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5:6-11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
7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8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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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의 말씀은 예루살렘 교회에 사도들과 리더들이 구원과 복음, 그리고 율법에 대한 논쟁을 정리하기 위해 모인 회의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사 파송을 받아 1차 선교를 약 2년간 이방 도시인 카푸르스,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고 곳곳에 교회가 세워지는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 즉 율법을 지키거나 할례를 받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받고 믿을 때 은혜로 값없이 죄 용서함과 의로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했습니다. 박해했습니다. 더 나아가 돌로 쳐서 죽이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복음에 대한 공격은 단지 외부의 공격만 아니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선교를 마치고 안디옥 교회에 돌아왔을 때 유대에서 올라온 유대인 성도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며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어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가 되었지만 1000여년 동안 모세의 율법과 할례를 지켜 왔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이 있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와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 보다 여전히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같이 할례를 받고, 유대인들이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의 절기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과 바나바는 유대에서 온 성도들이 할례를 받아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 반박하며 충돌과 논쟁이 일어난 것입니다. 서로의 주장을 굽히지 않기에 결국 예루살렘 교회의 사도들과 리더들에게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한 답을 받고 오기로 결정하여 바울과 바나바 그리고 안디옥 교회 대표 몇 사람과 유대 성도들이 함께 내려 온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와서 사도들에게 이 구원에 대한 갈등과 논쟁이 있었음을 알리고 이 부분을 분명하게 정의 내려야 함을 인정한 사도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사도들과 교회 리더들을 모아 의논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에 대해 많은 논쟁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6-7절입니다.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 많은 논쟁을 한 뒤에”
예수님의 제자들인 사도들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 역시 대부분이 유대인들이었고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가 된 성도들 가운데 바리새파였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수백년간 지켜 오던 율법을 지키는 일, 그리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는 표시로 받았던 할례를 구원을 받기 위해 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하는 의견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한 논쟁,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과 함께 할례를 받는 것과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며 새로 믿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이 양보없이 논쟁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할 때 베드로가 일어나 결론을 내립니다. 그것이 7-11절의 내용입니다. 7절입니다.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욥바에 있던 베드로는 가이사랴에서 주둔하고 있던 이방인이었던 로마 백부장 고넬료 가정에 자신을 보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을 때 그와 그 가족들과 친척, 친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할 때에 그들이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택한 백성임을 확증하는 성령이 그들에게 내려 자신들이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임재하여 방언을 하며 담대하게 나아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했던 그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는 것을 보았었습니다.
또한 빌립 집사가 사마리아 성에 가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수많은 사람들이믿고 회개하는 부흥의 역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요한과 함께 사마리아에 가서 그 믿었던 사람들에게 안수했을 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또한 보았었습니다.
그러한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복음을 유대인들에게만 주시고 유대인들만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온 민족이 복음을 듣고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은 증거로 성령님을 받았을 때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했던 것은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킨 행위가 아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자신들이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용서함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믿고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었을 때 구원과 성령을 받은 것을 보았고 그 일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것을 예루살렘 교회에 모여 율법을 지켜야 하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유대인들과 바리새파 성도들에게 설명한 것입니다.
그것이 7-8절의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었다고 9절에 단호하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라고 말합니다. 인간의 어떤 행위와 노력이 아닌 그들이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분명하게 구원의 방법을 율법의 행위나 할례가 필요하다고 주장에 분명하고 단호하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은 인간의 행위나 노력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인 대속의 죽으심을 믿는 믿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믿음을 보시고 주신다고 단언합니다. 그리고 구원 받은 증거가 바로 성령을 받은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행함으로 깨끗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였는데 베드로 사도는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마음이 깨끗하게 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바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대속의 죽으심을 믿을 때 그 죄 용서함을 받기에 마음이 깨끗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그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갈 때 깨끗한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게 되고 믿음으로 성화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믿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는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한 것에 대해 베드로는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는 멍에라고 표현합니다. 율법을 온전하게 지켜서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받는 것은 과거에 조상들도 하지 못한 일이고, 지금도 할 수 없는 일인에 어떻게 할례를 받고 율법을 다 지켜 행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방인들에게 강요하느냐고 질책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구원을 받기 위해 율법을 요구하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라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강조하는 자들의 특징은 형식주의에 빠집니다. 교만함과 정죄함의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율법을 강조한 바리새인들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는 자라고 교만함에 차 있었습니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며, 십일조 생활하며, 저 세리와 같지 않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며, 구제하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고 깔보고, 무시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주의로 내가 이렇게, 이만큼 신앙생활하고 있다. 기도생활하고 있다. 봉사하고 있다 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 그러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교만함, 정죄, 비난하는 영성이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11절에 베드로는 결론적으로 구원의 방법과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를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나의 공로, 나의 행위, 나의 의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나를 위한 은혜임을 알고 믿어 감사함으로 순종함으로 따르는 자가 바로 구원을 받은 자의 모습이요, 성령을 받은 자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믿어 구원 받는 자들은 은혜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의 영이신 성령님이 마음에 거하는 구원 받은 성도들은 교만함, 비난, 정죄, 비판이 아닌 겸손과 용납과 포용, 사랑과 인내,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자라는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로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과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