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빌립보서 4:16-19
16 내가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여러분은 내가 쓸 것을 몇 번 보내어 주었습니다.
17 나는 선물을 바라지 않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장부에 유익한 열매가 늘어나기를 바랍니다.
18 나는 모든 것을 받아서, 풍족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이 보내 준 것을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받아서 풍족합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향기이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제물입니다.
19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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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빌립보서 4:19절에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라고 약속하십니다. 귀한 말씀이고 축복된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은 강한 것 같지만 약한 존재입니다. 의지할 것이 필요하고, 채움을 받아야 하는 부족한 존재입니다. 육신의 필요, 정신적인 필요, 영적인 필요가 늘 필요한 존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러한 필요를 세상의 것으로 채우려고 합니다. 돈으로, 물질로, 사람의 위로, 사람의 인정과 사랑으로, 권력과 명예로, 성공이라는 자기 자기 실현으로 채움 받고자 합니다. 그러한 세상의 것으로는 잠깐은 채움 받는 것 같지만 우리에게 진정한 마음과 영혼의 채움을 주지는 못합니다.
참된 축복, 참된 채움은 하늘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셨기에 우리의 필요를 가장 잘 아십니다. 또한 그 필요를 공급하실 수 있는 공급자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시기에 지금도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도 보편적인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은혜와 축복들, 즉 구원과 성령과 하늘의 참된 평화와 하나님의 은사들, 도움들, 보호들, 풍성한 모든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공급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따르는 성도들에게 공급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19절을 보면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는 “나의 하나님” 이라고 부를 수 있는 믿는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모두 채워주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19절에 “나의 하나님께서”라고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 것인 내가 잘 아는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만났고, 지금도 함께 동행 하시며, 내가 섬기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용서를 받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기에 애썼습니다. 그런 바울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힘 주시고, 도우시고, 역사하시고 채워 주셨습니다.
바울이 그 하나님의 채워 주심을 경험했기에 19절에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라고 우리들에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도 다윗을 보십시오. 시편 23편에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도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때,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의 채워주시는 놀라운 은혜의 풍성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셨기에 바울은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였으며 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였고, 없는 자 같으나 있는 자였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6:10 “나는 근심하는 사람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사람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이 자신이 알고, 믿고, 섬기는,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께서 자신만이 아닌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도 그 모든 필요를 채워 주셔서 자신과 같이 기뻐하고, 만족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향한 마음이었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 대한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한 모든 것을 아시고 채워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9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부분만 아니라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어떤 부분만이 아닌 모든 필요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약함을 아십니다. 나에게 채워주셔야 할 모든 필요를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에 하나가 내가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지금 내 삶에 이것이 가장 필요해” 라고 말하는 그 필요가 정말 필요한 것이고 꼭 지금 채워져야 하는 필요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 보면 그 때 내가 생각했던 그 필요가 그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었음을 깨달을 때가 많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 내가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필요가 이것이라고 생각해서 우리가 했던 말과 행동들 가운데 실수하고 잘못한 것들이 살아오면서 얼마나 많습니까? 자녀를 키울 때 자녀들에게 이것이 필요하고, 이렇게 해야 된다고 굳게 믿고 했다가 후에 후회한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남편과 아내에게, 부모에게, 교회 성도에게 그러한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건강과 질병이 가장 약하고 채움 받아야 할 필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자신의 안질을 고쳐 달라고 간절하게 세 번이나 간구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의 대답이 무엇이었습니까? 고린도후서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바울은 고침을 받는 것이 필요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의 뜻과 기준에는 바울의 병 고침을 받는 것이 필요가 아니라 육신의 약함을 바울이 지니고 사역하는 것이 필수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함, 욕심, 편함, 우리가 원하는 때에 채워 주시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어떠한 경우 우리가 간절히 기도함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내가 기도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보실 때 필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일을 통해서 나를 고치시고, 다듬으시고, 깨닫게 하시는 뜻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무조건 고쳐 주소서, 해결해 주소서, 채워 주소서”가 아니라 “깨닫게 하소서, 이 상황에서 감사하게 하소서, 마음을 지키게 하소서. 인내하게 하소서. 나를 변화시켜 주소서.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우리의 기도가 깊은 기도로 들어가면 기도가 바뀝니다. 처음에는 내 상황, 내 형편, 내 문제, 내 필요를 채워 주소서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깊은 기도, 성령님이 간구하는 기도로 들어가면 내가 원하는대로 내 상황, 내 형편, 내 문제, 내 필요를 채워 주소서 라는 기도가 아닌 주님의 뜻을 이루어지기를 그렇게 할 수 있는 힘과, 지혜와, 인내와, 담대함과 온유함과 충성됨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구하는 기도로 변합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기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 믿는 자, 따르는 자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그러한 자들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바로 빌립보서 4:19절의 말씀입니다. “나의 하나님께서 자기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영광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모두 채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 이 축복의 약속이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이 축복의 말씀은 예수 안에 거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믿음의 사람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내 뜻, 내 원함, 내 필요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의, 하나님의 말씀과 뜻, 하나님의 교회를 먼저로 살아가는 자에게 “이 모든 것을 더 하시리라” “너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리라”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받고 누리며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