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에스더 2:10-17
10 에스더는 자기의 민족과 혈통을 밝히지 않았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그런 것은 밝히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었기 때문이다.
11 모르드개는, 에스더가 잘로지내는지, 또 에스더가 어떻게 될지를 알려고, 날마다 후궁 근처를 왔다갔다 하였다.
12 처녀들은, 아하수에로 왕 앞에 차례대로 나아갈 때까지, 정해진 미용법에 따라서, 열두 달 동안 몸을 가꾸었다. 처음 여섯 달 동안은 몰약 기름으로, 다음 여섯 달 동안은 향유와 여러 가지 여성용 화장품으로 몸을 가꾸었다.
13 처녀가 왕 앞에 나아갈 때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어서, 후궁에서 대궐로 가지고 가게 하였다.
14 저녁에 대궐로 들어간 처녀가, 이튿날 아침에 나오면, 후궁들을 맡아 보는 왕의 내시 사아스가스가 별궁으로 데리고 갔다. 왕이 그를 좋아하여 특별히 지명하여 부르지 않으면, 다시는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다.
15 드디어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로 삼은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갈 차례가 되었다. 에스더는 궁녀를 돌보는 왕의 내시 헤개가 하라는 대로만 단장을 하였을 뿐이고, 다른 꾸미개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에스더는, 누가 보아도 아리따웠다.
16 그가 아하수에로 왕의 침전으로 불려 들어간 것은, 아하수에로가 다스린 지 칠 년째 되는 해 열째 달 곧 데벳월이었다.
17 왕은 에스더를 다른 궁녀들보다도 더 사랑하였다. 에스더는 모든 처녀들을 제치고, 왕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드디어 왕은 에스더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았다.
——————————————
페르시아 제국의 왕의 왕후를 새롭게 뽑기 위해 전국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모든 젊은 처녀들을 궁궐에 데려왔을 때 에스더도 어쩔 수 없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추리고 추리는 과정 속에서 왕의 앞에 서게 하기 위해 약 1년간의 몸을 만들고 궁중의 예의와 법도를 배우는 시간 속에서 에스더는 왕후 선발의 총 책임자인 내시 헤게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모습과 태도를 보였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끌려 온 인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에스더는 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믿음으로 보여야 할 섬김과 순종, 배려와 충성됨의 모습을 보였기에 요셉과 같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함이 있었던 것입니다.
고대 시대 왕이나 왕자, 세자와 결혼하게 되는 신분은 왕실이나 귀족이었어야 했습니다. 에스더는 왕후의 자격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귀족 집안도 아니고 포로로 끌려온 이방인 출신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왕후로 선택이 됩니다.
이것을 영적으로 우리에게 적용한다면 우리 또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을 수 없는 존재들이 아니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아닌 죄인이요 원수의 관계였습니다. 어둠의 자식이요 허물과 죄로 영원한 지옥 형벌을 받아야 할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복음을 우리가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십자가의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그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절망과 저주에 사로 잡힌 우리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만군의 주요 왕이신 하나님 자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청지기로 하나님의 일꾼이 된 것을 깨닫고 감사하고 감격하며 하나님 앞에 순결하고 온전한 신부로 성령의 충만함 속에 준비하고 기다리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는 자신의 신분이나 출신, 능력만 생각했다면 왕후가 되는 과정에서 포기했어야 했습니다. 옆에 함께 불려온 수많은 세상적 기준으로 볼 때 권력과 가문, 출신,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갖춘 수많은 여인들로 인해 위축되고 “나는 왕후가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 라는 생각으로 무기력하게 선출 과정에서 뒤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을 것입니다. 현실의 벽이 넘지 못할 높은 벽이라고 느껴져 좌절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이는 에스더의 모습은 담대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아름다움이 다른 누구보다 탁월하다는 자신감이나 교만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봅니다. 에스더는 이 일 가운데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하신 선하신 계획이 있다는 것을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13절을 보면 “처녀가 왕 앞에 나아갈 때에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주어서, 후궁에서 대궐로 가지고 가게 하였다” 다른 처녀들은 자신을 꾸미기 위해 비싸고 좋은 향유와 미용법, 그리고 자신을 꾸밀 수 있는 가장 좋은 옷과 보석이나 악세사리를 차리고 나아갔습니다.
우리도 에스더와 같이 이 세상을 살면서 세상의 것으로 꾸미며 채우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베드로전서 3:3-4절에도 “여러분은 머리를 꾸미며 금붙이를 달거나 옷을 차려 입거나 하여 겉치장을 하지 말고, 썩지 않는 온유하고 정숙한 마음으로 속 사람을 단장하도록 하십시오. 그것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값진 것입니다” 세상적인 사치나 방법, 모습으로 나를 과시하고 드러내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고 믿는 마음으로 온유함과 정숙함, 그리고 단순하지만 거룩함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더가 그러했습니다. 그러했을 때 15절을 보면 “드디어 모르드개의 삼촌 아비하일의 딸, 곧 모르드개가 자기의 딸로 삼은 에스더가 왕에게 나아갈 차례가 되었다. 에스더는 궁녀를 돌보는 왕의 내시 헤개가 하라는 대로만 단장을 하였을 뿐이고, 다른 꾸미개는 요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에스더는, 누가 보아도 아리따웠다” 라고 말합니다.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헤개가 하라는대로 단장하고 다른 꾸미개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모습 속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 그리고 세상적인 꾸밈과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하신대로 이루어 질 것이라는 담대함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한 모습을 15절 후반절에 “그런데도 에스더는 누가 보아도 아리따웠다” 라고 말합니다. 결국 17절에 “왕은 에스더를 다른 궁녀들보다도 더 사랑하였다. 에스더는 모든 처녀들을 제치고, 왕의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드디어 왕은 에스더의 머리에 관을 씌우고, 와스디를 대신하여 왕후로 삼았다”
세상을 보면 세상에 권력자들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적인 방법으로 살아야 이길 것 같고, 성공할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지만 하나님의 뜻하신 바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의 흐름대로, 방법대로, 인간적인 눈에 보이는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닌 하나님의 그 선하신 역사하심과 손길을 믿는 믿음으로 담대함과 여유로움, 그리고 하나님의 방법과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