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1:1-5, 27-35
1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워야 합니까?”
2 주님께서 대답하셨다.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었다”
3 그 때에 유다 지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동기인 시므온 지파 사람들에게 제안하였다. “우리와 함께 우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을 치자. 그러면 우리도 너희 몫으로 정해진 땅으로 함께 싸우러 올라가겠다” 그리하여 시므온 지파가 유다 지파와 함께 진군하였다.
4 유다 지파가 싸우러 올라갔을 때에, 주님께서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겨 주셨으므로, 그들은 베섹에서 만 명이나 무찔렀다.
5 그 곳 베섹에서 그들은 아도니베섹을 만나서 그와 싸워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을 무찔렀다.
27 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28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29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이 아직도 게셀에서 그들 가운데 섞여 살고 있다.
30 스불론 지파가 기드론의 주민과 나할롤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이 그들 가운데 살면서 부역꾼이 되었다.
31 아셀 지파는 악고의 주민과 시돈의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벡과 르홉의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32 아셀 지파가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산 까닭은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33 납달리 지파는 벳세메스 주민과 벳아낫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인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살면서, 벳세메스와 벳아낫 주민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34 아모리 사람은 단 지파 자손을 힘으로 산간지방에 몰아넣어 낮은 지대로 내려오지 못하게 하였다.
35 그리고 아모리 사람은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살기로 마음을 굳혔으나, 요셉 가문이 강성하여지니, 그들은 요셉 가문의 부역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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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의 약 300년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사사기 1장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른 믿음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그를 이은 후계자, 리더자가 세워지지 않았지만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을 왕으로 삼고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대로 순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뒤에,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어느 지파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워야 합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의 모습을 보입니다. 그리고 그 기도에 하나님께서 2절에 “유다 지파가 먼저 올라가거라. 내가 그 땅을 유다 지파의 손에 넘겨 주었다” 라는 말씀을 듣고 므낫세 지파와 함께 올라갈 것을 요청하여 함께 브리스 민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여 만명을 사살하고 그 땅을 얻습니다.
8-18절을 보면 유다 지파는 므낫세 지파와 더불어 예루살렘, 헤브론, 드빌, 스밧, 가사, 아스글론, 에그론 즉 블레셋 나라의 여러 성읍들을 쳐들어가 승리하여 그 지역들을 차지합니다. 19절을 보면 “주님께서 유다 지파 사람들과 함께 계셨으므로, 그들은 산간지방을 차지할 수 있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그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여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어 승리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축복의 땅들을 차지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사기 1장 1-19절의 나오는 것처럼 계속해서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도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며 그 뜻과 말씀대로 순종하여 나갔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20절부터 마지막 절을 보면 “그러나” 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반복되어 나오는 말이 “그들이 어느 지역 사람들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가나안 족속들이 그들과 함께 거하게 되었다” 라는 말들이 나옵니다.
21절을 보면 “그러나 베냐민 자손이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사람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자손과 함께 살고 있다”27절 “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29절을 보면 에브라임 지파가 게셀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몰아내지 못하였다 30절을 보면 스불론 지파가, 31,32,33절을 보면 아셀 지파가, 납달리 지파가 어느 가나안 지역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여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살았고 어느 주민을 부역꾼으로 삼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처음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심속에 계속해서 승리하여 가나안 민족들을 몰아냈지만 점점 싸워서 승리하기보다는 타협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하여 전쟁하여 완전히 차지해야 할 땅을 위해 유다지파가 올라갔을 때 주님께서 함께 하셨고 승리하게 하셔서 유다족속은 자기 몫으로 배당된 땅을 축복으로 받아 누립니다. 사사기 1장과 전체가 이렇게 마쳤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을 만끽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사사기는 그렇게 전개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각 지파들은 철 병거로 방비하고 있는 어느 지역은 싸우기가 만만치 않자 그들과의 전쟁을 포기한 것입니다. 처음에는 전쟁하러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셨습니다. 그런데 22절부터보면 전쟁을 하여 승리를 얻기보다 타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22-26절을 보십시오.“요셉의 집안 역시 베델을 치러 올라갔다.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계셨다. 요셉 가문이 베델을 정찰하였는데, 그 성읍 이름이 전에는 루스였다. 정찰병들이 그 성읍에서 나오는 한 사람을 붙들고 말하였다.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이 어디인지 알려 주십시오.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그 사람이 정찰병들에게 성읍으로 들어가는 길을 일러주니, 그들은 그리로 가서 그 성읍을 칼로 무찔렀다. 그러나 그 남자와 그의 가족은 모두 살려 보냈다. 그 사람이 헷 사람들의 땅으로 가서 한 성읍을 세우고, 그 이름을 루스라 하였는데,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으로 불린다”
애당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가나안 사람들을 다 쫓아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의 죄악된 습성을 배울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셉 족속들은 어떻게 합니까? 오히려 그들과 손을 잡았습니다. 성읍에서 나온 사람에게 성에 관한 정보를 주면 살려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결국 그 사람은 동족을 팔아먹는 배신자가 되고 이스라엘 땅에 큰 성읍을 건축합니다. 자기 세력을 구축했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더 놀라운 사실을 말해 줍니다. 27-28 “므낫세 지파가 벳산과 그 주변 마을들과, 다아낙과 그 주변 마을들과, 돌과 그 주변 마을들과, 이블르암과 그 주변 마을들과, 므깃도와 그 주변 마을들에 사는 주민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사람들은 그 땅에서 살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강성해진 다음에도 가나안 사람을 모조리 몰아내지 않고, 그들을 부역꾼으로 삼았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사람들을 쫓아내지 않은 이유가 그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해 보니까 가나안 족속을 다 죽이고 몰아내는 것보다 자신들을 위해서 일하는 노예로 삼으면 더 편하고 좋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자신들의 편함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처음에는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 일하는 노예가 되었지만 멀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섬기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자신들이 가나안 족속의 식민지가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부분적으로 순종합니다. 그 다음에는 완벽하게 불순종합니다. 완전한 순종, 부분적인 순종, 그 다음 전적인 불순종. 이것이 1장에 담긴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타협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협했기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갔음에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고 맙니다. 이것이 타협의 무서움입니다. 이 세상 누구도 하루 아침에 멸망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 같아도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조금씩 불순종을 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편함대로 말씀과 타협하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갑자기 믿음에서 떠나는 것 같습니다. 그토록 충성하던 사람의 믿음이 식어버린 것 같습니다. 우리 눈에는 그 모든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지나온 과정이 있게 마련입니다. 쇠가 조금씩 녹슬듯이 세상과 타협하고, 말씀과 타협하고, 자기 편함과 타협하고 자기 생각과 타협하는 작은 타협을 방치했기 때문에 마침내 영적으로 무너지고 결국 영적인 분별력을 잃어서 자기 뜻이 하나님 뜻으로 착각하고 잘못된 결정을 하고 살면서도 하나님 뜻인 줄 알고 영적으로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기보다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었던 것처럼 비록 내가 구원을 받았다 하더라도 육신의 생각과, 세상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타협하면 이 세상에서 결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서 당할 것은 가시와 고난 말고는 없습니다. 그러다가는 결국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앞에 계속해서 남은 영적인 전쟁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저 교회에 나오고 주일 예배 드리고 헌금 드린다고 해서 승리하여 축복을 누리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긴 했지만 정작 누려야 할 축복을 하나도 누리지 못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살아가는 자가 아닌 완전한 승리를 통해 참된 축복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무엇과 싸워야합니까? 첫째는 우리의 육신의 정욕입니다. 우리의 타락한 성품입니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속으로부터 나오는 것이 낙담, 미움, 시기, 질투, 교만 이러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어서가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고백한 고백의 의미를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오늘 기도했다고 내 안에 있는 죄의 성품이 죽지 않습니다. 날마다 내 안에 뽑아도 뽑아도 솟아 오르는 잡초를 뽑듯이 나를 죽이기 위해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나를 감싸고 날마다 내 정욕을 십자가에 죽이는 싸움을 주님 만날때까지 싸우고 이겨야 합니다.
두 번째 우리가 싸워야 할 것은 세상의 가치관입니다. 요일 2:15-16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이란 세상의 잘못된 가치관을 말합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 과정은 상관없이 어떻게 하든 높은 자리에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 세상 사람들이 다 하니까 나도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세상이 주는 가치관을 따라 살기가 쉽습니다. 가나안 땅에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족속들의 가치관을 따라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것처럼 우리 또한 정신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기 쉽습니다. 세상과 싸우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분별력을 달라고 기도하며 세상과 싸워야 합니다.
셋째,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은 사단입니다. 벧전 5:8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 우리가 싸워야 하고 미워해야 하고 승리해야 할 대상은 사단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단이 아닌 사랑해야 할 사람들과 싸울때가 많습니다. 나를 알게 모르게 힘들게 하고 교회를 어렵게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 뒤에 역사하는 사단이 우리가 싸워야 할 적임을 알고 싸워야 합니다.
진정 구원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아직 싸워 이겨야 할 적이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승리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저 주일에, 토요일에 예배 한번 드린다고 승리하지 못합니다. 매일 기도와 말씀으로 싸워야 할 대상을 바로 알고 내 안에 있는 죄성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싸움, 세상의 가치관을 바로 분별하여 하늘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기 위한 싸움과 사람이 아닌 사단을 분별하여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사단과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과 계속해서 싸워 축복을 쟁취했듯이 우리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땅에서 사는 동안 남은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계속해서 싸움을 해야 하지만 우리들의 적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세상과 사단이 강하지만 그보다 강하시고 승리케 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타협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남겨진 영적전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나가기만 하면 성령 하나님께서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분명 승리를 주십니다.
우리는 그 전쟁을 기꺼이 치르기만 하면 됩니다.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주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자신의 인생을 내어드리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이 땅에서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날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분별하여 담대함으로 승리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