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여호수아 3:14-17
14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15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가에 닿았을 때에,
16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17 온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밟고 건너서, 온 백성이 모두 요단 강을 건널 때까지, 주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강 가운데의 마른 땅 위에 튼튼하게 서 있었다.
———————————————————-
여호수아 3장을 보면 드디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요단강을 건넜습니까? 하나님의 기적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시기는 추수기간이며 장마였습니다. 요단강의 물이 높이 범람하는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쉽게 건널 수 없는 요단강을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배를 만들고, 혹은 뗏목을 만들고, 물이 적은 상류로 올라가서 건너라는 이해되고 말이 되는 방법이 아니라 장마의 비로 거세고 물이 범람하는 요단강을 법궤를 제사장들이 메고 들어가고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가라는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대로 순종했다는 것입니다. 걸어서 건널 수 없는 깊고 물살이 쎈 요단강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고 순종하여 말씀이 담긴 언약궤를 메고 물에 발을 디뎠더니 요단강이 갈라졌고 갈라진 요단강을 마른땅을 걸어가듯이 건너갔습니다. 그것이 14-16절의 말씀입니다.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진을 떠날 때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백성 앞에서 나아갔다. 그 궤를 멘 사람들이 요단 강까지 왔을 때에는, 마침 추수기간이어서 제방까지 물이 가득 차 올랐다. 그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물 가에 닿았을 때에, 위에서부터 흐르던 물이 멈추었다. 그리고 멀리 사르단 근처의 아담 성읍에 둑이 생겨, 아라바의 바다 곧 사해로 흘러가는 물줄기가 완전히 끊겼다. 그래서 백성들은 여리고 맞은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진정 믿는 성도들이 따라야 할 본입니다.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건널 수 없는 홍해를 가르십니다. 넘치는 요단강 물줄기를 멈추시고 건너가게 하십니다. 내가 이해되고, 상황이 되고, 내가 할 수 있을 때만 순종하고 따르는 자가 아닌 이해되지 않고, 상황이 되지 않고,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믿음으로 순종하여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는 신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 사건을 묵상하면서 자연스럽게 1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함을 받아 이집트에서 나올 때 홍해를 건넌 사건과 비교가 되었습니다. 홍해나 요단강이나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신 것은 같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음을 봅니다. 홍해를 건너게 하실 때의 상황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집트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놀라운 10가지 기적으로 바로의 항복을 받아내어 이집트를 떠나는 것을 허락받고 나왔습니다.
그런데 홍해 앞까지 도착했을 때 바로 왕이 마음을 바꿔 온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겠다고 온 마차 군대를 동원하여 쫓아 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떨며 원망하는 것 밖에 한 일이 없습니다. 도망칠 수도 없었고, 맞서 싸우지도 못했습니다. 절맘이었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다 죽었다”라고 절망이 변하여 모세를 향한 원망과 비난 더 나아가 하나님을 향한 원망으로 변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원망과 탄식, 절망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출애굽기 14:13-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주님께서 오늘 당신들을 어떻게 구원하시는지 지켜보기만 하십시오. 당신들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당신들을 구하여 주시려고 싸우실 것이니, 당신들은 진정하십시오”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게 하시는 구원을 허락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일은 없습니다. 이것을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후 여호수아와 함께 한 2세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그들 앞에 장마로 범람하는 요단강을 건너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요단강을 가르시고 건너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호수아 3:8절을 보면 “이제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요단강의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강에 들어가서 서 있으라고 하여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마음으로 흐르는 그 물에 네 발을 들여 놓으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축복의 땅,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들은 은혜가 아닌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얻을 가나안 땅,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축복은 이제 은혜가 아니라 믿음으로 취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받습니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은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으로 힘차게 요단강에 발을 내 딛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승리의 삶, 축복의 삶을 누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함께 그 믿음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던 이스라엘 백성들, 요단강을 건넌 그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