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1:7-11
7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8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 사용하면, 선한 것입니다.
9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10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 때문임을 우리는 압니다.
11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나는 이 복음을 선포할 임무를 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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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의 말씀은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성도들이 바로 알고 행해야 할 참된 신앙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는 권면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의 사건 속에 담겨져 있는 구원의 복음,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 메시야 구원자로서 십자가의 죽으심이 모든 죄를 사하시는 대속의 죽으심이시기에 그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이 바울과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을 통하여 전해지며 곳곳에서 믿는 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선교 사역을 통하여 이방 지역 곳곳에 교회들이 세워졌습니다.
초대 교회가 세워지고 성장해 나갈 때 가장 큰 어려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이나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여전히 율법을 지켜야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들과의 부딪힘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율법이나 할례, 혹은 어떠한 의식을 지키고 행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이나 가르침을 거짓 가르침, 다른 교리라고 그것을 물리치고 받아들이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사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때 구원을 받고, 의로워지는 방법은 도덕을 지키고, 하고 하지 말아야 할 어떠한 율법이나 교리를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지 않느냐는 생각들을 가집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타당한 주장입니다.
유대인들은 구약에 모세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을 지킴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율법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율법대로 할례를 받는 것을 구원의 증표로 여겼습니다.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여러 가지 조항들과 세부적으로 해석하여 장로의 유전이라고 하는 전통을 만들어 성경에 명하지 않는 부분들까지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에베소에도 이러한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자들이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울은 7절에 “그들은 율법교사가 되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또는 무엇을 주장하고 있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목적을 5절에 “목적은 깨끗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율법에서 하라 하지 말라고 하신 명령들을 깨끗하지 못한 마음과 선한 양심이 아닌 부패하고 자기 중심과 이익을 위한 목적으로 형식적인 모습만 보이는 거짓 믿음을 보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의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가장 근본적인 또 다른 목적은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로마서 3:20절에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고 명하신 율법을 통하여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죄라는 것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죄인들을 위해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9-10절에서 “율법이 제정된 것은, 의로운 사람 때문이 아니라, 법을 어기는 자와, 순종하지 않는 자와,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않은 자와, 속된 자와, 아비를 살해하는 자와, 어미를 살해하는 자와, 살인자와, 간음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를 하는 자와, 그 밖에도, 무엇이든지 건전한 교훈에 배치되는 일을 행하는 자들”을 위해 주신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계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해야 할 일,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바로 알아 하나님의 뜻과 법에서 벗어난 악을 행하고 죄를 짓는 자들이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도록 주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십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나 외에는 다른 신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우상을 만들고 절하고 섬기지 말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
하지만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며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사실 외형적으로, 형식적으로는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고 했습니다. 안식일을 빠지지 않고 지켰고, 드려야 할 헌물도 드렸습니다. 수갑차고 감옥에 갈만한 살인이나 간음, 도적질, 거짓말이나 사기를 치지 않았습니다. 나름대로 기도생활도 하고 금식도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 속에 담긴 진정한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하니까 율법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외형적이고 가식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사랑의 삶이 드러나는 것임을 깨닫지 못하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비판하는 삶을 살면서도 자신들이 의로운 사람이요, 구원 받은 자라고 착각하며 산 것입니다.
나는 살인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얼마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 험담하고, 비난하고 정죄하는 일을 많이 하며 삽니까? 나는 간음하지 않고 산다고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우선으로 삼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이익을 우선으로, 자식을, 돈을, 건강을, 내 자존심과 고집을 하나님 말씀과 명령 앞에 내려놓지 못하고 사는 것이 간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며 산다고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내가 이해 되는 것, 내 마음에 드는 것만 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 앞에 이렇게 살겠습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얼마나 헌신하고 결단합니까? 그러나 지키지 않은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렇기에 우리는 거짓 맹세한 자들이고, 간음하고, 순종치 않는 자들이고 경건하지 못한 죄인인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안다고 하지만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시지 않으면 그 율법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안다고 해도 다 지킬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에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착각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으로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밖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11절에 “건전한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에 맞는 것이어야 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건전한 교훈, 즉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르는 교훈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1절에 복음을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복입니다. 가장 영광스러운 복입니다. 우리가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 은혜의 복음, 영광스러운 복을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으로 받은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에 합당한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