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2:20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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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할 때 신앙생활의 본질과 예수님을 따라 사는 삶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삶의 목적을 바로 알고 사셨던 분이셨습니다. 이 땅에 오셔서 해야 할 삶의 본질과 목적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삶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배고픈 사람들을 먹이시고 귀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시려는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수단이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시고 눈먼 자의 눈을 뜨게 하시고 문둥병자를 깨끗케 하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빵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는 기적을 행하신 것은 사람들에게 “내가 바로 하나님이다. 내가 바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너희의 죄의 문제와 형벌에서 구원할 메시야다” 라고 알려 주시기고 믿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반 동안 자신을 따르고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라고 질문했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 당신은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야 즉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았을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인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의 죄 값을 대속하시고 하나님께 용서함을 받고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화목과 구원의 축복에 대해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본질과 목적은 우리를 죄를 용서하시는 길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죄의 형벌에서 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스스로 지시는 삶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은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생명을 주시는 삶이 바로 예수님의 삶, 십자가의 삶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인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신앙생활의 본질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희생과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앙생활의 본질은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신앙의 기초, 신앙의 중심은 십자가입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삶을 본받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좇으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좇는 삶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란 수도사적인 금욕적인 삶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중심의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삶, 나 우선순위의 삶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6:33절의 말씀과 동일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우선순위를 내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원하심에 먼저 두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삶,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인간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갈등과 고통이 있기에 원하지 않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지시는 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 “나의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해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자신의 원함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인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이란 하나님의 뜻에 내 뜻을 내려 놓고 순종하고 따르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뜻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그 십자가의 고난을 받고 죽음을 받을 것을 알려주자 베드로가 반대했습니다. 항의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함도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를 책망하신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3절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에게 걸림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베드로는 하나님의 아닌 사람의 즉 자신의 원함과 기대, 욕심만은 생각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되셔야 자신이 높은 자리에 앉을 수 있고, 부와 권력, 편함을 보장 받고 누릴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잡혀서 죽으시면 그 꿈이 물거품이 되기에 강하게 “그러시면 안됩니다. 예수님께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됩니다” 라고 가로 막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앞에 내 뜻, 내 원함, 내 생각과 계획을 내려놓는 삶이 바로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된 신앙의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 십자가 위에 자신을 못 박았습니다. 십자가 위에 자신을 죽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고 고백하며 따르겠다고 결단하고 헌신한 우리들도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 위에서 나를 죽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욕심, 인간적인 마음과 감정들, 세상의 방법과 가치관, 나의 이익과 뜻을 이루기 위한 인간적인 방법들을 십자가 위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을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나”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갈라디아서 2:20 절에도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과거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현재에 예수님처럼 날마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삶을 살겠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내 옛 모습, 내 옛 성품, 내 편안함, 내 고집, 내 자존심을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고 내 안에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드러나도록 나를 죽이는 삶이 바로 크리스챤의 삶입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살게 하는 삶이 바로 십자가의 삶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삶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십자가를 지는 삶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 때 주님은 우리에게 힘을 주십니다. 평강을 주십니다. 자족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감사하는 마음을 주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얼마나 어렵습니까? 기쁜 일 보다 슬픈 일이 많습니다. 생각지 않은 문제들이 생깁니다. 늘 염려와 걱정을 해야 할 일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경제적인 문제로, 사람과의 불화로, 자녀 교육, 수많은 어려움과 문제가 우리의 인생 가운데 겪어야 할 일들입니다.
생활이 안정되어 있는 사람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반이 닦여 있고 나름대로 성공하고 부유하고 누릴 것 누린 사람들에게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허무입니다. 살만큼 살았고 가질만큼 가져보았는데도 삶이 허무한 것입니다. 허무함을 달래보기 위해서 좋은 물건도 사봅니다. 명품도 구입합니다. 여행도 다녀옵니다.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져 보아도, 아무리 좋은 것을 보아도, 먹어도 만족함과 채움을 주지 못합니다.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입니다. 하늘의 소망이요, 평강이요, 기쁨입니다. 그것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내 스스로 얻을 수 없습니다. 참된 소망과 기쁨과 지족하는 마음은 바로 십자가에서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해서 나아갈 때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때 주님은 우리에게 “너는 내가 내 목숨까지 줄 정도로 사랑하는 나의 자녀다. 내가 너를 끝까지 사랑하고 보호하고 책임져 줄 것이다. 나는 너의 아픔과 고난과 어려움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 고통과 고난의 시간이 지나면 네가 정금처럼 나올 것이고 부활의 영광과 면류관을 너에게 줄 것이다. 내가 네게 힘을 주고 도와 줄 것이다. 두려워 말고, 근심하지 말고 염려하지 말아라”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며 주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이 힘들게 느껴지지만 순간 순간 들려 주시고 확인해 주시는 이러한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이러한 나를 사랑하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면 우리가 힘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감사와 찬양과 기쁨이 속구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십자가를 지지 않고,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바라보지 않고 사람을 보고 환경을 보고 내 중심대로, 내 앞에 있는 문제만 보고 살기 때문에 죽겠다는 생각과 포기하고픈 생각과 원망과 불평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볼 때 내가 소중한 존재구나,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귀하게 생각하는구나. 내가 무엇이관데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을 만큼 나를 사랑하신 주님을 생각하면 새 힘이 솟아나게 됩니다. 좁은 길을 걸으면서도 밤낮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습니까? 깊은 추운 감옥에 갇혀서 헐벗고 추워도 그들은 기뻐했습니다. 매를 맞아도 찬양을 했습니다. 편안한 집도 없고 예배당도 없지만 시체가 썩는 냄새가 나는 아닌 지하 공동묘지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았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다시 한번 주님의 사랑의 완성이신 십자가를 날마다 바라보며 날마다 십자가를 묵상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 가운데 “나 주님의 기쁨되기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한가지 주님의 기쁨이 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진정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나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는 삶을 살 때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세상의 아름다운 일들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가정이 아름다운 가정, 좋은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부모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누군가의 기도와 희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 된 것,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신앙이 이만큼 성장한 것은 누군가의 희생과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섬김을 받으려 합니다. 섬김을 받는 자가 높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역설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높은 자라고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섬기고 희생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누가 섬기고 희생할 수 있습니까?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바라보고 깨달을 때 내가 희생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희생하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내가 희생했을 때 좋은 결과와 열매들이 바로 바로 생기면 희생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희생하고 섬기는데 열매와 결과가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닙니까? 참된 희생과 섬김은 내가 원하는 결과와 열매가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꿋꿋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희생과 섬김은 내 의지, 내 노력으로 되지 않습니다. 잠시동안은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힘과 내 의지, 내 노력으로 하는 희생과 섬김은 내가 원하는 결과와 내가 원하는 시간에 열매로 나타나지 않으면 내려놓습니다. 내 던져 버립니다. 중단합니다. 누가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참된 섬김과 희생을 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희생과 십자가의 헌신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그 예수님의 십자가를 올바로 깨닫고 아는 사람이 희생을 기쁨으로 특권으로 생각하며 끝까지 섬기고 희생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24-25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십자가를 알지 못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고 우리가 살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계산적이고 이기적이고 나 중심적입니다. 희생하지 않고 섬기지 않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십자가를 깊이 함께 묵상하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희생, 예수님의 섬김, 예수님의 대속의 죽음을 묵상하며 진정으로 “주님, 내가 내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지고 십자가의 삶을 살겠습니다” 라는 고백이 있기를 원합니다. 십자가는 철저하게 희생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의 희생이 나를 구원했습니다. 십자가가 있었기에 부활이 있었고 십자가의 희생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합니다. 십자가를 바라보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십자가의 삶을 살아 주님을 기쁘시게 하며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부활, 십자가의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