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7:4-8
4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5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6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7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8 군중과 시청 관원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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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과 사건은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 성을 떠나 데살로니가라는 도시에 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복음을 들은 사람들이 복음에 대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 모습을 보여 주는 내용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 성에 들어가 유대인들의 회당에 들어가 구약성경을 가지고 세 안식일에 회당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했습니다. 다른 토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메시야라는 것을 알리고 설득하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받지 않고 있는 사람들과 토론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갈릴리 나사렛에서 목수로 일하다가 3년간의 공생애 시간속에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천국 복음을 전하며 많은 기적을 보이셨지만 결국 예루살렘에 내려갔다가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로마 빌라도 총독에 의해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 위에 달려 죽은 예수를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이며 예언서의 성취라고 전하는 것,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의롭다 함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전할 때 구약의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배워왔던 유대인들, 그리고 기다리던 메시야는 강한 능력과 힘으로 식민지 아래 있던 자신들을 해방시켜 강력한 나라를 일으킬 자로 기대했던 유대인들에게는 믿기 어려운 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과 실라가 전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 죽음을 이기고 삼일만에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셨고 다시 재림하신다고 약속하셨다는 예수가 바로 구원자 메시야 하나님이시며 그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믿는 유대인들과 유대교로 전향하여 유대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던 이방인들 가운데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을 믿고 따르는 많은 이방인들, 그리스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4절의 말씀입니다.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이 승복하여 바울과 실라를 따르고, 또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내가 그동안 옳다고 오랫동안 붙들고 있던 가치관이나 확신을 바꾸는 것은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말이나 설명을 들으면서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잘못 알고 있었구나를 깨달아도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자존심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완고함이 우리에게도 있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잘못된 구원관, 잘못된 메시야 사상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들 가운데 몇몇 사람들이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따랐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지만 분명 그동안 붙들고 있던 잘못된 것을 내려놓는 용기와 결단이 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받고, 믿을 때 이러한 용기와 결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용기와 결단은 단 한번 예수를 믿을 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을 살 때 매순간마다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하듯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 하나님 말씀과 명령대로 순종하는 삶,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삶은 매번 나의 죄성, 나의 습관, 나의 원함과 부딪힙니다. 불편합니다. 그러할 때 나의 생각과 원함, 인간적 감정을 내려놓는 용기와 결단으로 순종하는 것이 참된 믿음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요, 믿음이 되기를 도전합니다.
데살로니가에 그러한 유대인들이 몇몇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많은 경건한 그리스 사람들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그렇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방 사람들입니다. 온갖 우상을 섬기던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나라도 망하여 망국이 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이스라엘 나라의 천한 목수의 아들이었던 예수님, 로마의 가장 극악한 죄인이나 반역자를 처형하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요, 주님으로 믿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들이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인 예언서를 통해 예수님이 메시야시오 구원자이심을 전하는 바울과 실라의 말을 듣고 많은 이방인들이 믿었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요 축복인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루디아의 마음의 문을 하나님께서 여셨던 것과 같은 은혜인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들의 대다수가 귀부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귀부인이라 함은 데살로니가 성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의 아내이거나 높은 관리의 부인이었을 것입니다.
사실 가난한 자, 연약한 자, 세상에 무시 받고 없는 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위로자 되시고, 죄인되고 가진 것없고, 병든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위로하시고, 치료하시고, 힘을 주시는 구원자가 되심에 의지하고 의뢰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가진것이 많고, 권력이 있고, 이 땅에서 인정받고, 부유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내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고, 부유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부자가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데살로니가의 귀부인들이 바울과 실라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구약 성경을 해석해 주어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죄 용서함을 주시는 대속의 구세주시오 주님이시라는 것을 받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 중에 몇몇이 예수를 믿게 되고, 많은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었다는 것은 놀라운 사건입니다. 기뻐하고 축하해야할 귀한 사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게 된 것을 불편해 하고 분노하는 무리들이 생깁니다. 놀라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가장 싫어하는 사단의 역사가 늘 있는 것입니다. 5절입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다가 패거리를 지어서 시내에 소요를 일으키고 야손의 집을 습격하였다. 그리고 바울 일행을 끌어다가 군중 앞에 세우려고 찾았다” 유대인들 가운데 믿는 자들이 생기고, 많은 그리스 귀부인들이 예수를 믿고 바울과 실라를 따르자 여전히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율법과 할례를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며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이 시기합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이상 전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바울과 실라를 잡으려고 불량배들을 끌어 모아 사람들을 선동하여 시내에 소요를 일으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 가운데 야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거하게 하고 섬겼습니다. 7절을 보면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렇기에 바울과 실라를 잡으려는 유대인들이 야손의 집을 습격한 것입니다.
6-7절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야손과 신도 몇 사람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큰 소리로 외쳤다. “세상을 소란하게 한 그 사람들이 여기에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야손이 그들을 영접하였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바울과 실라를 잡아 고발하려고 했는데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바울과 실라를 섬겼던 야손과 복음을 듣고 믿고 따르게 된 성도들 몇 명을 붙잡아 시청 관원들에게 끌고가 고소를 한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에 대해 “세상을 소란하게 한 사람들” 이라고 고발합니다. 알다시피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 오기 전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 준 일로 인해 고소를 당했을 때 그들이 고소한 내용이 로마 시민인 우리로서는, 받아들일 수도 없고 실천할 수도 없는, 부당한 풍속을 선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을 소란하게 하는 것이 아닌 어지러운 세상, 멸망으로 향하는 세상을 사랑하여 구원하는 복음이었습니다. 받아들일 수 없고, 실천할 수 없는 부당한 풍속이 아닌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고 실천해야 할 하나님의 초청이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거부하고 반대하는 유대인들은 사단의 손에 사로 잡혀 복음을 반대하고 대적하기 위해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 사람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왕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명령을 거슬러 행동을 합니다” 라고 바울과 실라, 그리고 복음을 받아 들인 야손과 성도들을 로마의 반역자들이라고 고발하여 복음을 전하고 믿는 사람들을 제거하려고 한 것입니다.
사실 그들이 말한 예수가 왕이라는 말은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진정 섬기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분은 이 세상 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 예수님을 왕으로 믿고 따른 다는 것은 로마 황제를 몰아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땅의 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시며 하늘나라의 법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예수 그리스가 누구신지, 구원의 길이 무엇인지, 복음을 전할 때 늘 사단의 공격이 있었습니다. 방해가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복음대로 살아갈 때, 복음을 받고 믿을 때 방해하고 공격하는 사단의 역사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듣고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된 진리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가 길이시오 진리요, 생명임을 알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왕이심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확신 가운데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수많은 영적인 공격이 있지만 바울과 실라와 같이 한 밤중에도 감사의 기도와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믿음으로 승리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그 구원의 역사와 지키시는 손길을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