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8:9-11

9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11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면서, 일 년 육 개월 동안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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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나를 넘어트리는, 나를 힘들게 하는 부분이나 사람들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잘 하려고 하고 그래도 이제 조금 되어 가는가 보다 하는데 나의 발목을 붙잡고 다시 나를 넘어트리게 하는 일이나 사건 혹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회사의 상사일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상사가 던진 말이나 하는 행동에 내 신앙생활이 영향을 받습니다. 어떤 사람은 남편이 내 신앙생활에 영향을 미칩니다. 남편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내 신앙이 바닥을 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아내에 의해, 혹은 함께 신앙생활하는 교회의 성도와의 부딪힘의 문제가 생기면 교회도 나오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 문제하고만 걸리면 힘들어 합니다. 어떤 사람은 누구와의 관계로 마음이 상하면 신앙의 바닥을 칩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생기면 바닥을 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 내가 받은 상처나 죄책감이 떠오르면 몇일 몇주간 바닥을 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 삶을 낙담하게 하고, 신앙으로 바로 서지 못하도록 공격하는 그러한 분야를 영적인 견고한 진이라고 표현합니다. 누구보다 사단이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견고한 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단도 그 부분을 노립니다.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공략하면 우리가 넘어질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에서 승리하려면, 우리가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려면 우리의 견고한 진을 알아야 하고 그 부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바울이 17장에서 그리스 아테네에서 복음을 전한 후에 고린도라는 도시로 갔습니다. 고린도라는 도시는 항구도시로 그 당시 가장 큰 도시 중에 하나였습니다. 동북쪽으로는 로마와 유럽으로 가는 지점이고 서쪽으로는 아시아를 연결하고 남쪽으로는 이집트를 연결하는 중요한 항구도시였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무역의 도시였고 수많은 뱃사람들이 오가는 곳이기에 성적으로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것과 함께 공인된 창녀와 성적인 관계를 갖는 것을 공인화한 그 당시 가장 성적으로 타락하고 문란한 도시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바로 이 곳 고린도에 머물면서 썼습니다. 로마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이 짓는 죄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24-32절을 보면 동성연애의 죄로부터 시작해서 악행, 탐욕, 악의, 시기, 살인, 수군거림, 불손, 오만, 무정, 무자비 등등의 수많은 죄의 목록을 적어 놓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죄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쓸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고린도에 있으면서 고린도 사람들이 짓는 죄의 모습을 피부로 느끼고 눈으로 직접 보았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로 고린도는 죄악의 도시였습니다.

그런 고린도 도시에 사도 바울이 그 고린도에 들어온 것입니다.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서 데살로니가로 갔더니 유대인들이 좇아와서 세상을 어지럽히는 사람이라서 잡아 죽여야 한다고 선동을 해서 베뢰아로 갔습니다. 베뢰아 사람들이 그래도 복음을 받아들여서 그곳에 머물려고 했는데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좇아와서 죽이려고 해서 배를 타고 아테네로 갔습니다. 아테네에 갔더니 수만가지 우상들이 세워진 것을 보고 거룩한 분노를 냅니다. 그 아테네에서 떠나 이번에 고린도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고린도는 그동안 다니던 도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죄악으로 가득 찬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도시였습니다. 사역하면서 계속 쫓겨 내려 왔는데 이런 곳은 더 이상 없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도시가 바로 고린도였습니다. 우리 표현으로 한다면 갈수록 태산인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이렇게 죄악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내가 더 이상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이런 도시가 아닌 곳에서도 힘들었는데 이 도시는 도저히 안되겠다. 내 힘으로는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곳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중에 고린도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인 고린도전서 2:3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 나는 약하였으며 두려워하였으며 무척 떨었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고린도에 와서 죄악된 모습을 보면서 사도 바울에게 이런 마음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사도 바울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9-10 “그런데 어느날 밤에, 환상 가운데 주님께서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사도 바울이 마게도냐 환상을 보고 유럽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테네에 갔는데 그때는 하나님의 환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에 들어오니까 사도 바울에게 다시 환상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 “두려워하지 말라” 라고 말씀하셨겠습니까? 지금 사도바울이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에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저는 할 수 없습니다, 여기는 안되겠습니다”라는 두려운 마음이 있기에 하나님께서는 “무서워하지 말고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라”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에게, 또한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복음을 선포하라”고 하시는 이유에 대해서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기에 아무도 너를 해하지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이유, 마지막으로 하시는 말씀이 “이 도시에 내 백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너는 이 도시가 죄악 중에 있기에 소망이 없고,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지만 이 죄악 된 도시에 구원받을 백성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너는 죄악으로 가득 차 있기에 두려워서 할 수 없다고 생각되지만 구원받을 내 백성이 이 도시에 많다는 것입니다.

내 삶 가운데 이러한 두려워하게 하는 부분,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어떠한 사람, 어떠한 문제, 어떠한 상황을 보면서 좌절하게 되고, 내려놓고 싶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더 이상 소망이 없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 때 하나님께서 사도행전 18:9-10 을 주시는 것입니다. “무서워하지 말아라. 잠자코 있지 말고, 끊임없이 말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에게 손을 대어 해하지 못할것이다. 이 도시에는 나의 백성이 많다” 우리가 할 수 없다고 하는 부분, 고린도라고 생각하는 그 부분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 죄를, 그 견호한 진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이 우리 안에 계신다고 믿는데 우리는 할 수 없다는 말을 쉽게 합니다. 눈앞에 보이는 문제를 보면서 안 된다고 도망하려고 합니다. 두려워합니다. 내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 성령의 능력은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는 고린도를 점령할 수 있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영적인 전쟁에서 승리하고 도시를 점령할 수 있습니까? 첫째, 함께 함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18:2 “거기서 그는 본도 태생인 아굴라라는 유대 사람을 만났다. 아굴라는 글라우디오 황제가 모든 유대 사람에게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에 얼마 전에 그의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다. 바울은 그들을 찾아 갔다” 고린도에 와서 죄악된 도시를 보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을 때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부부를 찾아 함께 동역을 합니다.

영적 전쟁은 혼자가 아니라 신앙의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독불장군처럼 혼자 사역이나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늘 누군가와 함께 선교를 나갔습니다. 고린도에 왔을 때 그는 혼자였습니다. 그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미리 예비해 주시고 만나게 하십니다. 18장 앞 부분에 그들이 로마에 살고 있었지만 로마 추방형으로 인간적으로 볼 때는 부당하고, 억울하게 원하지 않는 고린도로 와서 살게 되었지만 그것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깨닫게 됩니다.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를 만나 그들의 집에 거하며 그들과 함께 고린도에서 사역을 한 것입니다. 그들 부부로 인해 힘을 얻어 다시 일어나 힘 있게 복음의 사역을 감당하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로마서 16:3-4절을 보면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에 대해 설명할 때 자신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줄 만한 사람이었다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이 옆에 있었기에 사도 바울이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이러한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숨을 내어 줄 정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분은 어떻습니까? 목숨을 내 줄만한 동역자입니까?

영적인 전쟁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위해 함께 뛰며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나에게 없습니다” 라고 말하기 전에 누가 나를 위해서 죽어줄 사람을 찾기보다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명을 위해서 서로 다르지만 그 사명 때문에, 그 사랑으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둘째, 오래 참음과 집중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18:11 “바울은 그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일년 육 개월 동안 머물렀다”2차 선교여행이 2년 6개월 동안 유럽 전역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도시 고린도에만 1년6개월을 머물렀습니다. 고린도가 어떠한 지역이었습니까? 죄악의 도시입니다. 한시라도 빨리 도망하고 싶은 도시입니다. 있고 싶지 않고 두려웠던 도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도시에 1년 6개월을 머뭅니다. 사도 바울에게 1년 6개월이면 우리에게는 16년 정도의 시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래 참음과 집중이 있을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내가 조금 싫으면 미워하고, 험담하고, 다투고, 보지 않습니다. 견디지를 못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외국사람들이 본 한국 사람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빨리 빨리입니다. 밴딩머신 커피를 빼 마실 때 동전을 넣으면 컵이 나오고 그 다음 커피가 내려 옵니다. 커피가 다 내려온 다음에 커피컵을 빼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컵에 커피컵을 들고 커피가 내려오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커피가 튀어서 손을 딘다고 합니다. 아이스크림도 빨아 먹지 않고 깨물어 먹다가 머리 아프다고 합니다. 한국 남자들은 결론이 뭐야 라고 드라마나 영화. 남편들은 아내가 할 말이 있다고 하면서 , 오늘 아침에 이렇게 돼서 저렇게 되고 저 사람을 만나고 그랬어 하면 “결론이 뭐야” 라고 재촉합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인내가 없습니다. 오래 참음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어떤 봉사를 하다가도 조금 어려움만 있으면 그만 두겠다고 하고, 교회 떠나겠다고 하고, 함께 못하겠다고 합니다. 영적인 전쟁은 속전속결이 아닙니다. 오래 참는 싸움입니다. 끝까지 참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사랑이 특징을 고전 13장에서 오래 참음이라고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에서 끝까지 달려간다고 사도 바울이 고백하지 않습니까? 고린도 교회가 그냥 세워진 것이 아닙니다. 오랜 시간의 인내와 기다림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냥 기다리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 기다렸습니까? 말씀을 가르치며 기다린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했다는 것입니다. 인내와 집중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전쟁은 인내함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을 할 때 승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십시오. 그 말씀에서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인내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여 승리자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다른 영혼들에게 힘과 위로와 기쁨이 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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