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3:5-9
5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그대는 이런 사람들을 멀리하십시오.
6 그들 가운데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7 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습니다.
8 또 이 사람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배반한 것과 같이 진리를 배반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요, 믿음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9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어리석음도 그 두 사람의 경우와 같이, 모든 사람 앞에 환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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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말씀은 디모데후서 3:1절부터 예수님이 오실 재림의 날, 즉 이 세상의 마지막 말세가 가까올수록 나타나는 죄악들과 현상들, 그리고 그러한 죄를 짓는 자들의 모습을 알려주시는 말씀과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6절에 “그들 가운데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들 가운데” 라는 그들은 5절에 함께 나누었던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것처럼 종교생활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함으로 삶에 변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모습은 있지만 하나님보다 여전히 자기 자신을 우선으로 여기는 자기 사랑과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말씀하신대로 하늘의 상과 하늘에 보화를 쌓기 위해 이 땅에서 섬김과 희생과 봉사의 삶보다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도하심, 도우심을 믿고 모든 일에 감사하지 못하고 용서할 줄 모르고, 감정과 말을 절제하지 못하고, 교만함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고 비난하고 원망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6-7절에는 그러한 사람들이 행하는 악의 모습을 한가지 알려 주면서 그러한 모습에서 벗어나라고 주시는 말씀이 본문입니다. 다시 한번 6-7절을 보겠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진정 구원받지 못한 자들 가운데 거짓 교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로 본다면 서기관 즉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가르친다고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실 때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셨습니다. 소경은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기에 소경은 누군가의 인도함을 받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런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남을 인도한다고 누군가를 이끌면 문제가 생깁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진다고 말씀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종교 즉 영적 세계에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영적 세계라는 것이 육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적인 세계를 인도하겠다는 수많은 소경들로 가득합니다. 참된 하나님,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구원의 길과 천국, 영적인 세계로 인도하겠다는 가짜 종교와 사이비와 이단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바울이 있던 초대 교회의 시대, 지금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던 에베소 지역에서도,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기독교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진정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이 그 이름으로 말하고 가르치고 인도하는 일이 많습니다. 성령이 누구신지도 모르고 성령을 믿지도 체험해 보지도 않았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 사단에 속는줄로 모르고 거침없이 입만 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에게 말씀하셨다” 라고 말하고 가르치려는 사람들을 우리가 어렵지 않게 봅니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 진정한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았습니다. 그렇기에 주 예수 보다 더 귀한 것은 없다고 말하면서 보면 자기 자존심 때문에, 육신의 정욕과 세상의 것에 손해 보지 않겠다고 육신과 죄의 모습들이 거침없이 나오는 것을 봅니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사람이 진정 영적인 눈이 열린 사람이겠습니까? 아닙니다. 그런데도 스스로 자신이 영적 소경인줄 모르고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다른 사람을 인도하려고 드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의 특징은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에도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초대교회 당시에, 그리고 말세가 가까운 이 시대에 사단에 속아 영적소경인줄도 모르고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수많은 거짓 교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속아 멸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에게 경고하시고 명령하시는 말씀이 영적으로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습은 있지만 능력을 부인하고 있는 영적 소경들에게 속고 따라가는 사람들을 6절에 어리석은 여자들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유를 6절 후반절에 “그런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에 짓눌려 있고” 라고 말합니다. 어리석게 영적 소경들을 따라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이 여자들만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당시 부요한 여인들이 집에 돌아가면서 모이며 예술가, 철학자, 문학가들을 초청하여 연주나 그들의 가르침을 듣는 사교 모임을 가졌습니다. 그런 모임이 물론 교양을 위해서,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함도 있었겠지만 단지 무엇인가 새롭고 특별한 것을 원하고, 허영심과 교만함을 드러내기 위한 정욕 즉 욕심이 있다는 것 그러한 육신의 정욕이 거짓 교사들이나 잘못된 이단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늘 무엇인가 새로운 것, 특별한 것을 배우려고 어떤 집회가 있다고 하면 쫓아갑니다. 이곳 저곳 다니며 섬기고 나서는 것에 열심 입니다. 좋은 모습처럼 보이지만 실상을 보면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으로 받고 깨닫지 못해서 늘 부족하다는 결핍함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고,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주시고, 채워 주심을 깨달은 사람은 안달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으로 채움 받으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만나 영적인 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결핍으로 인해 비록 겉모습은 경건의 모습인 성경공부가 되었든지, 집회나 부흥회, 섬김일지라도 결국 육신의 정욕과 욕심에 끌려 세상적인 것으로 채움을 받으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를 인정해주지 않고, 내가 조금 무시 받은 것 같으면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7절의 말씀과 같이 “늘 배우기는 하지만 진리를 깨닫는 데에는 전혀 이를 수 없습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이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내가 변화되기를 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나를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애쓰는 노력과 삶이 나타나야 합니다. 점점 더 나는 죽고, 예수님의 마음과 성품,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기를 원함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성도된 우리가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섬기며 살아가는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의 대표적인 인물로 8절에 “이 사람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배반한 것과 같이 진리를 배반합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사람이요, 믿음에 실패한 사람들입니다” 라고 알려 줍니다. 얀네와 얌브레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유대 문헌이나 초대 기독교 문헌에 누구인지를 알려 줍니다. 이 둘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부터 이끌어내어 오기 위해 여러 가지 기적을 바로 왕 앞에 행했을 때 모세에 맞서 대적했던 바로왕의 술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보인 10가지의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유대교로 개종하여 가나안 땅으로 떠날 때 따라 나섰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전승에 의하면 모세가 하나님의 율법을 받으러 시내산 위에 올라가 있던 40일간의 시간 동안 시내산 아래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설득해서 그들로 하여금 금송아지를 만들게 하고 거기에 절하게 만든 장본인들이 바로 얀네와 얌브레였다고 합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을 믿고 따르겠다고 개종한 것은 진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에 막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막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작전을 바꿔 이스라엘 백성들 속에 들어가서 그들을 속여 파멸을 촉발시키려기로 한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국 얀네와 얌브레가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참된 경건함이 없는 자임이 결국 드러나게 되고, 그 결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이 멸망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9절에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어리석음도 그 두 사람의 경우와 같이, 모든 사람 앞에 환히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말세에 사는 우리로 하여금 참된 신앙, 참된 경건, 참된 성숙됨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고 거짓됨에 빠져 멸망당하는 자들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점점 더 어두어가는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의 빛을 드러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른 진리를 알고 깨달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진리를 알고 따를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7:16-17절에 “나의 가르침은 내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 가르침이 하나님에게서 난 것인지, 내가 내 마음대로 말하는 것인지를 알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행하는 말과 행동과 결정이 어떤 동기에서, 무엇을 위함인지를 돌아보면 내가 하나님을, 진리를 알고 따르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내 뜻, 내 감정, 내 분노, 내 원함과 인정 받기 위함인지 기도함 속에 성령님이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은 머리와 세상의 기준과 상식, 혹은 논리적으로 따져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참으로 진리를 알고자 한다면, 그 이유는 진리대로,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빌립보서 3:8절 말씀을 보면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라고 바울이 간증합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내 주를 아는 지식을 얻게 되었기 때문에 그전에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들을 심지어 배설물로 여겼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진리를 얻을수록 주님을 위해 나를 버리고, 희생하고,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순종하고, 다른 사람들을 더 낫게 여기고 섬기는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말세에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바로 알기에 예수님의 모습을 따라 살아가는 성령의 열매인 사랑, 희락, 화평의 열매,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의 열매 그리고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더욱 풍성해짐으로 진리를 드러내는 신앙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