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4:6-8

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

오늘 본문은 바울이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 왔음을 느끼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사랑하는 영적인 아들 디모데와 그리고 성도들을 향하여 마지막 유언처럼 권면하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6절을 보십시오.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있는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최선을 다해 감당했지만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 고소를 당하고 예루살렘에서 잡혀 가이사랴에서 2년간 재판을 기다리며 감옥에 갇혀 있다가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청원하여 로마에 이송되어 로마 감옥에 갇혀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로마 황제 네로의 방화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일로 인해 기독교인들에 대한 핍박이 더욱 악해져서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해지는 상황속에 공정한 재판으로 풀려나기보다 순교를 당할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상황이기에 기독교,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장 많이 전파했던 바울은 자신이 곧 사형 당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6절에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죽음을 바로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은 나이가 들어서 노환이나 어떤 중 병에 걸려서 죽음을 앞둔 것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억울한 죽음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이러할 때 분노할 것입니다. 이럴수없다며 발버둥칠 것입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고 후회할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의 고백에는 그러한 억울함, 분노, 후회함이 보이지 않습니다. 6절에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라는 고백에는 담담함이 있습니다. 순순하게 받아들임이 있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부어드리는 제물’ 이라고 말합니다. 부어드리는 제물이란 개역성경에서는 ‘전제’ 라고 하며, 구약시대의 제사 드릴 때 제물을 불태우기 전에 포도주를 부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당하며 피를 흘릴 것이 억울한 죽음이 아닌 하나님께 부어서 드려지는 관제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죽음이 억울하거나 분노하고 후회할 죽음이 아니라 귀한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후회함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모습을 한 구절로 이렇게 표현합니다. 7절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빛 가운데서 예수님을 만난 후 살아온 약 30년을 삶을 선한 싸움을 싸운 삶이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말한 “선한 싸움”은 단순히 육체적인 전투나 싸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지키고,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살아갈 때 겪었던 수많은 어려움과 박해속에 무너지거나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충성하며 살아온 삶의 과정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충실하게 살아온 삶을 “선한 싸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선한 싸움은 바울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모두가 감당해야 할 싸움입니다. 선한 싸움은 또한 믿음의 길을 가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뜻, 맡겨주신 사명을 따라 살아감으로 결국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나라, 그리고 구원을 이루어가는 길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선한 싸움은 우리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믿음과 인내함으로 승리해야 하는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선한 싸움을 싸우라고 명하십니다. 디모데전서 1:18절에 “아들 된 디모데여, 이전에 그대에 관하여 내린 예언을 따라 내가 이 명령을 그대에게 내립니다. 그대는 그 예언대로 선한 싸움을 싸우십시오” 6:11절에도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바울과 같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사랑과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다 싸워 승리하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바울의 삶은 선한 싸움을 싸운 삶이었습니다. 또한 달려가야 할 길을 완주한 삶이었습니다. 7절을 다시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가야 할 길, 즉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바로 알고 살아간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바로 알고 그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1,2,3차 선교를 합니다. 수많은 고난과 핍박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담대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곳곳에 전하고, 가르치고,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3차 선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령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그의 체포와 고난이 있음을 여러 성도들에게 알려 주십니다. 모두가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지만 바울은 그 길이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임을 알았습니다. 그 길을 통과하여 로마에까지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함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이 있는 길이었지만 그 길을 걸어갔습니다. 그 고백이 사도행전 20:24절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우리가 은혜를 받는 말씀이지만 단지 은혜가 아닌 우리 또한 주님이 가라고 하신 그 길을 끝까지 갈 수 있기를 결단하는 도전의 말씀으로 받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주님께서 가라고 하신 길을 믿음을 지켜 완주하기를 축원합니다.

바울은 선한 싸움과 달려갈 길을 믿음으로 완주한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상과 축복이 있음을 분명히 알랐습니다. 그렇기에 8절에 이렇게 고백하며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생의 끝에서 바랬던 것은 이 땅에서의 성공이나, 명예, 사람들에게 받는 인정과 축복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참된 영원한 상과 축복, 그리고 영광과 행복은 이 땅에서 받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주님 앞에 섰을 때,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서 받는 면류관임을 알았습니다.

이 세상에 누리는 상과 축복, 행복은 죽음 후에 하나님께 받는 의의 면류관과는 비교할 수가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주실 의의 면류관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명을 따라 살기 위해 수많은 죄의 유혹과 사단의 공격, 고난과 핍박, 어려움을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좁은 길, 주님이 가라고 하신 길을 포기하지 않고 완주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들에게도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켜 가야 할 길과 사명을 따라 살아간 사람들, 주님이 나타날을 사모하며 살아간 성도들에게 동일한 의의 면류관과 하늘의 영원한 상과 영광을 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알려 줍니다.

우리가 부족하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선한 싸움을 싸우며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애쓰셨고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주님 만날 날, 주님의 재림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우리와 함께 하시고 감당하게 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 속에 푯대를 향하여,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더욱 더 힘을 내어 선한 싸움과 믿음의 경주를 달려 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Follow 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