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야고보서 5:7-11

7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참고 견디십시오. 보십시오, 농부는 이른 비와 늦은 비가 땅에 내리기까지 오래 참으며,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립니다.
8 여러분도 참으십시오. 마음을 굳게 하십시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습니다.
9 형제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10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11 보십시오. 참고 견딘 사람은 복되다고 우리는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욥이 어떻게 참고 견디었는지를 들었고, 또 주님께서 나중에 그에게 어떻게 하셨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은 가여워하시는 마음이 넘치고,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크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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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아가면서 나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문제들과 일들, 사람들을 만납니다. 포기하고 도망하고 싶은 고통스러운 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할 때 쉽게 포기하고, 원망하고 탓하며 포기하면 편하고 쉬울 것 같지만 성공과 축복은 오래 참음과 인내함 속에 얻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성도된 우리들을 향하여 여러 가지 어려움, 시험을 만날 때 길이 참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참된 믿음의 모습이 바로 견딤과 인내이기 때문입니다.

길이 참으라는 말의 원어는 매크로 투미아 라는 말로 마크로 즉 ‘많다’라는 말과 ‘써모스’ 열기라는 말의 합성어로 요래 견딘다는 말입니다. 이 단어는 사람에 대해 참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좋은 사람도 자주 만나고 가까워지면 상대방의 부족함과 나와 맞지 않는 것들이 드러나서 서로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아 보이던 사람도 나하고 맞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작은 예를 든다면 나는 정리하고 깨끗하게 하는데 상대는 잘 안치웁니다. 나는 시간개념이 확실한데 상대는 늘 늦습니다. 나는 지적인데 상대는 감정적입니다. 나는 미리미리 준비하는 스타일인데 상대는 나갈 시간에 화장 시작합니다. 나는 한번 말하면 기억하고 지키는데 상대는 여러번 말해도 약속을 지키지 않습니다. 나는 나름대로 손해보고 상대를 배려하는데 상대는 자기만 생각하고 이기적입니다. 나름대로 기다리고 도와주었는데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속된 말로 미치고 환장합니다. 마음에 상대에 대한 불만 불평 원망이 솟아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길이 참으라” 는 말은 말 그대로 오래 견디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길이 참으라’는 오래 참고 견디는데 가져야 할 마음의 태도는 원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9절 말씀에 “형제 자매 여러분 심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서로 원망하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십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원망하다’ 라는 말은 ‘한숨짓다’라는 말입니다. ‘속으로 조용히 신음하다’ 또는 ‘밖으로 투덜거리다’ 즉 궁시렁 거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속으로 겉으로 누군가에 대한 원망을 합니까? 원망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판단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가는 큰 죄라는 것이라는 말씀과 동일합니다.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이시니 원망하는 말을 입밖에, 마음에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망하지 말고 참으라고 하면 우리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지금 내가 그 사람에게 당하는 일이나 지금 상황이 불공평합니다. 분명 그 사람이 잘못함으로 내가 고난을 당하고 열 받습니다. 그럴때도 참아야 하고 기다려야 하고 견뎌야 합니까? 그 질문에 답을 주시기 위해서 주신 말씀이 5:10절 말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고난과 인내의 본보기로 삼으십시오”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선지자들, 예언자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을 보십시오. 불공평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불의한 일을 당했습니다. 다니엘, 정직하게 바르게 정치를 했습니다. 그를 시기한 사람들이 다니엘의 잘못된 점, 털어서 먼지를 찾으려고 해도 없었습니다. 결국 찾은 것은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세 번씩 기도하는 것 때문에, 정직하고 바르게 산 것 때문에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요셉도, 예레미야도, 베드로 바울도 얼마나 불공평한 대접을 얼마나 많이 받았습니까? 예수님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불의하게 대했을 때, 불공평한 일을 당했을 때 인내했습니다. 불평하고 원망하고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결말에는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당했던 일들, 불공평하게 대우 받았던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고 선하게 이루어 주셨습니다. 싸워서 얻어낸 것이 아니라 오래 참음과 인내함으로 얻은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은 이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상황이 불공평 하고 불의한 때에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내가 잘못한 일이 없는데 고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불공평하고 불의한 사람들 때문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원망하지 말고 불평하지 말고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세상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놀랍게도 그런 상황 속에서도 기뻐하라고 하나님께서는 명령하십니다. 골로새서 1: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분의 몸 곧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불공평한 대우, 불의한 일을 당할 수 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뜻 중심에 서 있었으나 고난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들과 사람들로 인해 고통스럽고 어려움을 당할 때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선하게 인도하심을 알고 오래 참고 원망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믿음, 하나님을 믿는 살아있는 믿음이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고 나의 선한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힘들게 합니까? 하소연해도 들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까? 원망하지 마시고 오래 참으십시오. 하나님은 아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드러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래 참음의 본으로 욥에 대해 설명합니다. 욥이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왜 이러한 곤경을 허락하시는지 다 이해하지 못할 때에도 인내하라는 것입니다. 욥이 겪은 고난을 우리가 압니다. 욥은 부자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모든 재산들을 잃었습니다. 자녀들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자신의 몸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질병이 생겼습니다. 욥을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친구들은 너의 죄 때문에 이런 일이 생겼으니 빨리 회개하라고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아무리 자신을 돌아보아도 자신의 고난과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살면서 겪는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과 문제들을 다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다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결국 욥기의 마지막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해하지 못할 때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함께 하심을 인정하고 인내하고 견디고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내는 나의 고통과 어려운 상황이 이해되지 않을 때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인내하고 견디는 모습입니다. 욥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욥도 고난 가운데 탄식하며 절망에 빠졌습니다. 그도 참지 못하고 탄식과 울부짖음을 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순종했습니다. 욥의 인내는 문자적인 의미로서 후포노미아 즉 압박 아래서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등에 짐을 질 때, 지게를 질 때 느껴지는 무게를 말합니다. 그 압박이 인내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압박이 있습니다. 결혼 생활에 압박이 있습니다. 시댁과의 관계에서 오는 압박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오는 압박이 있습니다. 몸의 건강의 문제가 압박으로 옵니다. 재정적인 압박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성도와의 갈등과 압박이 있습니다. 물론 그 압박이 나를 힘들게 하고 아프게 합니다. 무겁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것입니다. 물론 아픕니다. 무겁습니다. 그러나 인내하는 것입니다.

찰스 스윈돌 목사님은 인내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습니다. “인내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모든 것을 체념하는 태도나 모든 것을 피동적으로 수용하는 태도를 가리키지 않는다. 인내는 욥이 보여 준 것처럼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온갖 유혹을 물리치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복종하는 것이 인내이다”

인내하는 것이 처음에는 너무 무겁고 힘듭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면 나중에는 힘들지 않습니다. 역기를 들어도 처음 30 pound 는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고 들기를 몇주간 하면 더 이상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무게가 달라진 것이 아니라 근육이 강해진 것입니다. 그것이 인내입니다. 욥이 보여준 인내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끝까지 복종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압박과 무거운 고난을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인내를 원하십니까? 그 이유는 인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하게 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욥이 고통을 통하여 인내를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알게 되었습니다. 욥기 42:5-6 “주님이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지금까지는 제가 귀로만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제가 제 눈으로 주님을 뵙습니다” 우리는 욥이 엄청난 고난을 받은 것을 압니다. 욥기가 고난에 대한 책입니다. 욥은 고난의 책이 아니라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은 책입니다. 거기에 강조점이 있는 것입니다. 고난 가운데 비로서 하나님을 주권,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이 충성됨과 신실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게 허락하신 사람, 내게 맡겨준 사명을 고난과 어려움이 있더라고 포기하지 않고 참고 견디며 섬기는 일입니다. 여러분의 배우자가 어떠하든지 끝까지 헌신하고 섬기십시오. 내게 허락하신 교회와 성도, 가족, 더 나아가 내게 허락하신 사람들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시고 헌신하십시오.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직분과 성도의 사명을 끝까지 지키십시오. 좋은 때 하고 싫을 때 하지 않는 변덕을 부리지 마십시오. 시편 15:1-4 “주님, 누가 주님의 장막에서 살 수 있겠습니까? 누가 주님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친구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이웃을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을 업신여기는 자를 경멸하고 주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맹세한 것은 해가 되더라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에 어려움과 고난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사단은 상황만 바뀌면 해결 될 것이라는 거짓말을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래서 포기하게 하고 도망하게 하고 원망하게 하고 불평하게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농부를 통해서 선지자를 통하여 욥을 통하여 그러할 때 더욱 인내하며 헌신하며 기도하며 참으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인내와 견딤을 통하여 하나님의 때가 되면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을 해 주십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함이 나에게 불편과 원망이 될 때 그 부족함을 인내하며 겸손히 채워나가는 섬김과 헌신의 삶을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그 때를 기다리며 하나님의 상급을 바라며 기도함으로 인내하며 승리하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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