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하 10:11-14
11 그런 다음에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쳐죽였다. 또 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12 그 다음에 예후가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에 이르렀다.
13 예후는 거기에서 이미 살해된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만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들로서, 이세벨 왕후와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을 드리러 내려왔습니다.”
14 그러자 예후는 그들을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들을 생포하여, 벳에켓의 한 구덩이에 넣어 죽였는데, 무려 마흔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과 기름 부음을 받은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 왕의 가문을 온전하게 전멸시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을 처단하고, 그의 어머니 이세벨과 아합의 70명의 아들들을 처단합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그런 다음에 예후는, 이스르엘에 남아 있는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쳐죽였다. 또 아합 가문의 관리들과 친지들과 제사장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였다” 예후는 자신이 한 일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룬 것임을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온전하고 신속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순종하는 귀한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과 순종의 모습이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후는 사마리아 성으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이라는 곳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들이 누구인지 묻고 그들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12-13절입니다. “그 다음에 예후가 이스르엘을 떠나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벳에켓하로임에 이르렀다. 예후는 거기에서 이미 살해된 유다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만나, 그들이 누구인지를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아하시야의 형제들로서, 이세벨 왕후와 왕자들과 왕의 친족들에게 문안을 드리러 내려왔습니다”
그들은 남 유다의 왕이었던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이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아합 왕과 남 유다의 왕이었던 아하시야는 자신들의 딸과 아들을 결혼시켜 사돈지간이었습니다. 정략적인 결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돈 지간이 되어 서로 왕래하며 남북간의 외교적 평화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로 전장인 9장에서 북 이스라엘 요람 왕이 시리아 나라와 전쟁을 하면서 부상을 입자 남 유다 아하시야 왕이 문병을 왔다가 예후를 함께 만나러 갔다가 죽음을 당한 것입니다.
남 유다가 아합 왕과 가까운 관계 속에 있었기에 아합 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아하시야의 친족들이 예후가 이세벨 왕후와 아합 왕의 아들들과 그 가문을 처단한 소식을 알지 못하고 이세벨 왕후와 아합 왕의 왕자들과 친족들에게 조의를 전하기 위해서 올라오는 중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아합 왕과 가까운 아하시야의 친족이라는 것과 아합 왕의 죽음과 그의 가족에게 조의를 전하기 위해 왔다는 말을 듣고 14절을 보면 “그러자 예후는 그들을 생포하라고 명령하였다. 부하들은 그들을 생포하여, 벳에켓의 한 구덩이에 넣어 죽였는데, 무려 마흔두 명이나 되는 사람을 한 사람도 살려 두지 않았다” 42명의 유다 왕 아하시야의 친족을 죽인 것입니다. 그들은 오지 말아야 할 장소에 왔고, 문안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에게 문안하였으며, 그러다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과연 예후가 한 이 일이 옳은 일인가? 즉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에 포함되는 일인가를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합 왕의 가문을 멸하라고 하셨지 그와 연관된 모든 사람들을 포함시키지는 않으셨습니다. 비록 아하시야 왕이 아합의 집과 친인척 관계를 맺긴 하였지만, 예후는 이미 아하시야를 죽였고, 아합의 자손들을 다 멸하였습니다.
그리고 아하시야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왕위를 이어가게 하신 다윗의 후손들이었습니다. 예후는 분명 하나님께서 명하신 아합 왕의 가문을 처단하는 명령을 온전하게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과 마음으로 했겠지만 아하시야 왕의 친족들을 치는 일에 있어서는 하나님께 물어 보았어야 했습니다. 분명 그것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예후가 유다 왕 아하시야의 친족 42명을 죽인 일에 대해 하신 말씀이 호세아서에 나옵니다. 호세아 1:4절입니다. “주님께서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그의 이름을 이스르엘이라고 하여라. 이제 곧 내가 예후의 집을 심판하겠다. 그가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를 물어서 이스라엘 왕조를 없애겠다”하나님께서 예후가 한 일, 즉 이스르엘에서 살육한 죄가 바로 이 일에 대한 것입니다. 나중에 나누겠지만 예후는 왕이 된 후에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의 왕좌를 지키기 위해 살육하는 악을 행합니다.
예후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말씀에만 정확히 순종하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부분까지만 정확하게 심판을 집행하였더라면, 그는 피에 대한 원수로 심판을 받을 일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더라면 그는 오히려 칭찬과 보상을 받았을 것입니다.
요람의 뒤를 이어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된 예후의 삶을 돌아보면 그에게는 왕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었습니다. 아합 왕의 군대 장관으로 있으면서 분명 아합 왕과 그의 가문들이 악을 행하는 것에 대한 의분도 있었지만 오늘 본문의 사건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 속에서도 하나님의 명하신 명령 밖에 자신의 생각으로 해서는 안되는 일을 더 하는 불순종과 악을 행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온전하게 멸하라고 했을 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반쪽만 순종하여 좋은 가축들과 아각 왕을 포로로 사로 잡아 오는 죄를 지었지만 예후는 하라고 하신 명령의 선을 넘어 자신의 뜻대로 더 많은 무고한 사람들까지 죽이는 죄를 지은 것입니다.
예후가 한 일은 생각이 짧아서, 혹은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하고자 하는 열정이 너무 뜨거워서 한 실수가 아닌 분명히 예후의 칼에는 순종의 범위를 넘어선, 야망과 육신의 뜻이 있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모습 속에서도 예후의 모습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후는 악한 아합의 집안을 처벌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예후가 그 일을 한다고 해서 의로운 자가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악한 자를 심판하시는데, 다른 악한 자를 사용하실 수도 있고, 의인을 단련하는데 악한 자를 사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판단하고 책망한다고 해서 그것이 우리를 영적으로 올바른 위치에 있게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고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자신이 하는 일이 의로운 명분이라고 자신이 하는 악한 일을 정당화 하는지 모릅니다. 위험한 것입니다. 의로운 일을 하는 것 같지만 선을 넘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예후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것이 우리가 행하는 일들 하나 하나 속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살펴서 겉으로는 의롭고, 정당하고, 섬기고, 희생하고, 위하는 것 같지만 마음 깊은 속에서부터 나 자신을 높이거나, 분노함이나 자신의 야망을 추구하는 숨은 의도가 없는지를 깨달을 수 있기를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절대 선을 넘지 않는 순수하고 올바른 신앙의 모습으로 하나님께 칭찬과 상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과 계획을 이루는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