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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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23절에는 성령의 열매, 즉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 때 나타나는 다섯 번째 예수님의 성품은 친절이라고 알려줍니다. 우리가 읽은 새 번역 성경에는 성령의 열매를 친절이라고 번역했지만 개역성경이나 다른 성경에는 친절을 자비라고 번역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친절, 자비를 베푸는 삶의 태도와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친절이라는 말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남을 대하는 마음과 태도가 정답고 상냥함”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친절한 말과 행동, 태도를 보이며 살아야 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행해야 하는 것만이 아닌 사회적인 예의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정답고 상냥하게 대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인 친절은 보편적인 예의바른 정답고 따스한 말과 행동을 넘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성령의 열매인 자비와 친절은 무엇입니까? 무력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하는 태도가 바로 친절이요 자비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의 열매인 자비와 친절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가는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모습을 보면 우리가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친절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 주시는 사건이 요한복음 8장을 보면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예수님 앞에 고소하며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를 묻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온 바리새인들과 율법학자들은 그 여인을 예수님 앞에 끌고 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간음한 여인을 잡아와 하나님의 율법에는 간음한 여인을 돌려 쳐서 죽이라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법대로 한다면 간음한 여인을 돌려 쳐야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과 태도로 간음한 여인을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음한 여인을 끌고 온 사람들과 그 주변에 돌로 쳐서 죽이겠다고 둘러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율법대로 심판하겠다는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사랑의 열매인 친절이 없음을 깨닫게 하시는 태도를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에게 현장에서 잡혀 온 간음한 여인은 끌려와 땅에 엎드려져 있습니다. 무슨 일인가 하고 몰려 든 많은 사람들에게 간음했음을 알렸습니다. 이 여인은 많은 사람들에게 둘려 싸여서 창피함과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그런 수모와 수치를 이 여인이 당하는 것이 마땅하고, 더 나아가 율법의 규정대로 돌로 쳐서 죽여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8장을 보면 이들은 이 여인이 왜 간음을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습니다. 그 여인을 동정하거나 그 여인의 사정을 들어주고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은 그 여인을 어떻게 대하십니까? 바리새인들은 “모세는 율법에, 이런 여자들을 돌로 쳐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뭐라고 하시겠습니까?”라고 재촉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들을 향해 “너희 가운데서 죄가 없는 사람이 먼저 이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라고 말하시자 손에 돌을 들고 기다리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림을 받아 돌을 내려 놓고 하나 하나 떠나고 간음한 여인만 남습니다. 예수님은 그 간음한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돌려 보내십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해도 괜챦다고 하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비록 간음한 여인이지만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긴 것입니다. 수모와 수치를 당하고 있는 것, 그리고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그 당시 간음한 여인들은 과부가 된 여인, 즉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저지르는 부정일경우가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그러한 전후사정을 다 아셨을 것이고 그렇게 그 여인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친절, 자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태도입니다. 상대를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 긍휼히 여기는 마음, 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질 때 친절하게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성령의 충만함 속에 느껴지는 예수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바로 불쌍히 여기는 친절함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 목자가 없기에 양들이 각지 제 길로, 먹지 말아야 할 독풀을 먹으며, 위험한 꼴짜기로 들어가 결국 사단의 밥이 되고 지옥의 불구덩이로 들어갈 것을 불쌍히 여기셨기에 우리의 죄를 지적하고 비난하고 돌을 던지시기보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용서의 길을 여기고, 구원의 길을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이요 사랑이고 그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살아가면 우리의 삶에 성령의 열매인 사랑의 열매 즉 이웃에 대하여 긍휼히 여기는 마음에서 나오는 친절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친절이라는 단어의 원어인 ‘크리스토테스’ 라는 말의 의미는 “도움이 되다. 편함을 주다” 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친절이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 이웃을 돕는 사람입니다. 이것은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영혼을 살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간음한 여인을 향하여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말아라”라고 용납하고 용서하시며 감싸 주시는 친절을 베푸셨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친절 앞에서 그 간음한 여인이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결단하며 일어서지 않았겠습니까? 비난과 비판, 돌려 쳐야 한다고 몰아붙이는 바리새인들과 사람들 손가락질과 던지는 돌에 맞아 변화되고 회복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하나님의 그 친절한 용납과 용서의 사랑을 받았기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움 받고 지금도 서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기도함 속에 친절의 사람,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는 예수님의 마음을 갖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용서의 사랑, 동정하는 사랑, 살리고 세우는 친절의 사랑과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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