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5:9-12
9 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예순 살이 덜 되어서는 안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사람이라야 합니다.
10 그는 착한 행실을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하는데, 자녀를 잘 기르거나, 나그네를 잘 대접하거나, 성도들을 자기 집에 모시거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모든 선한 일에 몸을 바친 사람이라야 합니다.
11 젊은 과부는 명단에 올리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슬러 정욕에 이끌리면 결혼을 하고 싶어할 것이고,
12 처음 서약을 저버렸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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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서는 다시 한번 교회에서 인정하고 도와야 할 참 과부의 자격과 성품에 대해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들의 생각에는 도울 사람들이라면 은혜로 다 도우면 되지 뭘 자격을 따지냐고 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는 누구에게나, 모든 사람에게 베푸시지만 진정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세우는 사람들은 그 은혜를 바로 알고 깨끗한 양심과 신실한 믿음, 그리고 삶 속에 죄된 모습을 이기는 성령의 충만함과 지혜를 가지고 성화된 삶을 살아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사람들을 세우라고 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래서 목회자를 세울 때, 그리고 집사를 세울 때도 “세우면 다 변화되고 일하면서 성장하지”라고 하며 세운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 집사를 세울 때도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자들을 세웠습니다. 디모데전서 3장에서도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와 집사를 세울 때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난폭하지 아니하고 너그러우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가정을 잘 다스리며, 언제나 위엄을 가지고 자녀들을 순종하게 하는 사람”을 세우라는 기준을 정하여 주십니다.
놀랍게도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교회가 인정하고 도와야 할 참 과부는 이러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기준을 말해줍니다. 사실 이 기준은 단지 참 과부에 대한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앙생활을 하는 모든 교회 성도님들에게 적용되어야 할 기준입니다.
9절입니다. “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예순 살이 덜 되어서는 안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사람이라야 합니다”과부로 명부에 올릴 이는 이라는 것을 보아서 초대 교회에는 많은 과부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당시 많은 전쟁이 있었고, 의료 시설이나 병을 예방하고 치료한 약이 발달되지 않았기에 남편이 죽고 혼자 사는 여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교회가 도울 수 있는 재정이나 힘의 한계가 있기에 교회가 구제 대상으로 삼아야 할 참 과부에 대한 기준을 세웠고 그들이 또한 교회를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게 했던 것입니다.
교회가 인정하고 돕고 섬기게 하는 참 과부의 첫 번째 기준이 예순살이 넘어야 하고 한 남편의 아내였던 사람이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나이 60이면 젊다고 할 정도로 생활하고 움직이는데 문제가 없는 나이로 봅니다. 그러나 그 당시 60이면 지금의 80-90이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일해서 경제적 부분을 감당할 수 없는 나이고 세상의 쾌락이나 세상적인 일에 관심보다 천국을 바라보며 마지막 남은 인생을 주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나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두 번째 기준이 “한 남편의 아내였던 자”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지 한번 결혼했던 사람이라기 보다는 결혼한 시간 동안 불륜을 저지르지 않았던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혼생활에 충실했던 과부를 말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10절에 나옵니다. “그는 착한 행실을 인정받는 사람이라야 하는데, 자녀를 잘 기르거나, 나그네를 잘 대접하거나, 성도들을 자기 집에 모시거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모든 선한 일에 몸을 바친 사람이라야 합니다”개역성경에는 “착한 행실에 인정받는 사람”을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는 사람”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아까도 나누었지만 교회에서 참 과부로 인정하여 구제하고 도와줄 과부는 단지 교회의 도움을 받는 것만 아니라 지금으로 말한다면 권사로 세움을 받아 젊은 성도들을 이끌어 주고 섬기는 직분도 감당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단지 나이가 들었다고,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고 자격을 주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착한 행실을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할 때 구체적으로 어떠한 모습이 착한 행실, 믿음의 본을 보인 자인지를 10절에 “자녀를 잘 기른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머니의 사명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자녀를 영적으로 잘 양육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말씀과 삶의 모습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에 인정 받는 사람을 세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그네는 잘 대접한 사람”입니다. 그 당시에 숙박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지 않았기에 나그네들이 어느 도시나 지방을 가야 할 때 누군가의 집에서 밤을 지내야했습니다. 그러할 때 누군가 자신의 집을 내어 주고 초청하여 대접해야 했습니다. 믿음의 성도라면 그러한 필요한 사람을 솔선하여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섬김을 받으려는 모습이 아니라 섬기려는 분들을 말하지 않아도 인정합니다.
그래서 10절에 “성도들을 자기 집에 모시거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거나, 모든 선한 일에 몸을 바친 사람이라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모습이고 교회의 직분자로 세워야 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11-12절에는 교회의 참 과부로 올리지 말아야 할 과부에 대해 말합니다. “젊은 과부는 명단에 올리는 것을 거절하십시오. 그들은 그리스도를 거슬러 정욕에 이끌리면 결혼을 하고 싶어할 것이고, 처음 서약을 저버렸기 때문에 비난을 받을 것입니다” 젊은 과부를 교회의 구제 명단이나 섬기는 자리에 올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젊은 과부들을 무시하거나 따돌리거나 함부로 대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다만 젊은 과부들은 언제든지 다시 재혼을 하여 가정을 이룰 수가 있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구제의 대상으로 분류하는 참 과부처럼 대하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젊은 과부들은 나이든 과부보다 더 불쌍하고 안타까운 처지에 놓여있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나이든 과부들에게 자녀들이 이미 성정하여 어머니를 돌볼 능력이 있을 수 있지만 젊은 과부들에게는 아직 돌봄이 필요한 어린 자녀들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나이든 과부는 남편도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서 죽었기에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이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젊은 과부는 남편의 죽음이 너무나 큰 충격과 슬픔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젊은 과부를 교회의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한 것입니까? 그것은 단지 나이가 어리기 때문이 아니라 처음 서약을 저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나이든 참 과부들은 주님만을 바라보며 주님을 섬기겠다는 마음과 서약으로 교회를 섬길텐데 젊은 과부들은 그러한 서약을 할지라도 젊기에, 육신의 끌림으로 인해, 또한 젊은 과부를 원하는 사람으로 인해 마음이 변하여 결혼을 하고 싶어함으로 그러한 서약을 저버리게 되고 그로 인해 비난을 받는 상황이 생길 우려가 있기에 젊은 과부는 교회의 명부에 올리지 말라고 명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헌신하고 결단합니다. 그런데 젊은 과부와 같이 여러 가지 어려움이나 육신의 원함을 추구하기 위해서 처음 서약을 버리기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바른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 땅에서가 아닌 영원한 천국의 영광과 상급을 바라며 살아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가 이 땅에서 보여야 할 착한 행실을 인정받는 자,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가 아닌 다른 성도와 영혼들을 돌보고 인도하는 선한 일에 몸을 바치는 참된 성도로 세워지기 위해 늘 기도와 말씀 속에 성령의 충만함과 영적인 분별력을 가지고 주를 위해 살아가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