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고린도전서 13:4
4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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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4절에 “사랑은 오래참고 친절합니다” 라고 알려 주십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고 불평이 나오게 하는 그러한 사람에 대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 믿음의 사람으로 성숙하고 변화시켜 주시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래 참으며 친절하게 대하는 태도가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아가페의 사랑이며 우리가 행해야 사랑의 모습이라고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서 사랑이 아닌 모습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심으로 어떠한 사람이 아가페의 사랑,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랑임을 알려 주십니다. 그 말씀이 무엇입니까?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시기 즉 질투, 뽐냄, 교만함은 같은 의미입니다. 교만하고 뽐내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시기하고 질투합니다. 겸손한 자,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시기나 질투가 아닌 칭찬과 인정을 해 줍니다. 인생의 많은 비극과 불행이 사랑이 아닌 시기와 질투, 뽐냄과 교만함에서 옵니다.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까지 불행하게 만드는 비극의 원인이 됩니다.
세상은 나보다 가진 자, 높은 자, 성공한 자, 잘난 사람을 시기하고 질투해야 성공할 수있다 라고 질투를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도전 정신을 불러 일으켜서 나를 더 높은 곳으로,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또 사랑하기 때문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것이다 라는 말도 합니다.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그것은 옳은 말이 아닙니다. 절대로 질투는 사랑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시기는 죄입니다. 시기는 하나됨이 아닌 나뉨과 불행을 가져옵니다. 가인과 아벨의 사건을 보십시오. 첫 살인이 시기와 질투함을 이기지 못해 일어나지 않습니까? 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 사울이 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잘하는 것을 시기하기 시작함을 인하여 왕으로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해서는 안되는 수많은 죄를 짓고 시기함을 인하여 악의 영에 씌여 정신 이상을 일으켜 망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시기함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바로 뽐냄과 교만함에서 왔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기 전에 나 같은 자가 어찌 왕이 되겠냐고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전쟁에서 승리하며 백성들의 칭송을 받기 시작하면서 전쟁에 승리를 자신의 능력으로 된 것처럼 기념비를 세우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함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 교만한 마음이 마음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고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공을 세우고 돌아 왔을 때, 백성들이 다윗을 칭찬할 때 박수쳐 주고, 인정해 주고 높여주기 보다 죽이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라는 부정어를 돌려서 긍정어로 표현한다면 “사랑은 다른 사람을 칭찬하고 인정해 주며, 자신은 낮추고 겸손한 태도로 대하는 것입니다” 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나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 될 때 진정 기뻐하시고 마음으로 칭찬하시고 인정하는 마음입니까? 아니면 겉으로는 기뻐해주지만 속으로 시기하고 질투를 하십니까? 질투는 어디서부터 생기는 것입니까? 질투의 근원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됩니까? 질투는 비교 의식을 가질 때 생깁니다. 누군가 나보다 너 많은 재물, 또는 능력, 인물이 있을 때 “저 사람은 저많큼 가졌는데 나는 왜 이것밖에 없어?”라고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하기 시작할 때 질투가 시작되고 원망이 시작됩니다.
비교와 시기를 버리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2장인 은사의 장에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모든 것은 한 하나님께서, 한 성령님께서 그 뜻에 따라 주셨다는 진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분의 뜻대로, 우리에게 맞게 누군가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한 달란트라고 할찌라고 그것은 적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비록 재능이 큰 재능이 없을지라도 한 지체를 이루는 작은 파트지만 중요하고 귀한 것임을 기억하고 주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다” 라는 마음을 가질 때 시기와 질투가 아닌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높여 줄 수 있는 마음과 태도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기와 질투를 극복할 수 있는 원리는 주님 안에 나에 대한 건강한 자아상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인간적으로, 세상적으로 나와 비교해 볼 때 더 나은 사람, 더 가진 사람, 더 능력 있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할 때 시기와 질투심을 마음에 품으면 불행해 집니다. 미움과 편견, 분노와 다툼 싸움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나에게 필요한 부분을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셨다는 하나님으로 인한 자존감을 가져야 합니다.
미국의 흑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한 사람을 뽑으라고 한다면 마틴루터 킹 목사와 말콤 엑스라는 지도자를 뽑습니다. 말콤 엑스의 자서전을 보면 그는 어려서부터 백인들을 미워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흑인이라는 흑인으로 태어난 것에 대한 열등감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백인이 우월하다는 질투심 때문에 백인을 미워했지만 백인이 되고픈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릴때 자신의 피부를 희게 하려고 피부를 희게 하는 크림을 사용도 하고 머리를 물들여서 검은 머리를 바꿔보려고도 하고 꼬불거리는 머리를 피려고도 노력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자신이 더 비참해짐을 느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나는 백인이 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흑인이지만 흑인 그 자체로서 나는 숭고하고 아름다운 존재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 사람이 흑인의 영웅으로 지도자로 부상하면서 흑인 사회에 유행하게 된 유명한 모토가 있습니다. 그 모토가 우리가 잘 아는 “Black is beautiful” “검은색은 아름답다” 라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10절에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이 세상에서 유일하고 고유한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비교의 대상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존재,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자임을 굳게 붙드심으로 시기와 비교, 질투의 유혹을 이기는 자 되십시오.
사랑은 시기, 교만하지 않는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랑은 상대가 가진 것을 함께 기뻐하며 칭찬하며 인정하고 축복하는 것입니다. 교만과 시기는 나를 망하게 삽니다. 불행하게 합니다. 관계를 깨트리고 분열과 불행을 가져 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랑하면 우리의 삶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더욱 풍성하고 행복해 질 것입니다. 사랑의 명령은 축복의 명령입니다. 사랑의 삶을 통해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