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8:36-40
36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37 (없음)
38 빌립은 마차를 세우게 하고, 내시와 함께 물로 내려가서, 그에게 침례를 주었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니, 주님의 영이 빌립을 데리고 갔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더 이상 볼 수 없었지만, 기쁨에 차서 가던 길을 갔다.
40 그 뒤에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났다. 그는 돌아다니면서 여러 성에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랴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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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명령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여 사마리아 성에서 나와 광야의 길로 나온 빌립 집사가 예루살렘에서 에디오피아로 내려가는 재무장관 내시를 만나 그가 읽고 있던 이사야 53장의 고난 받는 어린양이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시기로 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려 주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바로 대속의 죽음이시오 구원의 길을 열어주심임을 말씀을 통해서 예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빌립 집사가 설명하고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은 내시가 진리를 깨닫고 그 복음을 받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로 결단한 이디오피아 내시가 그 다음 어떤 행동을 취했는지를 알려 주는 말씀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의 태도이기도 합니다. 36절에 이디오피아 내시가 이렇게 빌립 집사에게 말합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물이 있는 곳에 이르니, 내시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빌립 집사에게 침례를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본문 37절을 보면 “없음”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구절 가운데 “없음”이라고 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 당시에는 인쇄술이나 자동적으로 복사를 해 주는 복사기가 없었기에 성경을 손으로 옮겨 적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옮겨 적은 복사된 수많은 성경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옮겨 적은 사본들 가운데 다른 성경에는 없는 내용이 적혀 있는 성경이 있는데 대부분의 성경사본에는 없기에 원본인 성경에 없는 것이 적혀 있다고 생각하기에 빼 놓은 구절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 구절들은 그 앞의 구절을 조금 더 분명하게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구절들이 많습니다. 37절을 적어 놓은 사본을 보면 이렇게 적혀져 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당신이 진심으로 믿는다면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자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침례를 받아야 하는 이유, 침례를 주는 이유를 분명하게 하는 구절인 것입니다.
빌립 집사를 통하여 이디오피아 내시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후에 침례를 받는 사건을 보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상 사명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태복음 28:19-20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이디오피아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은 후에 침례를 받아야 함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36절에 보십시오. “여기에 물이 있습니다. 내가 침례를 받는 데에, 무슨 거리낌이 되는 것이라도 있습니까?” 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에게 “침례를 주라” 고 하신 이유와 침례를 받는 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한국 성경에는 침례라는 말보다는 세례라는 말을 더 많이 사용합니다. 세례 혹은 침례라는 말은 성경이 쓰여진 헬라어 즉 그리이스 말로 보면 ‘밥티조’ 영어로 ‘Baptize’ 라는 단어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말의 의미는 ‘물에 담근다. 물에 넣는다’ 라는 말입니다. 그렇기에 사실 침례교회에서 사용하는 ‘물에 잠기는 예식” 이란 의미인 ‘침례’ 라는 말이 더 정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침례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물에서 나오시다 라는 ‘Out of Water’ 라고 영어로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물속에 잠기게 하는 침례를 주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물속에 잠기게 할 수 없는 병자들이나 아픈 사람들에게 머리에 물을 뿌리는 약식의 세례, 더 나아가 기독교를 박해하고 핍박하는 상황에서 강이나 물가에서 침례를 줄 수 없기에 약식의 세례를 하게 된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느냐, 혹은 장로교처럼 물을 찍어 뿌리느냐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무엇 때문에 침례를 받는 것이며, 침례를 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침례를 주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누가 침례를 받습니까? 예수님이 누구신지 분명히 알고 믿는 사람들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나의 죄의 값과 형벌을 대신 치루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나의 구세주이심을 믿는 자가 받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오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즉 죄 용서하심을 위해 십자가 위에서 대속하여 죽으셨고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시기 위해 부활하심을 인정하고 믿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죄를 대속하여 주신 구세주시오 내 삶의 주인 되심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 믿음을 가진 자가 침례를 받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인해 죄 용서함을 받았고, 의롭다 칭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셨다는 것을 고백하는 의식이 바로 침례입니다. 침례를 받음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닌 구원 받았고 새 사람이 되었고, 그러한 삶을 살기로 결단했기에 받는 것이 침례입니다. 다시 말해서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 받음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예식입니다.
침례의 의식은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입니다. 그 의미는 죄에 대해서는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갈 때는 죄인이었지만 물 밖으로 나올 때는 의인으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갈 때는 내 육신의 정욕과 욕심대로 살았던 죄인이었는데 물 밖으로 나올 때는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의 말씀과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사는 자로 나온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나는 이제 예수님의 것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담대하게 보이며 살겠다는 마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진정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침례를 받은 자입니까? 진정 그러한 의미를 알고 받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알고 믿는 마음으로 받으셨습니까? 이디오피아 내시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자신의 죄를 대속하신 죽으심임을 믿었습니다. 그 예수를 믿을 때 죄 용서함과 구원 받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의 침례가 바로 이 믿음으로 받은 침례가 되기를 원합니다. 단 한번의 침례가 아니라 매일 매일 죄에는 죽고 의를 위해 살아가는 영적 침례를 받고 살아가는 자가 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