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0:33-38
33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34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35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36 바울은 말을 마치고 나서, 무릎을 꿇고 그들과 함께 기도하였다.
37 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38 그들을 가장 마음 아프게 한 것은, 다시는 자기의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울의 말이었다. 그들은 배타는 곳까지 바울을 배웅하였다.
————————————
바울은 에베소 교회 리더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고백하는 가운데 33절에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들의 죄성 가운데 가장 강력한 죄성 중의 하나가 바로 탐욕이 아니겠습니까?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탐욕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 탐욕으로 인해 망하는 것을 봅니다. 뉴스에 끊임없이 소개되는 것이 돈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 회사의 중요 정보와 기술을 훔쳐서 넘깁니다. 돈의 탐욕으로 인해 사기를 치고, 돈의 탐욕으로 헛된 말에 속아 투자를 하고, 한탕 벌겠다고 도박을 합니다. 돈만이 아닌 명예, 성, 권력에 대한 탐욕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바울이 원하기만 한다면 에베소에서 얼마든지 탐욕을 채울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에서 3년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가르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바울을 통하여 예수를 믿고 따랐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비싼 우상과 부적들을 공개적으로 모아서 불에 태웠습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가르침에 몰두했습니다.
사실 마음만 먹으면 예수 믿은 에베소의 사람들을 자신의 제자로 삼고 자기 마음대로 따르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바울은 수많은 병자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치료하였습니다. 그가 쓰던 앞치마와 손수건만을 병자에게 갖다 대어도 낫았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듯이 고칠 수 없는 질병을 누군가 고쳐 준다고만 하면 자신의 모든 재산이라도 갖다 바칠 것입니다. 그러한 병을 고쳐 준 후에 액수를 정해 주지 않고 사례하라고 말만했다면 고맙고 감사해서라도 많은 돈을 갖다 바쳤을 것입니다. 마음만 먹었다면, 조금이라도 재물에 대한 욕심과 탐심이 있었다면 평생 걱정하지 않고 잘 먹고 살 수 있는 재물을 에베소에서 모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유명해진 종교 지도자들,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탐욕으로 교회의 돈을 자신의 이름으로 건물과 땅을 등록하고 숨기는 것이 드러나 지탄을 받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복음으로 행한다고 하면서 탐심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자기 이익으로 부를 축적하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울과 같은 탐심의 유혹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의 놀라움은 그러한 탐심을 이기고 놀라운 사역을 감당했다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바울의 선교를 할 때 안디옥 교회나 빌립보 교회가 도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2차 선교 중에 고린도에 가서는 바울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가 하는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그곳에서 1년 반의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바울이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다고 한 말의 의미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다 자기 쓸 것을 스스로 충당하면서 일을 하라고 고백한 말은 아닙니다. 성경을 보면 주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쓸 것을 공급해주어야 한다는 말씀을 여러곳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장을 보면 바울이 2차 선교 중에 고린도 교회를 세우고 1년 반동안 사역할 때 스스로 일하여 생활했는데 3차 선교 중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 가운데 목회자에 대해 생활비를 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9:7절에 “자기 비용으로 군에 복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따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양 떼를 치고 그 젖을 짜 먹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습니까?” 라고 예를 들면서 13-14절에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고,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지 못합니까? 이와 같이 주님께서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일로 살아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왜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일하며 자신의 생활비를 충당했습니까? 그 이유를 1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이런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생활비를 요구하지 않고 스스로 일하여 충당했던 것은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웠을 때 사람들 가운데 바울이 돈 벌이를 하고, 돈을 요구하는 사람으로 의심하며 걸림이 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신을 장사꾼처럼 생각하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덕을 위해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성도들은 목회자가 말씀과 복음을 감당할 수 있도록 생활할 수 있는 생활비를 최선을 다해 배려해야 합니다. 목회자는 탐심이 아닌 복음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러한 교회 그러한 목회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고 기도하기 원합니다.
35절에 바울은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라고 권면합니다. 참된 신앙의 모습은 힘써 일하여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는 것은 주님의 모습을 본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6:38절에“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라고 명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만 주라고 명하신 것이 아니라 명하시기 전에 늘 먼저 명하신 말씀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늘의 태양과 내리는 비, 공기, 가정, 건강, 교회, 죄용서함, 구원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구원이 바로 가장 큰 주신 축복입니다. 요한복음 3: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아들의 생명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사랑, 구원과 축복들을 안다면 우리 또한 받은 은혜와 사랑을 주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주는 것이 복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준 것보다 더 많이 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님들 가운데 어떻게 하든지 주려고 힘쓰시는 성도님들을 봅니다. 교회에서 어떤 필요가 있다고 하면 먼저 참여하여 채우려는 성도님들을 봅니다. 귀한 모습입니다. 반면에 평생 자기것이라고 움켜 주고 주는 법, 베푸는 법, 양보하는 법을 모르는 분들을 봅니다. 헌금도 아까워하고, 어떤 후원하는 일에도 나하고는 상관 없다고 생각하며 오직 자기 자신과 자기 자식들만 챙기는 인생한 분들이 계십니다.
사실 주는 것을 통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5-36절을 보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일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니까? 우리가 인생을 평가할 때 주님께서 물으시는 것은 ‘이 땅에서 얼마나 벌었느냐? 얼마나 모았느냐? 얼마나 가졌느냐?” 가 아니라 “얼마나 주었느냐?” 를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야 할 것, 나누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위로를 주어야 하고, 격려를, 칭찬을, 인정을 주어야 합니다. 물질적으로 필요하다면 물질을 주어야 합니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나누어 주어야 할 가장 귀한 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입니다. 이 복음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최고의 것을 나누어주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한 사역의 모습을 다시 한번 묵상하며 우리 또한 이 시대에 바울의 마음과 심정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겸손과 많은 눈물로 온갖 시련을 이겨내며 에베소 교회와 성도를 섬긴 그 섬김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전해지기만 한다면 내 생명이 아깝지 않습니다 라는 헌신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튼튼히 서고 분별하여 승리하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받는것 보다 주는 것이 복됨을 알고 주님께 받은 사랑, 은혜, 복음을 힘을 다해 주는 복된 자로 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