로 낙인 찍힌 세리를 제자로 삼고 멸시를 받던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일들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비난하고 비판합니다. 그 이유는 말씀을 많이 배우고 안다고는 했지만 참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갈등과 충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본질과 비 본질을 분별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진리와 나의 선호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금식하는데 왜 예수님과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느냐고 시비를 겁니다. 금식은 하나님의 명령, 즉 진리와 본질이 아닙니다. 금식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각자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 결단하고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본질 때문에 부딪히지 않고 나의 선호도, 비본질적인 것들로 인해서 부딪히고 마음상해 합니다. 내 방식대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 신경에 거슬린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내 의견만이 옳고 내 생각과 내 의견, 내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리와 나의 선호도를 분별하여 지킬것과 양보할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 결정, 생각,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정죄하고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 왔던 중풍병자의 육체의 고통과 아픔, 생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수치와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배고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기준, 법, 방식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관심과 마음은 아픈 자들, 병든 자들, 소외된 죄인들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회복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늘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이 하나님께서 온 것인가 사단으로 온 것인가를 알려면 내가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가 죽이려고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충돌의 문제, 갈등의 문제에서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 결정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사람을 죽이는 말, 결정을 한다면 물을 것도 없이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새 가죽부대와 같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포용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