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2:17-23

17 “그 뒤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황홀경에 빠져
18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19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잡아 가두고 때리고 하던 사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20 그리고 주님의 증언자인 스데반이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할 때에, 나도 곁에 서서, 그 일에 찬동하면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21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내겠다’ 하셨습니다.”
22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여기까지 듣고 있다가 “이런 자는 없애 버려라. 살려 두면 안 된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23 그리고 그들은 고함을 치며, 옷을 벗어 던지며, 공중에 먼지를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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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17절부터의 말씀은 바울이 자신이 다마스쿠스 성으로 가는 중에 밝은 빛 가운데 예수님의 음성, “사울아, 사울아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 라는 책망을 듣고 자신의 죄악을 깨닫습니다. 영적으로 얼마나 무지했던 자임을 깨닫습니다. 그것을 보여 주듯 그 자리에 엎드러져 눈이 멉니다. 주님의 지시로 다마스쿠스 성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뜹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이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바로 구원의 복음을 아나니아를 통해 알게 되고, 하나님께서 복음의 증인으로 자신을 세우셨다는 말씀도 듣습니다.

그후에 바울은 자신의 행적을 설명하는 것이 17-18절입니다. “그 뒤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황홀경에 빠져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이라고 했습니다.

본문만 보면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온 것이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아나니아를 만나 눈을 뜨고 복음을 듣고 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처럼 보이지만 갈라디아서 1장을 보면 바울이 다마스쿠스에서 회심한 후에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증인,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고 그 후 아라비아에 가서도 약 3년이란 시간을 보낸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돌아와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만난 예수 그리스도, 예수가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약에 예언되어 하나님께서 보내시겠다고 하신 메시야이시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희생 제물과 같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일이라는 복음을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3년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바울은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 기도합니다. 그러할 때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17-18절입니다.“그 뒤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황홀경에 빠져 주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말씀하시기를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네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3년 만에 돌아온 바울은 변절자였습니다. 배신자였습니다. 바울은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미워하고, 싫어하고 이단으로 규정하여 함께 핍박하고 잡아 들이는 일에 앞장섰던 주도자요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다마스쿠까지 가서 예수 믿는 성도들을 잡아와 처벌하겠다고 내려갔던 바울이 그곳에서 변절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었다는 소문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들었습니다. 다마스쿠스에서 예수의 복음을 전하고 더 나아가 아라비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예루살렘의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얼마나 기가 찼겠습니까? 돌아오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분노의 찬 마음들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3년 만에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바울은 목숨을 걸고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마음으로 온 것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음성을 성전에서 기도 중에 들었을 때 바울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19-20절입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였습니다. ‘주님, 내가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잡아 가두고 때리고 하던 사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증언자인 스데반이 피를 흘리고 죽임을 당할 때에, 나도 곁에 서서, 그 일에 찬동하면서,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대답은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을 것이니 예루살렘을 떠나라고 하시는데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적임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예수의 복음을 박해하는 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첫 순교를 당할 때 유대인의 편에 서서 그 죽음에 찬성하고 증언하고, 주동하였던 사람이었고,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기에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많은 유대인들이 있는 이 예루살렘에서 이제 자신이 참된 복음을 바로 알고 전하면 자신이 회심을 통해서 예수를 믿을 사람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할 적임자이기에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반대 의사를 말한 것입니다. 바울의 답변은 타당하고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람의 생각대로 전해지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분명 복음을 들을 때 옥토 같은 마음으로 그 복음을 받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인간적으로 잘 설명하고, 이해되도록 설득하고, 분명 받아들일 수 있는 진리를 제시해도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분명 동족 유대인들이 전에 자신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지 못하고 거부하며, 구원의 복음을 받아 들이지 않고 여전히 율법에 매여 살고, 잘못된 구원관과 메시야를 기대하고 이미 오신 메시야 구원자를 믿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기에 유대인들에게 먼저 복음을 전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래서 가는 곳마다 유대인의 회당을 먼저 찾아가 구약 성경을 해석하여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설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바울을 향한 계획은 단지 예루살렘과 유대인들이 아닌 모든 이방인들이었음을 알립니다. 그렇기에 21절에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들에게로 보내겠다’ 하셨습니다”라고 명하십니다.

사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최선을 다해 우리 교회와 우리 동족인 한인들을 위해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하지만 우리를 택하시고 교회로 부르신 더 큰 뜻은 가까이에 있는 한인들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모든 사람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 민족과 나라에까지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이 사실, 이 사명을 깨달아 어찌하든 복음을 전하는데 동참되고, 후원하고, 기도하고, 또한 기회가 되는대로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성도들, 교회가 되기를 도전하며 축원합니다.

하지만 분명 그러한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때 사단의 공격과 역사가 있습니다. 바울이 하나님께 받은 부르심과 사명 때문에 회심을 하게 되었고, 복음을 전하며 다닌다는 것을 말했을 때 바울의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22-23절에 “사람들이 바울의 말을 여기까지 듣고 있다가 “이런 자는 없애 버려라. 살려 두면 안 된다” 하고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들은 고함을 치며, 옷을 벗어 던지며, 공중에 먼지를 날렸다”라고 반응합니다.

사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아직 전하지 못하고 자신의 과거와 하나님께서 이방인의 사도로 자신을 사용하기 원하셔서 보내셨다고만 한 것인데 유대인들은 거기까지만 듣고 “이런 자는 살려 두면 안된다” 라고 하며 난리를 부립니다. 그들이 그렇게 분노하며 바울을 죽이라고 한 것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방인들에게 보낸다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유대인들은 오직 자신들만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실 민족이라는 잘못된 고정 관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았다고 하고 알고 지킨다고 하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우리가 이러한 유대인들과 같은 모습으로 잘못된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유대인들처럼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율법, 말씀을 안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참된 뜻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주님으로 믿고 따르지 않고 여전히 자신의 생각과 자기 복음으로 타협하는 신앙, 자기 중심의 신앙, 형식적인 신앙, 껍데기 신앙을 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참된 신앙, 바른 복음, 바른 믿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바로 알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앙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삶의 구원자와 주님이 되심을 바르게 알고 그 믿음에 합당한 순종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그 놀라운 십자가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심을 깨달아 그 사랑으로 주님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자로 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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