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갈라디아서 5:22-26
22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25 우리가 성령으로 삶을 얻었으니, 우리는 성령이 인도해 주심을 따라 살아갑시다.
26 우리는 잘난 체하거나 서로 노엽게 하거나 질투하거나 하지 않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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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자유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자유함을 얻었고 율법의 구속함에서 자유함을 얻은 자들입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자유함을 얻었기에 그 자유함으로 율법의 참된 뜻을 깨달아 믿음 안에 사랑으로 살아가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삶, 자유의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믿는 우리들에게 성령님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칭의와 의롭다함을 받았지만 여전히 믿는 자 안에도 육신의 소욕과 죄성이 자리잡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갈라디아서 5:16절에 “여러분은 성령께서 인도하여 주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육체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자유의 삶, 사랑의 삶,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것임을 알려 준 것입니다. 만약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결국 육신의 소욕대로 살아가게 되고 그 결과 음행과 더러움과 방탕과 우상숭배, 원수맺음, 다툼, 시기, 분냄, 분쟁, 분열, 파당, 질투, 술취함과 같은 모습이 나오고 결국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평강과 자유와 기쁨과 감사, 사랑의 모습이 나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22절부터 육신을 따라 사는 삶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갈 때 나타나는 모습을 성령의 열매로 표현하며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22-23절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이런 것들을 막을 법이 없습니다”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따라 살아가는 삶을 살면 이러한 열매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22절에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입니다” 라고 9 가지를 나열하고 있기에 당연히 9 가지 하나 하나가 성령의 열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지금 나는 신실은 한데 인내가 부족해” 혹은 “나는 인내는 있는데 기쁨이 없어. 그래서 내가 없는 어떤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애써야 해” 라는 생각을 하고 그 열매를 맺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문법적으로 볼 때에 ‘성령의 열매는’ 이라고 할 때 ‘열매’라는 단어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라는 것입니다. 즉 열매들이 아니라 하나의 열매라는 것입니다. 그럼 왜 이렇게 9개나 나열했는지 질문하게 되는데 그것은 19-21절에 육체의 일, 육신을 따라 살 때 드러나는 모습을 복수로 사용하여 나열했기에 그것과 대조시키기 위해서 성령의 열매를 9가지로 보여 준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아홉 개의 열매가 아닌 하나의 열매입니다. 진정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는 사람, 성령님의 인도하심 따라 순종하는 사람이 온유한데 친절하지는 못하고, 인내는 하는데 사랑하지는 못하고, 사랑은 하는데 화평하지는 못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은사와 다릅니다. 성령의 은사는 사람에 따라 다양한 은사들이 서로 다르게 주어지지만 성령의 열매는 믿는 자가 맺게 되는 공통되는 열매라는 것입니다. 진정 육신의 정욕과 죄성을 이기고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며 나아가면 성령의 열매, 9가지 성령님의 속성이요 예수님의 성품의 열매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묵상해 보아야 할 부분이 우리가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 위해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24절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단순히 우리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의 정욕과 욕망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성령의 열매를 맺겠다는 노력이 아닌 내 안에 있는 죄성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뜻에 내려 놓는 애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성은 매일 매 순간 계속해서 내가 주인 되고자 하는 자아, 나의 이기심과 죄악 된 욕구와 육체의 욕심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끊임없이 머리를 들고 올라옵니다. 내 마음의 왕좌에 앉으려고 합니다. 그러할 때 예수님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 주신 것처럼 우리 또한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욕심에 대해서 조금의 기회도 주지 말고 정말 냉혹하게 십자가에 못 박는 대응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을 고린도전서 15:31절에 “나는 날마다 죽노라” 라고 선포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 앞에 날마다 서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일어나고 있는 이 생각과 원함이 진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에 부합한지, 사랑의 동기에서 나오는 생각인지, 성령님의 열매인 9가지의 열매를 맺게 하는 모습인지 돌아보고 물어 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기도하고 돌아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나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기를 간구하며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내 안에서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다시 머리를 들고 일어나는 육신의 생각과 욕심, 죄성을 분별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내려 놓은 일을 하고 있는가? 내 삶에 진정 성령의 열매인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인내와 친절과 선함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가 풍성한지를 돌아보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삶, 성령의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