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골로새서 3:12-14

12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13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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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택하심을 받은 자다 라고 말합니다.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답게, 동정심과 친절함과 겸손함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옷 입듯이 입으십시오”

내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요셉을, 모세를, 여호수아를, 엘리야를, 이사야를 택하시고 사용하셨음을 우리가 봅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인 본문에서도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여러분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랑 받는 거룩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골로새 교회 성도들만이 아닌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하시고 택하셨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삶의 가치관, 삶의 방향, 삶의 태도가 변화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알지 못하고 살 때는 삶의 모든 주체가 나로 알고 살아갑니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결정하고, 내가 선택하며 삽니다. 직장도, 집도, 결혼도, 자녀도, 더 나아가 교회와 하나님을 믿는것도 내가 내 원함대로, 내 뜻대로 결정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셔서 이끄신다는 개념이 없는 분들은 교회에 나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교회가 나의 원함과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는 생각, 더 나아가 하나님도 내가 필요한 것을 채워주고 도와주는 미신처럼 생각합니다. 여전히 내가 중심이요, 내가 모든 것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주체자로 생각하며 내 생각, 내 뜻, 내 원함대로 살아가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게 되고, 내가 죄인됨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나를 불쌍히 여기셔서 나를 택하셔서 구원의 복음을 통해 구원하여 주신 그 선택을 깨닫게 될 때 내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에 따라서 살게 되고, 나의 원함과 생각과 기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기쁨을 위해 사는 삶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십자가의 복음으로 구원받은 성도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사도 바울은 새로운 옷, 즉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긍휼과 친절함, 겸손함, 온유, 오래참음의 예수님의 모습을 본받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옛 성품, 죄의 성품의 삶을 벗어 버리고 거룩한 성도로 택함 받은 신분에 합당한 예수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옷을 입기 위해서는 그동안 걸치고 살던 옛 사람의 옷, 죄의 옷을 벗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3:9-10절에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옛 사람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새 옷을 입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옛 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의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 죄성을 따라 하던 거짓말, 미워함, 분노함, 비방함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3:8절에 “이제 여러분은 그 모든 것, 곧 분노와 격분과 악의와 훼방과 여러분의 입에서 나오는 부끄러운 말을 버리십시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는 죄성을 따라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와 다른 사람, 내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에 대해 분노하며, 미워하며, 원망하고 탓하며 다른 사람에게 험담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 되었다면 더 이상 그러한 옛사람의 모습을 보이며 살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분노에 사로 잡혀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긍휼과 온유함으로 친절하게 대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미워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비난, 판단, 정죄, 비방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같은 상황 속에서도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오래 참음과 용서함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전히 우리 안에 죄성이 있지만 옛사람의 모습에 여전히 사로 잡혀 사는 삶이 아닌 이제는 그러한 죄성을 성령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기고 자비를 행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택함 받은 날마다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리고, 그리스도로 덧입기 위해서 힘쓰는 것이 참된 성도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는 용납과 용서입니다. 13절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납하여 주고, 서로 용서하여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누가 누구에게 불평한 일이 있거든” 누군가에 대해 불평할 일 즉 불만이 생길 때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우리가 함께 만나는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항상 마음이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알아주고, 만나면 좋고 기쁜 일들만 있으면 좋겠지만 아무리 가깝고 좋은 사이일지라도 서로에게 불평할 일, 불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저렇게 하지? 왜 이렇게 못하지?” 답답한 마음, 짜증나는 마음, 불만스러운 모습을 보일 때가 있습니다. 작게는 양말을 집 아무 곳에나 벗어 놓은 배우자 때문에 짜증난다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밥 먹을 때 소리내서 먹는 것, 무엇인가를 부탁했는데 바로 하지 않고 미루는 것, 좋은 의도로 무엇을 제안했는데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것 …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불만스러운 일이 생기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살다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서로 다른 관점과 해석, 생각과 원함과 기준이 다르기에 생기는 일입니다. 서로가 살다가 보면 좋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불만이 생길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불만의 상태가 가족간에도 있을 수 있고, 직장 동료들이나 교회에서 성도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인간적으로 불평하고 불만할 일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믿는 자가 달라야 할 부분은 대처하는 방법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불만이 있을 때 불평합니다. 짜증을 냅니다. 비판하고 혹은 싸우고, 소리 지르고 분노합니다. 상대하지 않거나 혼자말로 무시하거나 업신여깁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서 불만이 생길 때에 세상 사람들과는 대처하는 방법이 달라야 합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누군가에게 불만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서로 용납하고 피차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피차간에 불만이 있을 때에 그 불만을 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가진 불만에 대해서 논쟁하며 싸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아량으로 상대방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어른이 어린아이의 실수와 허물을 품듯이, 어른의 마음으로 상대방의 잘못을 품고 용서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아량으로는 용납하고 품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그 기준을 13절에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과 같이,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8장에 베드로가 용서에 관해서 예수님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번까지 하오리이까?”라고 질문합니다. 일곱 번이라면 나름대로 용서함에 대해서 자신의 관대함을 드러내는 숫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이 아닌 일흔번씩 일곱 번이라도 하라고 하십니다. 숫자적으로 따지만 490번이지만 그 의미는 끊임없이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런 사랑, 그런 용서, 그런 용납으로 품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까지 용서해 주셨던 것을 깊이 깨닫고 알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 사랑, 그 은혜, 그 성령의 충만함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반면에 우리로 하여금 서로 품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일은 사탄이 하는 일입니다. 사탄에게는 다른 이들의 죄와 허물을 품고 용서하는 법이 없습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서로를 비난하고 정죄하게 합니다. 사탄은 사람들의 작은 허물에도 지속적으로 정죄하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절망케 만듭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예수님과 같이 상대방의 허물을 품고 용서하며 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택함 받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은, 이 모든 일에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14절입니다.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십시오. 사랑은 완전하게 묶는 띠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보여야 할 예수님의 성품과 태도는 사도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긍휼과 친절, 겸손과 온유, 오래 참음과 용납과 용서 등의 덕목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을 의무적으로 억지로 한다고 하면, 그것은 율법이 되게 됩니다. 마음에도 없는 위선적인 행위가 되고, 그 안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 모든 태도와 모습은 결국 그 동기가 사랑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여야 할 예수님의 모습과 인격, 태도는 그 동기가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에게 보여 주신 사랑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모든 일들은 죄인된 사람들을 사랑하셔서 하신 일입니다. 때로 제자들을 꾸짖으셨던 것들도 사랑으로 인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것도 의무나 강제가 아니라, 긍휼과 자비의 마음으로 그 일들을 감당해 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우리들이 살아갈 때 보여야 하고 행해야 할 모든 일은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사랑을 동기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내가 예수님을 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택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당신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택함 받은 자로 살기 위해서 죄된 옛사람의 모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을 이겨야 합니다. 죄된 말과 행동들, 나 중심으로 행하던 모든 육신의 정욕을 버리고 주님이 뜻대로, 주님의 마음과 모습을 닮아가기 위해 하나님을 의지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내 모습 속에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속에서 긍휼함, 친절함, 온유함, 오래 참음, 용서와 용납, 그 모든 것을 나에게 부어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행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분별하고, 성령의 충만함과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우리를 통해서 온전히 드러나는 예수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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