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22-23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
성령의 열매, 즉 하나님의 성품과 우리가 닮아야 할 예수님의 성품의 여섯 번째의 모습을 선함이라고 22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선함을 개역성경에는 양선이라고 말하고 영어로 보면 “Goodness”라고 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맺어야 할 성령의 열매인 선함이 무엇인가는 먼저는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찬양 가운데 “좋으신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 참 좋으신 나의 하나님” 이라는 찬송을 영어로 하면 “God is so Good” 이라고 합니다. 시편 136:1 “주님께 감사하여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라고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미하는 ‘선함’ 의 히브리어는 ‘토브’인데 이 어원의 뜻은 ‘호의, 친절, 좋은 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좋으신 분이시다라는 분의 의미는 쉽게 말해서 우리에게 좋은 분,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좋은 분,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할 때 그 좋음이 우리 입장에서 좋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도 주십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주시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선하시다라고 할 때 우리에게 무엇이 무엇이 필요한지 아시고 우리를 선한 길로, 하나님이 보시기에 바른 길로, 좋은 것으로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한 다윗이 시편 34:8절에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즉 하나님을 경험해 보면 하나님께서 선하신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뒷 구절을 보면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라고 말하는데 다윗의삶은 고난과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잘못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사울 왕의 시기와 미움으로 전국의 지명 수배자가 되어 죽음을 피해 광야로, 동굴로 도망 다니는 삶을 10여년간 지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하시고 자신의 삶을 선을 이루실 것을 믿었기에 사울에게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사울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 힘든 도망자의 삶 가운데 원망하고 불평하고 분노와 복수심으로 살지 않고 동굴 안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많은 찬양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심을 보며 그동안의 인생을 돌아볼 때 힘들고 어려운 시간과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지켜 주심이 있었음을 경험했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고 믿고 확신하며 살아가는 삶에는 감사가 있습니다. 기쁨이 있습니다. 평강이 있습니다. 부족함이 없다 라는 고백이 있습니다. 어려움과 고난, 상황이 내 뜻과 다르고 이해되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사람은 로마서 8:28절의 고백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라는 고백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경험하고 확신하며 살아갈 때 우리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선함으로 대할 수 있습니다. 선하게 대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사람의 비유를 맞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삶,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 하나님이 원하시는 착한 행실을 보이며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6절의 말씀과 같이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에 합당한 삶을 삽니다. 다윗과 같이 사울 왕에게 복수하는 것이 아닌 살려 주는 것입니다. 언젠가 읽었던 글 중에 시골에서 목회하는 목사님 교회에 한 성도의 돼지 몇 마리가 우리 밖으로 나가 이웃 사람의 밭을 망가 트렸다는 것입니다. 그 이웃에게 손해 배상을 하려고 했는데 그 이웃이 그 성도의 돼지들이 임신한 상태라는 것을 보고 돼지들이 손해를 끼쳤으니 그 돼지로 갚으라고 한다고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어서 목사님은 그 이웃이 원하는대로 하라고 하자 그러면 자신이 너무 손해를 본다고 하자 목사님은 하나님은 선하게 갚으시는 분이시라고 하자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자신이 준 돼지들이 새끼를 낳았는데 약 100여마리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 이웃집을 지날 때마다 속이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몇 개월 후에 그 성도가 찾아와 그 이웃의 소가 자기 밭을 망쳐 놓았다고 기뻐하며 목사님을 찾아 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역시 손해 보지 않게 하시는 분이라며 이제 그 소를 달라고 하고 그 소는 자신의 소가 될 것이라고 신나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 목사님은 믿는 사람은 달라야 한다며 황소를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돌려 보내라고 하셨답니다. 그 성도는 그러면 자신만 손해를 보는 것 아니냐고 하자 목사님은 성도는 선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했고 그 성도는 놀랍게 그렇게 순종했다고 합니다. 자신의 밭을 망쳐 놓은 소를 아무런 조건없이 돌려 보낸 그 성도를 보고 그 이웃은 놀랬고 그 성도에게 받은 돼지와 그 새끼들까지 다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고 믿고 깨달은 사람은 이웃에게 그러한 세상이 하지 못하는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선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여 그 영혼을 구원하고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선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그 믿음으로 선한 일, 착한 행실을 보이는 성령의 열매가 우리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진정 성령의 충만함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고 순종하며 살아가면 하나님의 선하심을 경험하고 확신함 속에 세상과 다른 착한 행실, 선함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진정 믿는 성도된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삶이고 보여야 할 열매임을 깨닫고 이 시간 기도할 때에 내 삶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실 하나님을 믿습니다” 라는 믿음과 다른 영혼들에게 착한 행실,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베푸는 성령의 열매인 선함을 보이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