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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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열매의 모습을 알려주는 9가지의 모습 가운데 마지막을 절제라고 알려 줍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의 모습에는 절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절제는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않는 것, 즉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자신의 욕망과 이성을 조절하고 제한하는 힘과 태도가 절제입니다.
절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 꼭 필요한 태도입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육신의 편함과 원함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는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기 위해 친구들과 놀고 싶고, 나가고 싶은 것을 절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운동 선수도 성공하고 승리하기 위해서 먹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더 자고 싶은 것을 절제하고, 즐기고 싶은 것을 줄이고, 억제하고, 끊어야 합니다. 절제는 인생의 어느 분야든지 성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스스로 성공을 위한 절제를 위해 힘쓰고 애써서 원하는 성공을 성취하는 것을 봅니다.
신앙생활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도 절제가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9: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라고 고백합니다.
세상 사람들도 절제합니다. 그러나 세상의 절제는 자신의 영광과 성공을 위한, 세상의 썩을, 잠시 있다가 없어질 영광과 부, 권력, 성공을 위해서 하는 절제입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썩을 면류관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추구해야 하고 보여야 할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썩지 아니할 것을 위한, 즉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축복하시는 하늘이 상을 위한 절제인 것입니다.
절제는 영어로는 Self-Control 이라고 번역됩니다. Self- Control 이란 자기 스스로를 컨트롤, 조절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육신적인 부분을 어느 정도 스스로 조절할 수 있습니다. 일찍 일어나는 것, 먹는 것은 조절하는 다이어트 등 어느 정도 가능합니다. 하지만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그러한 금욕을 말하지 않습니다. 죄에 대한 절제입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스스로 죄의 욕심, 죄의 본성을 절제하려고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2:20-23절에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에서 떠났는데, 어찌하여 아직도 이 세상에 속하여 사는 것과 같이 규정에 얽매여 있습니까?” 붙잡지도 말아라. 맛보지도 말아라. 건드리지도 말아라” 하니, 웬 말입니까? 이런 것들은 다 한때에 쓰다가 없어지는 것으로서, 사람의 규정과 교훈을 따른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성령의 충만함 속에 성령님의 인도함을 받을 때 나타나는 절제는 우리의 죄성을, 우리의 본성을 이길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죄를 이기지 못함으로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중독입니다. 술, 담배, 마약, 도박, 포르노, 구타 등 눈에 보이는 중독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중독들,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죄의 중독들이 있습니다. 육신의 욕심, 분노함, 미워함, 원망과 불평함, 시기함, 자신의 의로움과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 나타나는 감정들을 이기지 못하는 모습들이 바로 중독입니다. 나쁘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의 힘과 능력, 결단으로 이러한 죄를 이길 수 있는, 절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육적인 싸움이 아닌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령의 열매인 절제는 죄를 이기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로마서 7:23-24절에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라고 내 힘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백한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성령님께서 그 죄를 이길 수 있는, 죄의 욕심과 원함, 영적인 공격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기에 우리가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감정을, 나를 유혹하는 죄의 일들을 끊고, 막고,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이 나를 사로 잡을 때, 나를 뛰어 넘는 성령의 힘과 능력으로,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명령과 그 속에 주시기로 한 놀라운 하늘의 약속을 깨달을 때 절제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내 힘으로 참으려고 하면 울화병이나 우울증에 걸리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실 사랑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의 모습을 첫 번째 사랑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함께 나누었지만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의 정의를 “사랑은 오래참고, 더 나아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라고 한 것입니다. 오래참고, 견디고, 믿고,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나에게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스가랴 4:6절에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나에게는 절제의 성령의 열매를 보이고 있습니까?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겨야 할, 절제해야 할 육체의 소욕들을 깨닫고 승리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기 위해서 힘써, 매 순간, 깨어서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위해서 쉬지 말고 기도하고,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그로 인해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 이끄심 속에 절제의 열매가 더 나아가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의 놀라운 열매가 풍성하게 열리는 놀라운 축복의 삶을 살아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