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사기 6:11-16
11 주님의 천사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의 땅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에 와서 앉았다. 그 때에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12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하고 말하였다.
13 그러자 기드온이 그에게 되물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면, 어째서 우리가 이 모든 어려움을 겪습니까? 우리 조상이 우리에게, 주님께서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셨다고 말하였는데, 그 모든 기적들이 다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지금은 주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기까지 하셔서, 우리가 미디안 사람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습니다.”
14 그러자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다.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15 기드온이 주님께 아뢰었다. “감히 여쭙습니다만, 내가 어떻게 이스라엘을 구할 수 있습니까? 보시는 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16 그러나 주님께서는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니, 네가 미디안 사람들을 마치 한 사람을 쳐부수듯 쳐부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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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4-5장에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사람 숫자에도 count 하지 않았던 여자였던 드보라를 사사로 택하여 놀라운 승리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20년간의 식민지 생활에서 구원하십니다. 드보라 사사의 승리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간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다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죄를 짓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미디안 사람들에게 붙이셔서 고통을 당하게 합니다. 6:1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악한 일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일곱해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넘겨 주셨다”
미디안이란 족속들은 유목민입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살았던 강한 족속들입니다. 유목민 족속이기 때문에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움직이다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곡식을 추수할 때쯤 되면 와서 약탈을 한 것입니다. 유목민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키우고 몰고 다니는 가축들을 먹이기 위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파종한 땅에 가축들을 풀어서 먹게 했습니다. 씨를 뿌리고 파종하여 싹이 돋고 자랄 때 쯤에 쳐들어 와서 가축들로 하여금 농사를 짓는 땅의 싹들을 먹게 하고 가을에는 겨우 재배한 곡식들을 쳐들어 와서 빼앗아 가는 계절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힌 것입니다. 2-5절을 보면 그러한 미디안 족속들을 피하기 위해서 동굴에도 숨고 식량을 동굴에도 숨겼습니다.
그러나 미디안 족속들은 메뚜기 떼와 같이 7년간 계절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농사하는 땅을 가축으로 망치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축들을 약탈해 가고 추수할 쯤에 와서 추수할 곡식들을 싸그리 다 가져갔습니다. 그로 인해 먹을 것이 없어 고통을 받았습니다. 그런 일이 7년간 계속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겠습니까? 6절에 “마침내 이스라엘 자손이 주님께 울부짖었다” 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울부짖음을 듣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시기 위해 찾고 택하신 사람이 바로 기드온입니다. 기드온을 하나님께서 찾아 쓰시려고 할 때 기드온은 우리가 흔히 영화에서 보는 아버지나 나라를 되찾기 위해서 깊은 산속에서 몇 년간 칼을 익히고 무술을 익히고 있는 용사가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6:11절에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 이삭을 타작하고 있었다” 보통 밀은 사방이 탁 트여 바람이 잘 부는 넓은 곳에서 타작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기브온은 미디안 사람들에게 발각되어 곡식을 빼앗길까봐 눈에 띠지 않게 하기 위해서 숨죽이고 포도틀에서 밀을 타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줌되지 않는 밀을 나무통에 넣고 미디안 사람들에게 들킬까봐 숨어서 노심초사하며 밀을 타작하고 있는 모습이 하나님께서 찾아 쓰시겠다는 기드온의 모습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강한 용사와는 거리가 먼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미디안의 억압으로 두려워하고 끼니를 걱정하며 살아가는 촌사람이었습니다. 그날도 몰래 마음을 졸이며 포도주 틀에 몇 줌의 곡식을 찧고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 6:15을 보면 기드온은 자신에 대해 “보시는바와 같이 나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가운데서도 가장 약하고 또 나는 아버지의 집에서도 가장 어린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기드온에게 사사기 6:12 “힘쎈 장사야,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라고 하시고 그리고 14절에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딛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 라고 명하십니다. 두려움에 떨면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얼마 되지 않는 곡식을 몰래 포도틀에서 숨어서 찧고 있는 기드온에게 “힘쎈 장사야, 큰 용사여” 라는 부르실 때 기드온은 “저한테 하시는 말입니까? 저 맞습니까?”라는 질문을 하나님께 합니다.
대부분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볼 때 나이 들고, 힘이 없고, 배운 것 없고, “지금 내가 뭘 하겠나? 나 같은 사람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쓰시겠나?” 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존재다” 라는 생각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을 통해 그런 우리를 향해서 “큰 용사여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라고 명하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을 보면 기드온과 같이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과 같이 약한 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 우리를 향해서도 “큰 용사여” 라고 부르시고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연약한 우리를 향해 “힘쎈 장사야, 큰 용사여” 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지금의 내 모습이 아닌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형편없이 숨어서 두려운 마음으로 포도주 틀에서 한줌의 곡식을 타작하는 농부에 불과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기드온 안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믿음과 쓰임 받는 가능성을 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베드로는 어떠한 사람이었습니까?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어부였습니다. 성질 급한 사람이었습니다. 감정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쓰임 받기에는 한참 부족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보시고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1:42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나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베드로의 미래와 가능성을 보셨기 때문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12 제자중의 수제자로 택하셨습니다. 베드로가 많은 실수를 합니다.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일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초대 교회의 기둥으로 교회를 세워 나가고 수천명을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놀라운 사도로 쓰임 받습니다.
에베소서 2:10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떠한 존재인가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Mater Piece 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는 자들입니다. 더 나아가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손에 있었던 우리, 죄의 형벌을 받아야 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은혜로, 예수님의 생명을 값을 치루고 사신 귀한 존재들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사단의 종이 된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의 피값으로 생명을 주고 구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얼마짜리입니까? 10억 100억이 아닌 값으로 칠 수 없는 예수님짜리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숨과 바꾼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놀라운 존재이고 값비싼 존재이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이룰 수 있는 자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능력의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시고 그 하나님이 내 안에 성령으로 함께 거하시는데 작은 시험에 넘어지고 쓰러지고, 조그마한 고난에도, 누군가 던진 한마디 말에도 상처받았다고 하고 시험 받았다고 하고 매번 못한다, 안된다, 나는 할 수 없다 라고만 하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사단은 늘 우리의 약점을 공격합니다. 우리를 낙심시킵니다. 주저앉게 합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너는 할 수 없어, 그게 네 팔자야, 너 꼴을 알고 나서라, 그게 네 운명이야, 너는 절대 좋은 부모가 될 수 없어, 너는 절대 좋은 배우자가 될 수 없어, 네 가정은 변화되지 않아” 그 음성에 넘어가 난 안되는 팔자야. 나는 못해 라고만 하고 숨어서 한줌의 곡식을 얻기 위해서 숨어서 포도틀에서 타작이나 하면서 평생을 살려고 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향해, 연약함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는 기드온에게 하나님께서는 wake up call을 하시는 것입니다. “너의 존재를 알고 있느냐? 너는 강한 용사다” 우리를 향하여도 하나님께서는 “큰 용사여 일어나라” 라고 외치시며 부르십니다.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변화 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시기 위해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 창조하셨고 우리를 십자가의 보혈로 구속하셨습니다. 우리 안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실 때 “큰 용사여”라고 부르셨을 뿐 아니라 6:12절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큰 용사입니다. 그것은 내가 능력이 있어서, 용기가 있어서, 내 재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진리를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기드온을 향하여 주님께서 14절에“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스러웠겠습니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큰 일을?”이라는 생각이 들었겠습니까?
모세가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께서 “너는 바로에게 가서 노예생활하고 있는 나의 백성을 이끌어 나와라” 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얼마나 당황했습니까? 손을 내 저으면서 “저 같은것이 어떻게요? 보낼 만한 사람을 보내소서” 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가라” 라고 보내실 때 “이것을 해라” 라고 사명을 주실 때 항상 약속하시는 말씀이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라는 약속입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은 여호수아가 얼마나 두려웠고 자신이 없었겠습니까? 그렇게 말을 듣지 않는 백만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야 하고 더 나아가 처음 들어가는 수많은 적들이 이미 차지하고 있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야 할 사명이 얼마나 무거웠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여호수아 1:9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로마로 향하는 사도 바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역시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한다”세상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제자들과 우리들에게 주실 때도 마태복음 28장에 “세상 끝날까지 내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기드온을 향하여 부르신 “힘센 장사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라는 말씀과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인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하여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라는 하나님의 음성과 명령이 바로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받아 담대하게 일어나고, 용기를 내어 주님이 주신 사명과 명령에 순종함으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놀라운 변화와 구원과 승리를 누리는 자로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