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3:8-12

8 그런데 이름을 엘루마라고 번역해서 부르기도 하는 그 마술사가 그들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9 그래서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10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11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12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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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바나바가 키프로스 섬의 수도인 바보에 와서 복음을 전했을 때 그 섬의 총독이었던 서기오 바울이라는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청하여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이었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뜻을 행할 때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가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유대인이었던 바예수라는 마술사, 즉 모든 학문에 능통하고 서기오 바울 총독의 고문으로 있는 바예수라는 사람이 총독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못하도록 애를 썼습니다.

바예수라는 유대인의 이름은 구원자의 아들이라는 뜻이지만 그는 그 이름을 엘루마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었습니다. ‘엘루마’라는 단어는 아람어나 혹은 아랍어로 마술사라는 뜻입니다. 바예수는 구원의 아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지만 이름과는 거리가 먼 행동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거짓 예언자였습니다. 참된 복음을 받고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는 방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있던 시대만이 아니라 이 시대에도 이런 바예수와 같은 자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거짓을 말하고,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사단의 역사와 사단에게 쓰임 받는 수많은 사람들과 단체, 이단들이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성도라고 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예수를 믿어야 할 새로운 영혼들에게 거룩함을 드러내지 못하여 신앙의 걸림돌이 되고, 상처와 실망, 분노를 주어 교회를 떠나게 하는 성도답지 못한 이름만 성도인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 바예수, 엘루마라는 사람이 한 일에 대해서 8절에 “그 마술사가 그들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믿지 못하게 하려고 애를 썼다” 라고 말합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총독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고 구원을 받게 하려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의 아들되심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의미와 부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을 때 받을 수 있는 구원의 복음을 전했지만 마술사 엘루마는 그것을 방해하여 총독으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지 못하도록 힘을 썼다고 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키프로스 섬 전체를 다스리는 서기오 바울 총독 이 한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얼마나 큰 영향력이 그 땅에 퍼지겠습니까? 하지만 바예수라는 사람은 자신이 총독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거짓 예언을 통하여 자신이 큰 이익과 명예를 누리고 있는데 총독 이 예수님을 믿게 되고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알게 된다면 자신의 거짓이 드러날 것이기에 자신이 당할 처벌이나 불이익이 올것을 알았기에 마술사 엘루마는 온 힘을 다해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복음에 태클을 걸고 그 복음을 받고 믿으려는 총독을 막은 것입니다.

바예수라는 사람의 행한 일은 결국 자신의 욕심과 연관되어 있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것입니다. 이 땅의 편함과 이익만을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신이 높임을 받는 것과 자존심, 명예와 자리에 연연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자기가 가진 기득권을 놓치기 싫기 때문인 것입니다. 참된 복음을 받고 믿는 사람들은 나의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육체의 정욕을 채우는 삶이 아닌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 땅의 편함과 이익이 아닌 영원한 천국과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희생과 섬김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의 자존심, 명예, 자리를 추구하지 않고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세워지는 삶, 잃어버린 영혼들이 구원 받는 삶을 추구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세상에는, 더 나아가 교회 안에서조차 자기 육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나의 뜻과 자리와 명예와 고집을 내려놓지 못하고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이 나에게 없는지 돌아보고 회개하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돌이킬 수 있도록 바로 가르치고 인도하며 그 영혼이 변화되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예수가 왜 그렇게 바울과 바나바가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방해하고 총독이 믿는 것을 막았는가를 생각해 볼 때 바예수는 교만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 노력을 합니다. 겸손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 남보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많이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마술사 바예수, 엘루마는 자신이 많은 것을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고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전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바나바와 바울이 전하는 참된 십자가의 복음에 귀를 막고 더 나아가 다른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방해한 것입니다.

사실 진정으로 많은 학문과 배움을 가진 사람이라면 배울수록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오묘하심을 인정하며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열망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함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을 부정하고,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로 서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바예수, 마술사 엘루마는 후자의 인생이 되어 하나님과 하나님의 복음을 대적하는 자로 섰습니다.

그런 바예수를 보고 사울이 성령이 충만하여 외칩니다. 9-10절입니다. “그래서 바울이라고도 하는 사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모든 정의의 원수야, 너는 주님의 바른 길을 굽게 하는 짓을 그치지 못하겠느냐? 보아라, 이제 주님의 손이 너를 내리칠 것이니, 눈이 멀어서 얼마 동안 햇빛을 보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드디어 사울의 이름을 바울로 쓰여집니다. 전에도 한번 말씀드렸지만 사울이라는 이름을 유대식 이름이고 바울이는 이름은 로마식 이름입니다. 이제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 사역으로 나아가기에 유대인 이름인 사울이라는 이름보다 이방인들에게 더 편한 바울이라는 이름으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9절에 “바울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마술사를 노려보고 말하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개역성경에는 “주목하여 보고” 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이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눈으로 바예수를 바라보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마술사 바예수, 엘루마는 당대에 모든 학문을 배운 지식인이었고 총독의 자문을 할 만큼 지혜로운 사람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의 충만함 속에 영적인 눈으로 볼 때 마술사 바예수는 거짓 선지자였고 사단에 사로잡혀 사람을 속이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악행자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길을 막는 악으로 가득한 자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이 땅에서 성공한 자이고, 다 가진 것 같고, 부한 자 같고, 많은 일을 감당하는 사람같지만 영적인 눈으로 볼 때 사단에 사로잡혀 죄 가운데 헐벗고, 영원한 지옥 형벌에 들어갈 불쌍한 자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자신의 뜻대로 살아가는 죄인이며 하나님의 길을 거스리고 막는 자로 살아가는 것이 보입니다.

바예수, 엘루마가 그러한 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이 “너, 속임수와 악행으로 가득 찬 악마의 자식아” 라고 책망한 것입니다. 총독과 그의 곁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가 지식이 풍부하고 총독의 자문자로 있었기에 그가 하는 말이 옳고, 지혜롭고, 바르다고 동의하고 감격하기도 했었겠지만 성령의 충만함으로 그의 마음 깊은 곳을 보니 그가 행하고 말하는 것이 다 자신의 이익과 욕심을 위해 거짓과 악을 행하는 것임을 본 것입니다. 그 모든 근본이 바로 악마의 자식, 사단의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말이 하나님의 진리요 참됨을 분명히 깨닫게 하기 위해서 바울은 엘루마를 향해 10절에 “네 눈이 멀것이다” 라고 선포합니다. 놀랍게도 그 말이 떨어지자 11절에 “곧 안개와 어둠이 그를 내리덮어서, 그는 앞을 더듬으면서, 손을 잡아 자기를 이끌어 줄 사람을 찾았다” 라고 말합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인도하는 선지자라고 자부했는데 한치 앞도 보지 못하는 소경이 된 것입니다.

그 결과를 보고 12절에 “총독은 그 일어난 일을 보고 주님을 믿게 되었고, 주님의 교훈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과 사건을 통하여 우리가 기도하기 원합니다. 엘루마, 바예수처럼 자신의 기득권, 육신의 욕심과 정욕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거부하는 죄악을 버릴 수 있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영적인 눈이 열려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바로 보고 잘못된 죄악과 사단에 사로잡혀 있는 죄를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 앞에 바로 서서 믿고 따르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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