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출애굽기 19:1-6
1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하룻날, 바로 그 날 그들은 시내 광야에 이르렀다.
2 그들은 르비딤을 떠나서 시내 광야에 이르러, 광야에다 장막을 쳤다. 이스라엘이 그 곳 산 아래에 장막을 친 다음에
3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 가니, 주님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너는 야곱 가문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4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로 데려온 것도 보았다.
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다 나의 것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6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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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창립 48주년을 맞아 가을 부흥회를 하는 기간입니다. 그동안 사도행전 말씀을 강해했지만 오늘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향하여 주시는 약속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묵상하면서 본문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출애굽기 19장 본문의 말씀은 이집트에서 400년간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능력으로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여정 속에 시내산에 도착한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입니다. 1절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셋째 달 초 하룻날 바로 그 날에 그들은 시내광야에 이르렀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에서 나온지 삼개월이 지나서 시내산에 도착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없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온 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약속하셨던 약속을 지키신 것이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던 모세가 시내광야 시내산 아래에서 양을 쳤습니다. 그때 불붙은 가시떨기 나무를 보고 시내산에 오른 모세를 하나님께서 만나셔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 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때 모세가 하나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출애굽기 3:11-12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었다. 제가 무엇이라고 감히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겠습니까?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네가 이 백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낸 다음에 너희가 이 산 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때에 그것이 바로 내가 너를 보냈다는 징표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이끌고 나와 하나님을 만났던 장소 시내산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산까지 온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실현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신 약속을 꼭 지키시는 분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모세에게 시내산까지 이끄시겠다고 약속하셨던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다시한번 약속하십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이미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왜 이 시점에서 다시 약속을 주십니까? 그 이유는 마지막 종착지인 가나안 땅에 가기전까지 걸어가야 할 광야의 길에서 다시한번 약속을 붙잡고 믿음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였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은 단지 그 땅을 차지하고 그 땅에서 잘 살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라 그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원하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것은 단지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잘 먹고 살기 위함이 아닌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기대가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해 주시고 하늘나라, 영원한 천국을 약속하신 이유는 단지 우리가 나중에 하늘나라에서 편하게 잘 살게 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구원하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기대, 우리를 구원하시고 천국을 약속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기대가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하나님의 기대에 합한 삶을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일, 그리고 약속을 주심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가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기대가 무엇입니까? 첫째,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는 기대입니다. 4-6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과 기대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에게 한 일을 보았고 또 어미 독수리가 그 날개로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나에게 데려온 것도 보았다”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과거를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과거입니까? 구원해 주신 사건입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하던 너희를 인도하여 데려 나왔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시는지를 어미 독수리가 새끼를 업어 나르듯이 인도하셨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자녀들을 어미 독수리와 같이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고 구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 있으면 편하게 인도하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를 어떻게 보호하고 훈련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독수리는 대부분 높은 벼랑 위에 집을 짓고 거기서 삽니다. 높은 벼랑위에 있는 집에서 새끼를 낳습니다. 새끼 독수리가 어느 정도 크면 어미 독수리가 새끼 독수리가 날 수 있도록 훈련을 시킵니다. 어떻게 훈련합니까? 보금자리에서 밀어서 떨어트립니다. 새끼 독수리가 떨어지면서 죽을 힘을 다해 날개 짓을 하면서 떨어집니다. 어느 정도 떨어지면 어미 독수리가 커다란 날개로 떨어지는 새끼를 안전하게 안착시킵니다. 그리고는 다시 높은 집에 올려다 놓았다가 다시 떨어트립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단지 구원 받은 자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쓰임 받는 자로 세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 하나님의 백성들을 독수리와 같이 높고 편하고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떨어트리시는 훈련을 하십니다. 훈련은 아픕니다. 고통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훈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쓰시는 합당한 사람이 되지 않기에 훈련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훈련을 받을 때 우리가 불평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독수리의 큰 날개로 우리를 받쳐주고 우리 곁에서 떨어져 죽지 않게 보호하신다는 것입니다. 신명기 32:11 “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뒤흔들고 새끼들 위에서 퍼덕이며 날개를 펴서 새끼들을 받아 그 날개 위에 엎어 나르듯이 주님께서 그 백성을 인도하셨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대하십니다. 시험과 훈련과 고통이 올 때 하나님의 도우심과 우리를 훈련하여 세우시기를 위함을 믿고 그 시험과 훈련을 감당하기를 기대하십니다.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합당한 사람으로 만드신다는 것을 믿고 담대함과 기쁨으로 그 훈련을 통과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향한 기대는 둘째, 하나님의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기대입니다. 출애굽기 19:5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하나님께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가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하나님께서 우리를 보물이 되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보물, 보배로운 사람으로 만드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그것이 어떤 것입니까? 그것이 바로 제사장 나라, 거룩한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6절 “너희는 내가 선택한 백성이 되고 너희의 나라는 나를 섬기는 제사장 나라가 되고, 너희는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
제사장이 뭐하는 사람입니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간 역할을 하는 사람입니다. 틈새를 채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죄로 인해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고 가르치고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돕는 사람이 제사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이스라엘 나라를 이집트에서 구원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시키시는 놀라운 축복과 약속을 주신 것은 그 땅에서 혼자 잘 살고 잘 지내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 나라가 되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수많은 나라들,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하는 역할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대했던 제사장 나라의 역할은 이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에게, 교회에게 원하시는 기대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 교회와 성도들에게 원하시는 기대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에게 주신 사명이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까?
나 혼자 예수 믿고 구원 받고 천국 가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하고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하심을 드러내어 주변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영원한 천국이 아닐 잠시 있다가 없어질 세상의 것에 속아서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과 약속을 받고 참된 행복을 살아가야 하는데 죄가 죄인줄도 모르고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져 살아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께 인도하여 하나님의 손을 잡게 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전달하는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처럼 더 큰 특권, 더 큰 사명, 더 큰 명예가 어디에 있습니까?
히브리서 5:4 “누구든지 이 영예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은 것입니다” 가끔씩 뉴스를 보면 어느 유명한 영화배우나 탤런트, 또는 유명인사가 어느 항공기, 혹은 어느 도시의 위촉대사가 되었다 라는 기사를 봅니다. 그 나라, 그 회사, 그 도시를 알리는 대사가 되었다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은혜, 영원한 천국, 죄사함을 받은 축복을 전하고 알리는 최고의 존귀한 특권을 받은 하나님의 제사장으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기의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업적을 여러분이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기대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수많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이미 누리고 있고 또한 받을 축복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 큰 축복과 약속을 주셨다는 것은 그만큼의 기대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렇지 않습니까? 누군가에게 약속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기대가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많은 경우 하나님의 기대를 잊고 살아갑니다. 이 시간 다시한번 우리와 우리 교회를 향해 주신 하나님의 축복과 기대를 깊이 깨닫기 원합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고 이 땅에서의 최고의 명예, 최고로 존귀한 직분인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시고 기대하심을 기억하고 함께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과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한손으로는 하나님의 손과 다른 손으로는 잃어버린 영혼의 손을 잡아 연결시키는 축복의 사람, 축복된 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