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6:1-4

1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3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4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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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장은 5장에서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를 설명한 후에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어떠한 모습인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1절을 보십시오.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난 사람에 대해 성령의 사람으로서 우리가 어떠한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를 알려 주십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 범죄하는 성도들,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을 하는 성도들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참으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육체의 소욕대로 행하는 모습은 비난, 정죄, 비판, 업신여김과 창피를 주는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모습은 은혜로 넘어가야 하는 것입니까? 1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두가지 원리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다는 것은 죄를 묵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직면하면서 바로잡아 주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잡는다’ 라는 원어인 ‘카타르티조’ 라는 말의 의미는 찢어지거나 깨진 것을 함께 이어서 회복한다는 의미입니다. 바르게 회복시키는 것이 바로 잡음의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바로 잡아 회복시키려는 의도보다 비난하고, 쫓아내고, 드러내려고 합니다.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이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 앞에 데리고 온 모습이 그러한 모습입니다. 안타깝게도 그러한 모습이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 간에 있음을 사도 바울이 본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은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준다는 것입니다. 온유함이란 지난 번 성령의 열매 가운데 나누었지만 내게 불편함과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에 대한 부드럽고 따스한 태도를 보이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했을 때, 해서는 안되는 말과 행동을 함으로 상처와 아픔, 손해와 어려움을 끼친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대하십니까? 어떤 마음, 어떤 얼굴, 어떤 말의 톤으로 그 사람을 대하십니까? 육신의 사람들은 살기가 있는 눈빛이나 경멸의 눈빛, 차가운 얼굴과 높은 톤으로 다그치지 않습니까?

성령의 사람은 온유한 마음, 즉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회복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부드러운 말과 태도로 말씀으로 잘못된 부분을 바로 잡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리고 우리 교회가 그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줄 수 있는 성령의 사람들, 성령의 교회가 되기를 함께 기도하기 원합니다.

두 번째 원리는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 잘못한 일에 대해 듣거나 알게 되면 얼마나 비난과 비판, 정죄와 손가락질을 합니까?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어떻게 그런 말과 행동, 그런 일을 그 사람이 할 수 있냐?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목사가, 집사가” 라고 흥분합니다. 간음한 여인이 끌려 왔을 때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마음으로 돌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우리를 돌아보면 우리 또한 죄를 쉽게 짓는 연약한 자들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 사람이 처했던 어려움의 상황과 유혹의 자리에 있었다면 우리 또한 그러한 죄를 지을 수 있는 자들이 아니겠습니까? 누군가 죄를 짓고 그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날 때, 해서는 안될 말과 행동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율법주의자들처럼, 나는 의로운 자인것처럼, 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고, 돌을 던져도 될 자격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지 말고 겸손하라는 것입니다. 나도 그러한 죄를 지을 수 있는 존재임을 알고 조심해야 할 경고로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라는 것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짐을 져 주십시오’ 라는 ‘바스타조’ 라는 원어의 의미는 ‘스스로 다른 사람을 대신하여 불쾌함이나 어려움을 견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대신 져 주신 모습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져야 할,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요, 수치요, 고통이요, 심판이셨습니다. 무겁고, 아프고, 고통스러움을 대신 지셨고 더 나아가 대신 죽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내가 살겠다고 변명하고 책임을 전가합니까?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질을 합니까?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은 사랑의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짐을 져 주는 모습입니다. 그 짐은 무거운 짐이고, 힘든 짐이고, 고통이요 책임을 물어야 하는 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서로 남의 짐을 져 줄 때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2절의 “여러분은 서로 남의 짐을 져 주십시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실 것입니다”라는 말씀이 갈라디아서 5:14절인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라는 말씀과 일맥상통 하는 말씀입니다. 로마서 13:10절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라는 말씀과 같습니다.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모습은 바로 서로의 짐을 대신 져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누군가 잘못한 것에 대해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 주고자 하는 모습을 보이며 상대방이 져야 할 책임과 어려움과 고통을 대신 져 주려는 마음과 모습으로 사랑한다면 그러한 관계, 그러한 가정, 그러한 교회는 사랑의 열매를 맺어 가는 아름다운 관계요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과 성도들, 그리고 가정과 교회가 내가 먼저 짐을 짐으로 인하여 사랑의 열매를 맺어 가는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 잡아주려는 모습과 상대방의 짐을 져 주려는 마음이 아니라 비난과 정죄하고 하는 사람은 어떠한 사람인가를 알려 주는 말씀이 3절의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것도 아니면서 무엇이 된 것처럼 생각하면 그는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스스로에 대해 “나는 의롭다, 나는 저 사람과 다르다. 나는 죄가 없다. 나는 비난하고 정죄할 만한 자격이 있다” 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자기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착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4절에 “각 사람은 자기 일을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자기에게는 자랑거리가 있더라도, 남에게까지 자랑할 것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실 때,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내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달을 때, 더 나아가 나만이 아닌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이 구원 받기를, 성령의 사람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바로 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으면 누군가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안타까워 할 것입니다. 내 자녀가 잘못된 길에 들어서거나,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마음으로 충만하면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 잡아 주려고 하지 않겠습니까? 그 영혼의 부족함을 채워주고, 고통을 위로하고, 그 영혼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돕고 기도하고 섬기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입니다.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보답하는 길이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기억하고 나의 삶이, 우리 교회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온유한 마음으로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서로의 짐을 져 주는 그러한 신앙, 그러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며 함께 힘쓰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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