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하 23:31-37 / 24:1-5
31 여호아하스는 왕이 되었을 때에 스물세 살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석 달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하무달은 리블라 출신인 예레미야의 딸이다.
32 여호아하스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33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이 그를 하맛 땅에 있는 리블라에서 사로잡아 예루살렘에서 다스리지 못하게 하고 유다가 이집트에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다.
34 또 바로 느고 왕은 요시야를 대신하여 요시야의 아들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게 하였다. 여호아하스는 이집트로 끌려가 그 곳에서 죽었다.
35 여호야김은 바로의 요구대로 그에게 은과 금을 주었다. 그는 바로의 명령대로 은을 주려고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백성들은 각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배정된 액수대로 바로 느고에게 줄 은과 금을 내놓아야 하였다.
36 여호야김은 왕이 되었을 때에 스물다섯 살이었다.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다. 그의 어머니 스비다는 루마 출신 브다야의 딸이다.
37 그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1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해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왔다. 여호야김은 그의 신하가 되어 세 해 동안 그를 섬겼으나 세 해가 지나자 돌아서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하였다.
2 주님께서는 바빌로니아 군대와 시리아 군대와 모압 군대와 암몬 자손의 군대를 보내셔서, 여호야김과 싸우게 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신 것은, 자기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하신 말씀대로,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려는 것이었다.
3 이것은 므낫세가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주님 앞에서 내쫓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유다에게서 성취된 일이었다.
4 더욱이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예루살렘을 죄 없는 사람의 피로 가득 채운 그의 죄를 주님께서는 결코 용서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5 여호야김의 나머지 행적과 그가 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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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야 왕은 남 유다의 왕 가운데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길을 걸었고 우상을 제거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신앙의 길로 바로 인도했던 선한 왕이었습니다. 그런 요시야 왕은 안타깝게도 열왕기하 23:29절을 보면 “그가 다스리고 있던 때에 이집트의 바로 느고 왕이 앗시리아 왕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 쪽으로 올라갔다. 요시야 왕이 그를 맞아 싸우려고 므깃도로 올라갔으나, 바로 느고에게 죽고 말았다”요시야 왕은 이집트의 왕이었던 느고 왕이 앗시리아가 바벨론과의 전쟁을 할 때 앗시리아를 도우려고 올라올 때 이스라엘을 지나야 했는데 이스라엘을 지나게 해 달라는 이집트 느고 왕의 요청을 거절하고 그와 대적하다가 므깃도라는 곳에서의 전쟁에서 죽음을 당합니다.
요시야 왕이 전사한 후에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었지만 석달만에 이집트 바로 느고 왕에게 잡혀서 이집트로 끌려가서 그곳에서 죽습니다. 이집트 느고 왕은 요시야 왕의 아들 가운데 이집트에 우호적이라고 하는 엘리야김을 왕으로 삼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꿉니다. 그리고 은과 금을 이집트에 조공으로 바치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이유는 역사적으로 볼 때는 앗시리아 제국과 바벨론 나라의 전쟁으로 인해 앗시리아를 돕기 위해 이집트가 올라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성경은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원인이 바로 여호아하스의 악행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아버지 요시야 왕이 이집트 군대가 앗시리아 군대를 돕기 위해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쟁에서 전사하여 왕이 되었습니다. 나라가 위급한 상황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 요시야 왕이 하나님을 섬긴 그 신앙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왕이 된 그 3개월의 시간동안 23:32절을 보면 우상을 섬깁니다. “여호아하스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요시야 왕의 아들이었던 여호아하스는 아버지 요시야가 그토록 몸부림치며 나라를 거룩하게 개혁하려고 산당을 제거하고 우상을 버리는 개혁을 일으켜 하나님만 섬겼는데 아버지 요시야의 길을 따르지 않고, 이전의 악한 왕들이 했던 것처럼 우상 앞에 나아가는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 우상을 의지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우상의 길을 따랐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미련하고 안타까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여호아하스를 하나님께서는 돕지 않으셨습니다. 보호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믿는 우상이 너를 구하는지 한번 보아라” 라고 놔두신 것입니다. 그 결과는 패함입니다. 망하는 것입니다. 이집트 느보 왕에게 패하여 사로 잡혀 포로로 쇠사슬에 묶여 이집트에 끌려 간 것입니다. 결국 이집트에서 포로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여호아하스의 미련함을 본 받지 말기를 바랍니다. 위기의 시간, 어려움의 때에 우리가 의지하고 바라고 구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과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도움이시오, 구원자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함과 간절함,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가 간구하고 구하는 자에게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 곳곳을 보십시오. 환난 중에, 어려움 가운데,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부르짖는 자들을 구하셨습니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 있는 열왕기상하의 말씀 속에서도 얼마나 많습니까? 히스기야 왕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다. 그것이 구원의 길입니다. 축복의 길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시편 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안타깝게도 여호아하스는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의지하며 우상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런 여호아하스의 모습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와야 하는데 엉뚱한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나님이 아닌 사람과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나아갑니다. 그 결과는 불보듯 뻔합니다. 해결되지 않고 계속 문제와 불안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저와 여러분은 오직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고 간구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평강과 역사하심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여호아하스를 이집트 왕 느고를 통하여 심판하시고 3개월 만에 왕좌에서 포로로 이집트로 끌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여호아하스를 대신하여 이복형제였던 요시야 왕의 다른 아들 여호야김이 왕으로 세워졌지만 그 역시도 놀랍게도 37절을 보면 “그는 조상의 악한 행위를 본받아,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라고 말합니다. 여호야김이 어떠한 모습의 악한 행위를 했는지를 본문에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집트 느보 왕은 여호아하스를 사로잡아 포로로 이집트로 끌고 가면서 여호야김을 유다의 왕으로 세우고 속국으로 이집트를 섬길 것을 지시하며 많은 금과 은을 조공으로 바치게 합니다. 여호야김은 형 여호아하스가 왕이 되어 3개월간 행한 미련하고 악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결과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악한 길을 갔기에,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고 의지했기에 구원과 승리가 아닌 패배와 포로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가게 된 하나님의 심판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여호야김은 깨닫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호야김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며 소망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믿음의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데 그 상황 속에서 자기의 욕망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35절을 보면 “여호야김은 바로의 요구대로 그에게 은과 금을 주었다. 그는 바로의 명령대로 은을 주려고 백성에게 세금을 부과하였고, 백성들은 각자의 재산 정도에 따라 배정된 액수대로, 바로 느고에게 줄 은과 금을 내놓아야 하였다”즉 이집트 조공으로 내야 할 많은 금과 은, 내가 낼 것이 아니라 백성들에게 징수해서 내면 되지 라는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것입니다.
본문 열왕기하에는 나오지 않지만 예레미야서를 보면 여호야김 왕은 이집트에 내야 할 엄청난 금과 은을 마련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가혹한 세금을 징수하면서 그런 상황 가운데 자신이 거할 초호화판 왕궁까지 건설하는 무모한 짓을 저지릅니다. 예레미야 22:13-15절을 보겠습니다. “불의로 궁전을 짓고, 불법으로 누각을 쌓으며, 동족을 고용하고도, 품삯을 주지 않는 너에게 화가 미칠 것이다. ‘내가 살 집을 넓게 지어야지. 누각도 크게 만들어야지’ 하면서 집에 창문을 만들어 달고, 백향목 판자로 그 집을 단장하고 붉은 색을 칠한다. 네가 남보다 백향목을 더 많이 써서 집 짓기를 경쟁한다고 해서, 네가 더 좋은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네 아버지가 먹고 마시지 않았느냐? 법과 정의를 실천하지 않았느냐? 그 때에 그가 형통하였다”
이집트와의 전쟁에서 패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백성들, 무거운 조공을 바치기 위해 힘들게 세금을 강제로 내야 하는 상황으로 찌들대로 찌든 백성들의 고통과 기울어져가는 나라의 어두운 상황 가운데 자기 왕궁을 짓다니 백향목으로 단장하며 왕궁 짓는 일에 백성들을 동원하면서 품삯도 주지 않는 악함을 보인 것입니다. 그러한 여호야김 왕을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만이 아닌 예레미야 26장을 보면 우리야 라는 선지자를 여호야김 왕에게 보내 책망하며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으면 예루살렘과 이 나라에 재앙이 내릴 것이라는 예언을 합니다.
그러나 여호야김 왕은 우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회개하고 돌이키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야를 잡아 죽이라고 명합니다. 우리야 선지자는 할 수 없이 이집트로 도망합니다. 그런데 도망한 우리야 선지자를 잡아오기 위해 이집트로 수행원을 보내 우리야 선지자를 찾아와 칼로 죽였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서슴치 않는 것입니다. 여호야김이 남 유다를 다스린 11년은 멸망으로 달려가는 시간이었습니다. 나라의 멸망을 더욱 재촉하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여호야김 왕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십니다. 24:1절입니다. “여호야김이 다스리던 해에 바빌로니아의 느부갓네살 왕이 쳐들어왔다. 여호야김은 그의 신하가 되어 세 해 동안 그를 섬겼으나 세 해가 지나자 돌아서서 느부갓네살에게 반역하였다” 이집트에 패하여 이집트에 많은 조공을 바치며 지내고 있는데 그 사이에 앗시리아 제국을 재패한 바벨론 나라 느브갓네살 왕이 쳐들어 와서 남 유다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집트에 조공을 바치며 고생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바벨론에 사로 잡혀 바벨론의 식민지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벨론의 1차 침략이었고 1차 침략에 많은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 갑니다. 그때 끌려 갔던 사람들이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입니다.
그렇게 전쟁에 패하여 3년간 식민지로 바벨론을 섬기다가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반역을 일으킵니다. 왜 그랬던 것일까요? 3년 뒤에 느부갓네살 왕이 이집트를 공격합니다. 그런데 이집트의 필사적 저항에 부딪힌 바벨론군은 공격에 실패하고 바벨론으로 돌아갑니다. 그것을 지켜본 여호야김은 나름대로 이집트가 아직 더 강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바벨론에게서 등을 돌리고 반역을 하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그때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가 바벨론을 거역하지 말라고 간곡히 권했지만, 여호야김은 그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상황을 나름대로 판단하여 바벨론이 아닌 이집트를 지지하며 나선 것인데 그 일로 인해 느브갓네살 왕은 분노합니다. 사실 이집트가 강해서 바벨론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죽기 살기로 싸워서 간신히 이집트가 버틴 것입니다. 이집트를 점령하지 못하고 돌아와 마음이 상해 있는데 여호야김이 반역하여 이집트 쪽에 붙어버렸다는 소식을 듣고 느브갓네살 왕은 연합군을 결성하여 남 유다로 쳐들어 온 것입니다. 그것이 2절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바빌로니아 군대와 시리아 군대와 모압 군대와 암몬 자손의 군대를 보내셔서, 여호야김과 싸우게 하셨다. 이와 같이 주님께서 그들을 보내신 것은, 자기의 종 예언자들을 시켜서 하신 말씀대로, 유다를 쳐서 멸망시키려는 것이었다”
결국 예루살렘이 점령되고 어리석은 왕 여호야김은 이때 느부갓네살의 포로가 되어 쇠사슬에 묶인 비참한 모습으로 바벨론으로 잡혀가서 그곳에서 죽음을 당합니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한 유다 왕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였다고 말씀합니다. 3-4절입니다. “이것은 므낫세가 지은 그 죄 때문에 그들을 주님 앞에서 내쫓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유다에게서 성취된 일이었다. 더욱이 죄 없는 사람을 죽여 예루살렘을 죄 없는 사람의 피로 가득 채운 그의 죄를 주님께서는 결코 용서하실 수 없으셨기 때문이다”
여호야김은 우리야 선지자를 죽였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가 보낸 하나님의 말씀의 두루마기를 칼로 잘라 화로에 불태우는 오만함을 보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므낫세는 이사야 선지자를 톱으로 켜 죽였었습니다. 나중에 여호야김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토굴에 가두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왕들의 악행을 결코 묵과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죄에 대해 심판하신 것입니다.
열왕기 상하의 말씀에 나오는 왕들의 삶을 역사를 통해 우리는 살펴 보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분명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켜 주심, 축복하심과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하심으로 내리는 재앙이 보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고, 하나님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섬기고 예배하고 따르는 지혜를 얻기를 원합니다. 그것이 축복입니다. 그것이 살길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켜 주심, 인도하심, 축복하심의 길임을 기억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길을 걷는 자로 설 수 있기를 기도하며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