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2:22-23

22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십시오.
23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멀리하십시오. 그대가 아는 대로, 거기에서 싸움이 생깁니다.

——————————————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거룩하신 부르심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 받은 자요 하나님의 일군으로 세움 받은 자들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사단은 이 세상의 사람들과 더 나아가 구원 받은 성도된 우리들까지 구원의 복음,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복음을 믿고 따르지 못하도록 많은 이단과 잘못된 가르침, 세상의 가치관들, 망령되고 헛된 말들로 우리의 믿음을 무너트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일군이요, 그리스도 예수의 군사로 택함을 받았기에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하지만 그 보호하심과 역사하심은 우리가 가만히 앉아있으면 알아서 해 주시는 것이 아닌 믿음을 지키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분명하게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22-23절에서 명령하고 있는 세 가지가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22절입니다.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십시오” ‘피하라, 좇으라’ 라고 먼저 두 가지를 명하십니다.

첫째로 ‘젊음의 정욕을 피하라’ 고 명하십니다. 개역성경에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청년의 정욕”은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원어로 보면 ‘ 에피투미아’ 라는 단어 있는 문맥과 함께 의미를 보면 젊은 나이에 가장 많이 나타나는 강한 욕망과 감정을 포괄적으로 담고 있는 말입니다. 젊음의 정욕이란 말 그대로 젊었을 때 가장 강하게 일어나는 육체적인 욕망인 성적인 유혹, 쾌락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젊기에 자신의 힘과 능력을 과신하는 교만한 태도입니다. 그리고 감정적으로 쉽게 흥분하고 지지않고 싸우려는 성향입니다. 더 나아가 돈과 성공을 향한 욕심들입니다. 이러한 것을 젊음의 정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사단은 우리들에게 그러한 젊음의 정욕으로 유혹하고 공격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바로 피하는 것입니다. 21절에 “그대는 젊음의 정욕을 피하고” 라고 명령하십니다. “맞서 싸워라. 이겨내라” 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정욕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한 유혹이 올 때, 그러한 마음이 들 때 의도적으로 멀리해야 함으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죄의 위험이 있는 상황에 자신을 노출시키지 말고, 적극적으로 도망치라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예가 바로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요셉의 모습입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에게 지금 이 집에 아무도 없다며 나와 함께 동침하자고 유혹했을 때 “내가 어찌 하나님께 죄를 범하리요” 하면서 집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피하여 도망친 것과 같은 태도를 말합니다.

피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소극적인 방법입니다. 그렇기에 적극적으로 해야 할 방법이 바로 뒤에 주십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는 사람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십시오” 단순히 피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과 함께. ‘함께’가 중요합니다. 혼자서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기 어렵습니다. 서로에게 힘이 되고, 바른 길로 순종하며 나아가는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주님을 따라, 주님을 위해,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는 성도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좇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의란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결한 삶입니다. 믿음이란 말 그대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삶입니다. 사랑이란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이익을 위한 삶이 아닌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사랑의 마음입니다. 화평이란 미움과 비난, 정죄함과 판단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다툼을 피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러한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이 정욕을 피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유혹을 가까이하면 쉽게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과 기도로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영적 공동체와 함께해야 합니다. “깨끗한 마음으로 주를 부르는 자들과 함께” 신앙의 길을 가야 합니다.

23절에 다시한번 우리들에게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23절에 알려 주십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멀리하십시오. 그대가 아는 대로 거기에서 싸움이 생깁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멀리하십시오’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 이란 단순한 무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유익하지 않은 논쟁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이 어떠한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리가 되는 말씀이나 복음이 아닌 것에 대한 논쟁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 속에서 바울이 디모데에게 논쟁하고 다투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보면 철학적인 논쟁, 이단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논쟁, 율법의 세부 조항이나 족보와 같은 신앙의 본질과 관계없는 논쟁을 의미합니다. 이 시대에는 정치적인 논쟁으로 점점 더 양극화 되는 모습들을 봅니다.

대부분의 논쟁이 하나님을 더 알아가게 하거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자 하는 마음, 믿음에 관한 의문에 관한 생명과 연관된 것이 아닌 단순한 지식 과시나 자기 주장이 옳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다투는 논쟁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 여러 군데에서 그러한 논쟁을 하지 말라는 명령들이 나옵니다. 디도서 3:9절에 “그러나 어리석은 변론과 족보 이야기와 분쟁과 율법에 대한 다툼을 피하라 이것은 무익한 것이요 헛된 것이니라.” 잠언 20:3절에는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왜 그러한 논쟁이 결국 다툼이 일어납니까? 죄성을 가진 우리 인간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너보다 낫고, 내 주장이 맞다고 논쟁을 통해 상대를 이기려고 합니다. 결국 본질인 사랑과 하나 됨과 하나님께 가까이 하게 하는 것보다 이기는 것이 목표가 됩니다. 혹시 내 말빨로 이겼다고 느껴지기도 하고 졌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겼다고 느끼는 삶은 자기 우월감이라는 교만함에 빠지고 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분노하고 미움의 마음을 갖습니다.

그러한 논쟁 속에 다툼이 일어나는 교회와 가정, 관계는 깨어집니다. 사랑으로 하나됨을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서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다툼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를 세우는 대화를 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꼭 필요한 토론은 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 의견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마음과 뜻이 담긴 말씀을 나누어야 합니다. 교만과 자만을 내려놓고 온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성도 간의 대화는 다툼이 아니라 서로를 세워주는 대화가 되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죄의 유혹을 피하고 승리하며,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좇으며 다툼과 싸움이 아닌 하나됨을 만드는 세움과 품음이 있는 믿음의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