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인간적으로 원하는 삶은 고민이 없고, 근심이 없는, 고통이 없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생각지 못하는 당하는 일, 매이는 힘든 일을 만납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도 자신이 당하고 매여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억울하게 감옥에 갇히고 매였습니다. ‘매였다, 당했다’ 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괴로운 일입니다. 그런 당하고 매인 일을 만나면 절망합니다. 분노합니다. 실망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18절을 보면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입니까?
바울이 당하고 매였는데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은 자신의 매인 것, 당한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그 상황을 넘어 선하게 역사하시고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고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하고 매인 상황에 시선을 둔 것이 아니라 그 뒤에, 지금 나는 알지 못하지만 이 일을 통해서 선하게 역사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실 주님께 시선을 둘 때 기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초점을 “내가 당했느냐, 당하지 않았느냐? 내 뜻대로 되었느냐 안되었느냐? 내 원함대로 되고 있느냐 되지 않고 있느냐?”에 둡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는 초점을 항상 하나님께 두는 것입니다. 이런 당한 일, 어려운 일, 매인 일이 생길 때 우리가 질문해야 할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이런 일이 생겨서 좋은 점은 무엇인가? 내가 가져야 할 마음이 무엇일까?” 14절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힘으로 더 좋은 일이 일어나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주님 안에 있는 형제자매 가운데서 많은 사람이, 내가 갇혀 있음으로 말미암아 더 확신을 얻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겁 없이 더욱 담대하게 전하게 되었습니다”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습니다. 내가 힘들고 불편하고 어려운 것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았습니다. 18절에도 “그렇지만 어떻습니까? 거짓된 마음으로 하든지 참된 마음으로 하든지,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앞으로도 또한 기뻐할 것입니다”
바울이 고백한 고백이 도전이 됩니다. 나에게 초점 맞춰진 인생이 아니라 진정 하나님께 초점 맞추어진 인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어떻게 되든지, 내가 비록 당하고 매일지라도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심과 섭리 속에 행하신 일임을 믿고 담대함과 여유를 가지고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신앙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