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1-8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2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3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4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5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7 여러분은 지금까지 잘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가로막아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8 그런 꾐은 여러분을 부르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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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인 갈라디아서 5장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으로 죄 용서함과 의롭게 됨,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구원 받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버리고 율법주의인 행위로 구원을 받겠다고 돌아선 모습을 안타깝게 여기며 다시 돌이키기 위해서 복음과 율법의 차이를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하나님의 은혜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음으로 모든 죄와 율법의 정죄함에서 자유함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나의 의와 노력과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그로 인해 옭아매는 모든 죄의 정죄와 형벌에서 자유롭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담대함과 자유함으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이 들어와 열심히 그들을 설득하여 복음이 아닌, 십자가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율법을 지킴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넘어가 율법에 매인, 율법의 종이요 정죄함의 종으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은 이전 예수님을 모를 때, 복음을 알지 못했을 때 우상을 따르면서 느꼈던 불안과 죄책감으로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고 있다고 하지만 내가 얼마나 더 의로운 행위를 해야 하는지, 내가 어느 정도 이루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늘 불안함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내가 뭔가 잘못해서 받는 징벌과 같고 내가 뭔가 더 하지 않아서 생긴 결과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늘 부족함 속에서 두려움과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리고 자유함과 평강, 담대함을 잃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름대로 열심히 율법을 지킨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의롭다 여기고 자신의 볼 때 율법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 제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비판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마음과 말과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 모습이 바로 율법에 멍에를 맨 모습인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고 사도 바울이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굳게 서서 다시는 종살이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종의 멍에란 동물에게 사용했던 멍에와 비슷하게 노예의 움직임을 제한하고 잡아두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입니다. 노예를 강제로 복종시켜서 정해진 범위 안에서 일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자유를 빼앗기고 억지고 강제로 힘겹게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모든 율법과 죄의 속박에서 우리를 건져내시어 노예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를 삼아 자유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목숨을 버리셨는데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십자가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믿음으로 자유함을 받았는데 그 자유를 반납하고 포기하고 다시 죄의 종, 율법의 종의 멍에를 메겠다고 하니 바울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니 하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2-3절에 “나 바울이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무슨 말입니까? 만약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이 율법주의자가 되어서 율법을 지키겠다고 할례를 받고 절기를 지키고 그 외의 율법대로 살아보겠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는 여러분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율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만으로는 구원하는데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으로, 죄 사함을 주시는 희생제물로 드려졌는데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하나님의 말씀과 언약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할례를 받는 이유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자요 구세주로 믿지 않는다는 불신을 보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주시는 구세주요 주님으로 믿지 않고 할례를 받고 율법주의로 나아간다면 율법 전체를 다 지켜야 할 의무를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내가 할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 증언합니다. 그런 사람은 율법 전체를 이행해야 할 의무를 지닙니다” 하나님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하나님 앞에 온전해야 합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 길은 전혀 죄가 없는 모습입니다. 죄를 짓지 않는 삶을 온전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율법을 하나라도 범하지 않고 온전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유일한 구원의 방법으로 받아 들이지 않으면 율법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3장에 이미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자들에 대해 이렇게 선포합니다. 3:10절입니다. “율법의 행위에 근거하여 살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다 저주 아래에 있습니다. 기록된 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계속하여 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에 있다” 하였습니다” 복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정말로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율법의 저주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대로 행하지 않은 모든 일에 대해 죄의 정죄와 형벌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됩니다. 4절입니다.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게 된다는 것은 구원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죄 용서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하여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주의 즉 행위로 구원을 받으려는 것과 하나님의 은혜는 서로 반대되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절대로 의를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율법으로 의를 얻겠다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 것이고 은혜에서 떨어져 자신의 행위로 멸망에 이르겠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나의 노력으로, 내가 뭔가를 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려 주는 것입니다.
할례가 나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할례를 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의도, 즉 할례를 통하여 나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것과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인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할례를 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즉 할례를 구원의 방법으로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럼 율법을 열심히 지키고 순종하는 것은 나쁜 겁니까? 다시 말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 율법을 지키는 것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율법의 행위를 버리는 것, 결국 내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그것이 자유입니까? 아닙니다. 바울은 복음을 믿음으로 자유를 누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려 주기 위해서 5-6절에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5절에서는 “우리는 성령을 힘입어서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해 우리가 자유함을 누리는 삶은 첫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을 소망을 간절히 기다리는 삶입니다. 즉 마지막 날에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날을 준비하고 기다리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이 자유함 속에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이미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칭의입니다. 하지만 마지막 그날, 하나님 앞에 서는 날, 우리는 그날에 완전하게 의롭게 될 것입니다. 영화입니다. 영원한 천국, 죄가 없는 천국에서 거룩하신 주님과 함께 의롭다 함을 얻었고, 이제는 더 이상 죄와 상관 없는 영광스럽고 영화로운 새로운 부활의 몸을 입고 영원토록 살 것입니다. 이 소망, 이 확신을 믿음으로 가지고 그날을 기다리며 담대하게 살아가는 삶이 복음의 은혜 가운데 자유함을 누리며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주님이 허락하신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은 둘째, 믿음으로 사랑을 나타내는 삶입니다. 6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할례를 받고 안 받고 내가 뭔가를 하고 안하고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할례도 무할례도 아무 효력이 없습니다.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나타나는 사랑이 중요합니다. 그것이 자유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며 믿는 자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나를 위한 자유이면서 동시에 주님을 위한 자유입니다. 내 뜻대로, 내 원함대로 살아가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종입니다. 타락입니다. 진정 자유로운 삶이란 우리를 위하고 만족하기 위하여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의 종에서, 사단의 종에서, 저주와 형벌의 종에서 해방시켜 주셨기에 이제는 내 자유를 주님을 위해 섬기겠다는 세상과 사단과 죄의 멍에를 벗어버리고 주님의 멍에를 메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이 자유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29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 자유로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자신의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믿고 알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그 십자가의 은혜와 사랑을 믿는 믿음으로 다른 영혼을 사랑하는 삶이 바로 참된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나의 의를 얻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고 나의 의를 드러내기 위해 율법을 지키는 바리새인들의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사랑,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받은 사랑이 삶의 동기가 되어 사랑하고, 헌신하고, 수고하고, 기도하고, 섬기는 삶이 진정 복음 안에 자유한 삶이요 그것이 축복의 삶입니다. 하나님 앞에 마지막 날 서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믿음의 소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7-8절에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잘 달려왔습니다. 그런데 누가 여러분을 가로막아서 진리를 따르지 못하게 하였습니까? 그런 꾐은 여러분을 부르신 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그러한 복음의 삶을 살았는데 그 복음에서 벗어나는 율법주의의 모습, 비난과 정죄와 교만함과 열등감을 갖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닌 사단임을 깨닫고 물리치고 은혜의 복음의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우리 교회가 그러한 믿음의 소망 가운데 믿음의 사랑을 하는 복음 안에 자유함을 누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누리는 믿음으로 소망을 기다리고 믿음으로 사랑을 나타냄으로 주님을 높이고 영혼들을 살리는 성도들,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