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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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진정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 예수 그리스도를 내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위에서 보혈의 피를 흘려 구속해 주신 구세주심을 믿고 하나님이 아닌 내 뜻과 원함대로 살았던 죄를 회개하고 그 길을 돌이켜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고 따르기로 결단하고 영접하여 구원 받은 자에게는 하나님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이 마음에 들어와 거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면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모습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당연히 진정 성령의 사람들이라면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라고 하면서 9가지의 모습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성령의 열매는 하나입니다. 즉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 모든 모습이 담겨져 있습니다. 진정 사랑이 있으면 기쁨이 있고, 사랑하면 화평, 화목을 이루어 나가고, 사랑할 때 기쁨으로 인내하고 오래 참음으로 견디고, 사랑이 있을 때 상대에 대한 긍휼한 마음으로 친절함과 자비로움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을 모시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 그 분의 인도하심과 명령대로 살아가는 삶은 바로 사랑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성령의 열매, 사랑의 모습을 신실함이다라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개역성경에는 신실함을 충성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원어인 헬라어로는 ‘피스티스’ 라는 말인데 이 말은 믿음, 신실, 성실, 충성, 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로는 ‘Faithfulness’ 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고 한국 성경에는 사실 ‘충성’이라고 번역된 곳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고린도전서 4:2절을 보면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디모데후서 2:2절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리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달란트 비유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고 칭찬하십니다.
성령의 사람,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성도된 우리에게 나타나야할 성령의 열매가 충성입니다. 충성이라는 말의 의미를 한문으로 보면 ‘충’이라는 말은 마음 심자에 가운데 중자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리고 성이라는 말은 정성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 말대로 충성의 사전적 의미를 옥스퍼드 사전에는 ‘참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으로 나라와 임금에게 헌신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충성은 하나님께 헌신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인 충성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을 믿고 주어진 일을 포기하거나, 내려 놓거나,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헌신하는 것이 충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는 자로 부르심을 입었기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충성인 것입니다. 그래서 아까 읽었던 고린도전서 4:2절에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라고 명령하고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들을 충성스럽게 감당하고 헌신하라는 말씀으로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충성이라는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충성의 대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왜 성도라고 하면서, 교회를 다니면서 충성이라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왕이 되심을 진정 인정하지 않고 신앙생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한고 주님이라고 기도는 하지만 여전히 내가 왕이 되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할 때 하고, 내 생각과 맞을 때는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내 감정이 상하면, 상황이 어려우면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면 우리가 살아야 할 삶의 근본적인 자세가 하나님께서 내 삶의 주인이시오 왕이시기에 절대적으로 순종하는 충성된 종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살아가면서 보이셨던 모습도 하나님께 죽기까지 충성하신, 순종하신 모습이셨습니다. 요한복음 4:34절을 보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이루는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단의 유혹과 공격, 그리고 육신의 욕심과 원함을 다 뿌리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충성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충성하겠다는 결단으로 십자가를 순종함으로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그대로 진정 하나님을 믿는 자, 하나님의 종으로 택함 받는 사람들은 충성했습니다. 모세가 그러했습니다. 히브리서 3:5 “모세는, 하나님께서 장차 말씀하시려는 것을 증언하기 위한 일꾼으로서, 하나님의 온 집안 사람에게 성실하였습니다”바울의 삶도 하나님께 충성됨을 보인 삶이었습니다. 복음을 맡은 자로서 충성했다고 여러번 고백합니다. 사도행전 20:24 “그러나 내가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하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열매인 충성을 잘 보여 주는 말씀이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입니다. 한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맡기고 먼 여행을 떠납니다. 그 달란트를 가지고 열심히 일하라고 한 것입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두 종은 후에 주인이 돌아왔을 때 칭찬을 받았습니다. 왜 입니까? 마태복음 25:20절을 보면 “주인님, 주인께서 다섯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다섯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 하였다”두 달라트 받았던 종도 “주인님, 주인님께서 두 달란트를 내게 맡기셨는데, 보십시오, 두 달란트를 더 벌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열심히 일하였다는 것입니다.그랬을 때 주인은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칭찬하셨습니다.
반면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칭찬이 아닌 꾸중과 심판을 받습니다. 충성의 열매를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5:24-25절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이 주인에게 한 말을 들어 보십시오. “주인님, 나는,주인이 굳은 분이시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서 모으시는 줄로 알고, 무서워하여 물러가서, 그 달란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여기에 그 돈이 있으니 받으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랬을 때 26절에 주인은 그를 향하여 “악하고 게으른 종아” 라고 책망합니다. 악하다라는 말은 무가치하고 악독하다는 뜻입니다. 즉 종인데 주인의 마음, 주인의 의도를 생각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착각하고 오해해서 해야 할 충성된 열심과 섬김을 하지 않았기에 주인에게 해를 끼친 것입니다.
충성의 열매는 결국 하나님을 바로 아는 지식과 내가 하나님의 종됨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할 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주님 뜻대로 순종하려고 할 때, 더 나아가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맡겨주신 영혼과 사명을 감당할 때 흔들리고, 힘들고, 답답하고, 오해 받고, 그만 두고 싶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께서도 “할 수만 있다면 이 고난의 잔을 내게서 거두어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지 않으셨습니까?
충성이란 끝까지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주인되신 하나님께서 그만이라고 명하실 때까지입니다. 놀랍게도 요한계시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충성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 2:10절입니다.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라. 보아라, 악마가 너희를 시험하여 넘어뜨리려고,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감옥에다 집어넣으려고 한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도록 충성하여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단의 시험과 공격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간적으로 그런 어려움과 고난이 있으면 “쉬어라, 피해라, 그 정도면 됐다”라고 하셔야 할텐데 그 끝에 명령이 “죽도록 충성하여라”고 하십니다. 너무 한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충성할 수 있는 동기와 힘의 원리는 그 다음 약속의 말씀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너에게 주겠다” 충성의 대가는 우리가 충성할 때 겪는 고난과 어려움, 힘들과 환난과는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상이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8:18절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약속하십니다.
결국 충성의 열매는 믿음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할 때 반드시 고난과 어려움, 영적인 공격과 더 나아가 환난, 죽음까지도 우리를 막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흔들리지 않는, 포기하지 않는, 원망하지 않는, 끝까지의 충성의 열매는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에게 약속하신 장차 받을 하늘의 상과 영광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 그 상과 영광이 지금의 고난과 어려움과 비교할 후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 맺을 수 있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 삶에, 내 신앙의 모습에 하나님의 종으로 헌신하고 섬기고, 순종하는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게으름으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열심과 섬김, 희생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산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의 목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하지만 내게 주신 사명, 직분, 말씀과 명령 앞에 충성의 열매는 보일 때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축복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가 감당하는 일이 큰 일이 아닙니다. 작은 일들이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그 놀라운 구원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을 생각하면 이 땅에 우리가 행하는 어떠한 순종과 섬김도 작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디모데후서 4:7-8절에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이 믿음의 고백이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 성령의 열매인 충성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받는 자가 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