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0:1-2
1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2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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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10장은 고넬료라고 하는 이방인 로마 군대 백부장과 그의 온 가족이 베드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고 침례를 주는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가정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을 받고 침례를 받는 것을 이렇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유대인이었던 베드로 사도와 그 외의 믿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잘못된 구원관을 바꾸게 되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장의 고넬료 가정의 구원 받은 사건과 베드로 사도가 그들과 함께 교제하며 식사하고 사역했던 것에 대해 못 마땅하게 생각하며 베드로를 나무라는 예루살렘 유대인 성도들에게 그 상황과 의미를 11장에서 말하는 것을 봅니다. 10장과 11장을 자세히 살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신앙의 고정관념들을 내려놓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은 말씀을 통해서 먼저 고넬료라는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먼저 살펴보며 우리가 배우고 깨달아야 할 신앙의 모습을 보기를 원합니다. 1-2절 말씀입니다. “가이사랴에 고넬료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탈리아 부대라는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고넬료가 있었던 가이사랴는 예루살렘에서 약 100km 서북쪽에 있는 도시입니다. 그리고 고넬료는 그 당시 이스라엘을 식민지 삼고 있는 로마인으로 로마 군인 100명을 이끄는 백부장이었습니다.
알다시피 보통 식민지에 파견된 군인들과 그들의 대장들은 피 지배인들에게 두려움의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가진 군대와 무기로 인해 우월감과 교만한 자세를 가지고 무정하게 지배하는 지배층이었습니다. 옛날 일본의 식민지에 있을 때 일본군과 장교들을 생각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입니다. 그래서 침례요한이 요단강에 침례를 받으러 나온 군인들에게 명한 내용이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지 말라”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의 힘과 권력으로 지배층의 백성들을 얼마나 착취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문화, 그런 상황, 그런 세상의 가치관 속에 그렇게 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지위와 권세와 힘을 가진 사람이었던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었던 고넬료가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를 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경건한 사람으로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고넬료는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경건이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초월적이거나 위대한 대상 앞에 우러르고 받드는 마음으로 삼가고 조심하는 상태” 라고 말합니다.
고넬료는 놀랍게도 이방인이었습니다. 그 당시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이나, 미신처럼 자신의 축복과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한 신을 섬겼는데 고넬료는 온 가족과 더불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외함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다른 로마 백부장들이 행하던 악한 행동들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강압과 탄압, 강탈과 착취하는 죄를 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바로 경건이요 경외입니다. 하나님을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요, 나에게 생명을 주고, 나의 모든 생각, 내가 하는 모든 일, 내가 하는 모든 마음의 동기를 아시고 그 일에 대해 심판하시고 상주시는 분이심을 안다면 어찌 교만한 말과 행동을 하겠습니까? 어찌 누군가를 착취하고 압제하고, 남을 속이고 자기 마음대로 살겠습니까? 고넬료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2절에 압제하고, 탈취하고, 무시해야 할 “유대 백성에게 자선을 많이 베풀며, 늘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이 우리의 신앙이 되기를 원합니다.
고넬료는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넬료는 유대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배운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 하나님이 계심을 인식했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경외함을 가지고 늘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늘 하나님을 인식하며 살았다는 것이 바로 늘 기도하며 사는 삶이 아니겠습니까? 고넬료의 “늘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 되어야 하고, 늘 기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고넬료는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기 전에 놀랍게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식민지 나라의 백성들을 압제하고 탄압하기보다 구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늘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습입니다. 본문에서 말해주는 고넬료의 모습만 보면 고넬료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 이미 선한 일을 많이 했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았기에 구원 받은 자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선행으로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은 많은 선을 행함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를 선행으로 사함 받게 할 수 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오직 죄의 대가는 생명으로, 피로 밖에는 갚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 선함과 착한 행실로, 또는 종교적인 행위로, 율법을 지킴으로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에베소서 2:8-9절에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혜로 구원을 얻었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라고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착한 일, 구제로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고넬료가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구제한 일을 인정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 고넬료 가정에 베드로를 보내시고 베드로를 통하여 구원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게 하시어 예수님께서 나 대신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으로 그 은혜로 죄 사함의 용서함을 받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성령님을 믿는 그 가정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부어주셔서 구원의 축복을 받게 하십니다.
오늘 고넬료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다시 한번 깨닫고 확신해야 할 영적인 진리는 고넬료가 유대인들보다 더 진실 되게 경건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구제하고 기도를 드렸지만 그것으로 구원에 이를 수가 없었습니다.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고 제사를 드렸지만 그것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과 선행과 기도는 반드시 믿는 우리들이 행해야 하는 삶의 모습이지만 구원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닌 구원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내가 받은 죄 용서함과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경외함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며, 우리에게 맡겨주신 영혼들에게 선한 일과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는 참된 경건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