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태복음 16:21-25
21 그 때부터 예수께서는, 자기가 반드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야 하며,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며, 사흘째 되는 날에 살아나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밝히기 시작하셨다.
22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
23 그러나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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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읽은 21절의 시작이 “그 때부터” 라고 하면서 예수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가야 하고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잡혀서 고난을 받고 죽음을 당하고 사흘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밝히 알려 주셨다고 말합니다. “그때부터” 라는 것은 바로 “그 전의 사건 뒤에” 라는 뜻인데 바로 전에 일어난 사건은 예수님께서 사람들과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과 대답을 들은 후에 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반 동안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예수님의 말씀과 놀라운 기적들을 직접 듣고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는 사람들이 자신이 누구신지를 바로 알고 있는지 질문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 질문에 사람들이 “어떤 사람은 침례 요한, 어떤 사람은 엘리야 선지자, 어떤 사람은 예레미야 라고 합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아직도 누군지 모르는 대답들이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런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믿느냐?” 라고 질문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십니다” 라는 대답을 합니다. 베드로의 대답에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칭찬하신 후에 나를 바로 알기에 이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와 목적을 알려 주시는 내용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바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삼일후의 부활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해 제자들에게 밝히 알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았기에 제자들에게 이제 십자가 고난에 대한 마음 준비를 하라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부활에 대해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받으실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한 말씀을 들었을 때 베드로가 조금 전 예수님을 기쁘시게 했던 신앙고백과는 전혀 다른 예수님께 책망을 받을 말과 태도를 합니다. 22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를 따로 붙들고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고 말하면서 예수께 대들었다”베드로의 말과 태도에 예수님께서 23절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강하게 책망하십니다.
베드로의 모습 속에 우리들의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베드로가 가진 생각과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고백이 저와 여러분들의 고백이요 믿음이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인지 안다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인류를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과 대속의 죽음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그 고난의 잔을 받겠다고, 순종함으로 예루살렘으로 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제자들에게, 베드로에게 분명하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알려 주신 하나님의 뜻에 동참되기를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원함과 뜻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수제자였던 자신이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었습니다. 그동안 배우지 못하고 가진 것이 없어서 다른 사람의 배에 고용되어서 가난한 어부로 살았었는데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놀라운 말씀과 행하신 놀라운 기적들로 인하여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없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고 예수님이 로마 식민지에서 구원할 메시야일 것이라는 기대 속에 환호하고 환영하고 있었습니다.
삼년간의 그러한 시간 속에 이제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면 이제 뭔가 세상적인 권세와 권력, 부와 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베드로만의 꿈이 아닌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께 단도직입적으로 “예수님께서 이번에 예루살렘에 가셔서 왕이 되시면 저희를 좌우에 앉게 해 주십시오” 라고 요청했고 그 사실을 안 다른 제자들이 누가 크냐를 가지고 싸웠던 것입니다.
다들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이라고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고백했지만 정작 예수님의 마음과 계획, 뜻은 알지도 못하고, 그 뜻에 순종하고자 하는 모습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주님, 안됩니다. 절대로 이런 일이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라고 예수님께 대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 23절에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라고 책망하신 것입니다. 진정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들, 저와 여러분들에게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24절의 말씀입니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예수님을 알고, 믿고 따르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국 24절의 말씀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신 길, 예수님이 따르신 길,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우리도 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르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형 선고를 받고 채찍과 매를 맞고 십자가를 지고 갈보리 언덕을 올라 갈 때 육체적으로 너무 힘에 겨우셔서 여러번 쓰러지셨습니다. 결국 예수님이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올라갈 수 없을 것이라고 느낀 로마병사들은 길가에서 구경하던 구레데 시몬에게 대신 십자가를 지고 올라가게 했습니다.
사실 그때 예수님을 대신하여 지고 갈 사람이 수제자였던 베드로가 되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가장 사랑 받고 나이가 젊은 요한이 나서서 “제가 그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라고 나섰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혹은 예수님께 치유 받았던 나병환자나 중풍병을 고침 받은 사람, 눈을 뜨게 된 소경이 나섰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아무도 나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말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겠다고는 하지만 사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싫어합니다. 힘들고, 어렵고, 고통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5절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찾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말씀, 주님의 뜻에 내 뜻과 생각을 내려놓고 순종하며 그 고난의 십자가, 고통의 십자가, 무거운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삶이 진정 생명을 얻는 삶입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고난이 있어야 영광스러운 부활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의 길이요, 믿음이요, 하나님을 알고 믿고 따른다는 증거임을 다시한번 이번 고난의 주간을 맞이하며 기도함 속에 깨닫고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겠다는 결심과 십자가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으로 기쁨으로 소망 가운데 십자가를 달게 지는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