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9:17-19
17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18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침례를 받고
19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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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밝은 빛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라는 질문과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라는 음성을 사울이 듣고 충격에 빠져 엎드러집니다. 자신은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행했던 일이 하나님을 핍박하는 큰 죄악이었음 깨닫고 그 충격으로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다마스쿠스에 들어가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는 사울에게 하나님께서 아나니아를 보냅니다.
사울을 찾아간 아나니아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신 두 가지 이유를 17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17절을 보겠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가 떠나서, 그 집에 들어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하고 말하였다” 첫째는 시력을 잃어 보지 못하고 있는 사울의 눈을 고쳐 주시어 다시 보게 하는 일이었고 둘째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것입니다.
주님의 명령을 말한 후 사울에게 안수하자 첫 번째 일이 먼저 일어났습니다. 18절을 보십시오.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침례를 받고” 아나니아가 전한 말대로 볼 수 없게 된 사울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삼일간 멀었던 육적인 눈이 다시 보게 되었다는 의미도 있지만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시력이 회복되었다는 것은 영적인 눈이 열렸다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우리의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는 비늘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영적인 어두움이 있습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허락하시고 그 속에서 행하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을 보지 못하게 하는 막고 있는 비늘이 있습니다. 우리가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놀라운 축복들을 보지 못하게 하여 늘 원망하고 불평하고 절망속에 불행하게 느끼고 살아가게 하는 비늘이 있습니다. 우리가 지키고 순종하고 따라야 할 주님의 길을 보지 못하게 막고 있는 영적 비늘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기도가 영적이 눈이 열리게 해 달라는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을 위해 기도했을 때 18절에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기도함 속에 우리의 영적인 눈을 가리고 있는 비늘이 떨어져 나가 하나님을 바로 보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 우리에게 가라고 하신 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을 바로 보고 살아가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8-19절을 보면 “곧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떨어져 나가고, 그는 시력을 회복하였다. 그리고 그는 일어나서 침례를 받고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이 영적인 눈, 영적인 시력을 회복한 후에 한 일이 바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침례란 내가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다고 고백하고 이제 하나님의 자녀, 주님의 종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과 성도됨을 공포하는 예식입니다. 사울이 받은 침례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세주시오 구원자 되심을 깨닫고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삶을 살겠다고 결단하고 헌신한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러한 침례를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내가 죄인 됨을 깨닫고 회개함으로 엎드러지고,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하여 나의 죄를 대속하신 구세주시오 믿고 따르고 순종해야 할 주님이 되심을 믿고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 이제는 죄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의를 위해 살겠다는 결단함으로 침례를 받은 것입니다. 이제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에 세상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늘이 보이는 것입니다. 전에는 세상의 것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그것이 의미 없다는 것을 보고 하늘의 상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내가 받고 누리고 있는 놀라운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담긴 비밀을 알지 못하고 죽어가는 불쌍한 영혼들에게 그 복음을 전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진정 영적인 눈이 열려 우리가 받은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감격으로 한번의 침례가 아닌 날마다 그 사랑,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겠다는 결단으로 살아가기를 축원합니다.
19절 말씀에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냈다”라고 했습니다. 삼일간 금식하고 있었는데 안수함을 받고 눈이 고침을 받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기에 다시 음식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지 육신의 배고픔을 위해 먹고 힘을 얻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음식을 먹고 라는 동사가 ‘람바노’ 라는 원어인데 단순히 음식을 먹는다는 의미만이 음식을 통하여 다른 것을 취한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즉 전에는 음식을 먹을 때 육신을 위해서 먹었는데 이제는 음식을 먹는 목적이 하나님을 위한 삶을 위한 취함이라는 것입니다.
후에 바울은 고린도전서 10:31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영적인 눈이 열리고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으로 충만한 자의 삶은 무엇을 하든지, 무엇을 먹고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음식을 먹고 힘을 얻었다” 라는 말씀의 의미도 음식을 먹어서 배불러 육적인 힘이 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영적으로 강건하여져서 어떠한 시험, 어떠한 어려움, 어떠한 고난도 이길 수 있는 힘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강건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 역시 강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과 사명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감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사울과 같이 영적인 눈이 열려 예수님이 구원자 되시는 구원의 길이요 생명의 주님이심을 알고 믿게 되었습니다. 침례를 통하여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가는 삶을 살겠다고, 주님의 종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겠다고 고백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주님의 길을 가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자가 되었음을 기억하고 주님이 주시는 강건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아가는 교회와 성도님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