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8:8-24
8 다섯 사람이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와 그들의 백성에게 이르렀다. 그들이 그 다섯 사람에게 정찰한 내용을 물으니,
9 그들이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서 가서, 그들을 치도록 합시다. 우리가 본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망설이지 말고 빨리 쳐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10 우리가 거기에 가기만 하면, 넓은 땅에서 평안하게 살고 있는 백성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우리의 손에 넘겨 주셨습니다. 무엇 하나 부러울 것이 없고, 부족한 것이 없는 곳입니다
11 단 지파 가족들 가운데서, 육백 명이 무기를 들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길을 떠났다.
12 그들은 유다 땅에 있는 기럇여아림에까지 가서 진을 쳤다. 그래서 그 곳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마하네단이라 불리고 있는데, 그 곳은 바로 기럇여아림 서쪽에 있다.
13 그들은 그 곳에서 에브라임 산간지방으로 올라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14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그 다섯 사람이 같이 간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여기 여러 채의 집이 있는데 이 가운데 어느 한 집에 은을 입힌 목상이 보관되어 있다는 것을 당신들은 알고 있을 것이오. 목상뿐만 아니라 드라빔과 에봇도 있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겠소?”
15 그런 다음에 그 다섯 사람은 젊은 레위 사람이 사는 집 곧 미가의 집으로 들어가서, 그에게 안부를 물었다.
16 단 자손 육백 명이 무기를 들고 문 어귀를 지키고 있었다.
17 그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은을 입힌 목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우상을 챙기는 동안 제사장은 무기를 지닌 육백 명과 함께 문 어귀에 서 있었다.
18 미가의 집에 들어간 다섯 사람이 은을 입힌 목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올 때에, 제사장이 그들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다.
19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조용히 하십시오. 아무 말 말고 우리를 따라 나서십시오. 우리의 어른과 제사장이 되어 주십시오. 이 집에서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20 제사장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에봇과 드라빔과 은을 입힌 목상을 받아들고, 그 무리들 가운데로 들어갔다.
21 그들은 발길을 돌려 길을 떠났다.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값나가는 소유물을 앞세웠다.
22 그들이 미가의 집에서 떠나 멀리 갔을 때에, 미가와 이웃집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단 지파 자손을 뒤쫓아왔다.
23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듣고, 단 지파 자손이 돌아서서 미가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들 모여서 오시오?”
24 미가가 말하였다. “뭐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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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 이집트의 노예생활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능력으로 모세의 리더십과 여호수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차지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가 죽은 후 400년간의 시간 속에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변질된 신앙, 타락한 영적 상태를 보여 주는 역사의 기록입니다.
사사기 17장은 미가의 가정을 통하여 변질되고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었고 본문 18장은 12지파 가운데 단 지파의 변질되고 타락한 모습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단 지파는 여호수아와 함께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면서 지중해 연안 즉 욥바가 있는 비옥한 땅을 먼저 분배 받게 되었고 분배 받은 땅 바로 아래 있는 블레셋 땅을 정복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단 지파는 그 땅을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블레셋 민족들이 강하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단 지파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땅을 정복하려는 확고한 의지가 없이 이제는 받은 땅에 편하게 살고자 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난 후에 단 지파는 우상을 섬기는 죄로 인해 정복하지 못한 바로 아래 땅 블레셋 나라에 오랫동안 압제와 고통을 받고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배정해 주셔서 살게 하신 땅을 버리고 새롭게 정착하여 살 땅을 알아보기 위해서 다섯명의 정탐꾼을 보낸 것입니다. 그들이 땅을 보고 다니다가 에브라임 산지에 있는 미가의 집에 들러 그 집에 고용된 젊은 레위인 제사장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보고 온 땅을 쳐서 차지하여 새로운 곳으로 정착하려고 하는 단 지파의 계획에 대해 하나님께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성공할 것인지 하나님께서 물어달라고 합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하나님의 제사장이었다면 하나님이 주신 단 지파의 땅, 약속하시고 허락하신 땅으로 돌아가라고 호통을 쳤을 것입니다. 지금 하려고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이라고 책망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레위 사람이었던 제사장은 상황을 판단하여 단 지파 정탐꾼들이 듣고 싶어 하는 거짓말을 합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이 가는 그 길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결국 단 지파 사람들은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고 그 땅을 쳐들어가 차지하기로 결정하고 군사 600명을 먼저 보냅니다. 그리고 그 땅을 치러 가기 전에 다시 미가의 집에 들려 미가의 집에 제사장으로 있는 레위 사람에게 한 사람 집안의 제사장이 아닌 한 지파의 제사장이 더 좋지 않으냐 라는 제안으로 미가의 집에 있던 은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빼앗아 동행하고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됩니다. 그리고 단 지파는 이스라엘의 가장 북쪽 지역, 즉 헐몬산 근처의 라이스 라는 납달리 지파에 속한 땅을 보고 돌아와 그곳에 평화롭게 살던 동족들을 급습하여 칼로 쳐서 죽이고 그곳을 차지하여 살게 됩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건입니다.
사사기 18장에 나오는 사건 속에서 여러 가지 질문들이 나옵니다. 그 질문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 변질된 신앙과 잘못된 길로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경고와 책망의 질문이 담겨져 있습니다. 우리를 향해 던지시는 하나님의 질문들을 함께 살펴서 우리의 신앙을 살피고 바로 서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단지파의 다섯명의 정탐꾼들이 미가의 집에 이르러 하룻밤을 묵게 되었을 때 미가의 집의 제사장으로 있게 된 레위 사람에게 한 질문입니다. 3절입니다. “누가 당신을 이리로 데려왔습니까? 당신은 여기에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습니까?” 이 질문을 영적인 귀로 듣는다면 일차적으로는 레위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왜 하나님께서 명하신 자리와 사명, 신분에서 벗어나 있어서는 안될 엉뚱한 곳에서 받아서는 안되는 제사장 직분을 받아 엉뚱한 집에서 먹고 살겠다고 불순종의 죄를 짓고 살아가고 있느냐?” 라는 질문인 것입니다.
이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도 하시는 질문으로 들어야 합니다. “너는 과연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 감당해야 할 사명의 자리에서 충성되이 감당하고 있느가? 상황과 형편이 좋지 않다고, 사람들이 너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대우를 해 주지 않는다고, 엉뚱한 곳에서, 하나님의 뜻과 원함이 아닌 자기 나 자신을 위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느냐?”를 물어 보시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목회자들이 있습니다. 교회를 이리 저리 떠돌아 다니며 레위 사람과 같은 성도들, 집사들이 있습니다.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에, 스스로 변명하고 이유를 대면서 자기 합리화 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자리, 신분,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불순종의 죄입니다. 사사기 시대의 “자기 소견대로 하더라” 라는 죄에 동참되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다시 한번 나를 부르신 하나님의 택하심, 주신 거룩한 신분, 하나님의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며 가라 하신 곳, 있으라 하신 곳, 감당하라고 하신 사명을 어떤 상황과 형편 속에서도 감당해 나가는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으로 든든히 서는 충성된 자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질문은 8절에 나옵니다. 새 번역에는 질문이 보이지 않지만 개역성경을 보면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가서 그들의 형제들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하니”다섯명의 정탐꾼들이 에브라임 산지를 살펴보고 왔을 때 단 지파 사람들이 그들에게 묻는 질문입니다. “너희가 보기에 어떠하더냐?”
다섯 명의 대답합니다. 9절입니다. “우리가 본 그 땅은 정말 좋은 땅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닙니다. 망설이지 말고 빨리 쳐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합시다” 단 지파의 리더였던 이들은 눈에 보기에 좋아 보였다고 보고 합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가만히 있을 때가 아니라 당장, 빨리 쳐들어가서 그 땅을 차지하자라고 제안합니다.
이들의 보고와 견해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도전과 제안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들이 보고 온 땅은 하나님께서 차지할하고 명하신 모세와 여호수아의 시대에 가나안 땅이 아니었습니다. 지금 그들의 동족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습니다. 차지해서는 안되는 땅이었습니다. 침략해서는 안되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섯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명령,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금하신 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너희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라는 하나님의 질문은 인간적인 기준으로, 육신의 눈으로 상황과 형편, 네 이익과 손해, 편함과 기분, 자존심으로 보지 말고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과 약속에 근거한 영적인 눈으로 보고 판단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과 하늘의 법으로 보고 올바른 길을 택하라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육신의 눈에 보기 좋은대로 행했다가 망한 자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기 좋았기에 먹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눈에 보기에 좋은 대로 소돔과 고모라를 택하여 망했습니다. 사사 삼손이 블레셋 여인을 보고 내 눈에 좋았고 마음에 들었기에 결혼하고 그를 사랑함으로 두 눈이 뽑히고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 하나님께서 질문하십니다. “”네가 보기에는 어떠하냐?” 지금 부딪히고 있는 문제, 혹은 보기 좋아 보이는 일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보고 있는지, 영적으로 바로 분별하고 사는지 분별하는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질문은 19절에 나오는 미가 집안의 레위 제사장이 단 지파로부터 받은 질문입니다. “이 집에서 한 가정의 제사장이 되는 것보다야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20절을 보면 이 레위 사람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20절을 보면 “제사장은 그 제안이 마음에 들어, 에봇과 드라빔과 은을 입힌 목상을 받아들고, 그 무리들 가운데로 들어갔다” 라고 합니다.
미가의 집에 들어와 그 집안의 제사장이 되었던 레위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이 더 부유하고, 더 크고, 더 좋은 자리, 편안한 곳, 더 많이 받는 곳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되었다고 하지만 그 신분은 자신이 먹고 살 수 있는 하나의 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단 지파의 제안을 고민하거나, 하나님께 기도하거나 하지 않고 바로 그 제안을 받아 들이고 그 무리들 가운데로 들어 간 것입니다.
단 지파가 레위 사람에게 한 세 번째 질문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문으로 바꾸어 말한다면 “너는 무엇을 위해 섬기고 있느냐? 네가 기뻐하는 곳, 기뻐하는 자리는 어디냐?” 를 묻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가 편한 곳을 찾습니다. 내가 불편한 사람이냐, 불편한 자리냐? 내가 좋아하는 자리냐? 좋아하는 사람이냐? 내가 원하고 편한 곳이냐? 를 따라 움직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기쁨, 하나님의 원하심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입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1:10절에 “내가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리려 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습니까? 내가 아직도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하고 있다면, 나는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18장에 나오는 마지막 질문은 단 지파 사람들에게 자기가 고용한 제사장과 자기 집에 두고 섬겼던 은 신상과 에봇, 드라빔을 빼앗긴 미가가 단 지파 사람들에게 한 질문입니다. 24절입니다. “미가가 말하였다. “뭐요? 내가 만든 신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가면서 무슨 일이 있느냐고?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요? 나에게 남은 것이 무엇이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섬긴다고 하지만 자기 집에 신당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은으로 만든 신상과 많은 우상을 섬기고, 자기 집안을 위하여 하나님의 기준에 맞지 않는 자기 아들 가운데 제사장을 세우고 더 나아가 레위 사람을 고용하여 제사장을 삼은 열심히 있었지만 결국 변질된 신앙, 타락한 신앙, 하나님의 바로 알지 못하고 우상을 하나님으로 삼아 자신의 복을 위해 자기 소견대로 살았던 미가는 모든 것을 다 빼앗기게 되는 것을 봅니다. “내게 남은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은 하나님께서 바른 신앙으로 하나님 말씀대로 따르지 않으면 결국 그 삶은 껍데기만 남는, 마지막 날에 알곡이 아닌 쭉정이로 드러나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짐을 깨닫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믿고, 위하고, 섬긴다고 생각하지만 엉뚱한 열심과 잘못된 동기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길 수 있습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참과 거짓을 깨닫는 영적 분별력을 주옵소서. 모든 거짓과 우상을 버리고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순종하는 참된 믿음을 주옵소서” 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