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11-15
1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거리낌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12 할례를 가지고 여러분을 선동하는 사람들은 차라리 자기의 그 지체를 잘라 버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14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15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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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닌 모든 민족,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이방인이라고 부르는 모든 나라 백성들이 구원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계획이고 마음이셨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아 모든 민족들에게 하나님을 전하여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어 이스라엘 민족을 세우신 뜻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이유와 목적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으로 구원을 받겠다는 율법주의가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이셨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자유함을 누리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와 여러 이방 교회와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만으로는 부족하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대표적으로 할례도 받아야 한다는 잘못된 가르침들이 들어 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 하나님의 온전하고 자유를 주는 구원의 복음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만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율법주의를 배척했습니다. 대항했습니다. 그렇기에 율법을 믿었던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대적하고 박해했습니다. 그렇기에 11절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아직도 할례를 전한다면 어찌하여 아직도 박해를 받겠습니까? 그렇다면 십자가의 거리낌은 없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이후에 성령님이 오시고 그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대속의 죽으심이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원자이시고 메시야이신 주님이심을 사도들과 성도들이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전파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예루살렘에서 핍박과 박해가 시작되지 않았습니까? 율법을 지켜 스스로 의롭다 함을 얻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의 박해를 받고 스데반 집사의 순교와 야고보 사도의 죽음으로 인해 각 지역, 각 나라로 흩어져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해 갈라디아 지역의 모든 교회와 성도들에게, 그리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된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모든 죄와 사망의 권세와 정죄함에서 자유함을 받고, 더 나아가 율법으로부터도 자유함을 받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여기며 정죄와 비난, 비판을 하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열등감과 좌절감 속에서 살아가는 신앙생활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도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할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는다는 잘못된 가르침을 들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 5:6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를 받거나 안 받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이 사랑을 통하여 일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13절에 다시한번 이렇게 권면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늘의 상속자로 부르셨습니다. 더 이상 죄와 사망, 세상과 사단, 율법의 종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모든 것에서부터 자유함을 누리게 하시기 위해서 복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믿음 안에서 의로운 자로 인쳐 주셨기에 이제 신분이 바뀐 자유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인 것이라는 것입니다. 율법의 형식에 매여 종노릇하는 것이 아니라 그 율법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자유함과 자원함속에 율법을 지킴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큰 계명을 지켜 나가는 자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구원과 자유함으로 우리가 지켜야 할 율법의 가장 큰 계명이 무엇입니까? 13절을 다시 읽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죄 용서함을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자유를 누리게 하셨는데 그 자유를 나를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받은 그 놀라운 용서의 사랑, 오래 참음의 사랑, 긍휼히 여기는 사랑, 희생으로 베푸는 사랑으로 서로 섬기는 일에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율법을 지키는 삶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14절에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1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예언자들의 말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아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왔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무엇으로 완성하셨습니까? 십자가의 사랑으로 완성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을 완성할 수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사랑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2:37-40절에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 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중요하고 으뜸 가는 계명이다. 둘째 계명도 이것과 같은데,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에 온 율법과 예언서의 본 뜻이 달려 있다”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율법은 마침이요 완성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율법은 신약의 율법과 다른 것이 아니라 동일한 것입니다. 성도된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어 성도된 우리가 진정한 자유인이 되려면 이처럼 율법의 형식을 넘어 주님께 받은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섬기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15절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어뜯고 잡아먹고 하면 피차 멸망하고 말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두 사람의 관계 속에, 가정에서,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도 서로 물고 뜯고, 싸우고 다투고 있는 모습이 있다면 어떤 문제, 누구의 문제가 아니라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 결국 피차 만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자유자의 삶을 바로 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 받은 그 놀라운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율법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인 사랑의 삶을 살아가기에 힘쓰는 참된 자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