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마가복음 2:13-28

16 바리새파의 율법학자들이, 예수가 죄인들과 세리들과 함께 음식을 잡수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저 사람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어울려서 음식을 먹습니까?”
17 예수께서 그 말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18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은 금식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물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선생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19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20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대고 깁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새로 댄 조각이 낡은 데를 당겨서, 더욱더 심하게 찢어진다.
22 또,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담는 사람은 없다. 그렇게 하면 포도주가 가죽 부대를 터뜨려서, 포도주도 가죽 부대도 다 버리게 된다. 새 포도주는 새 가죽 부대에 담아야 한다.”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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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2장과 3장에는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고치시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손이 오그라져 고생하는 사람을 고쳐주십니다. 죄인으로 낙인 찍힌 세리를 제자로 삼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던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시는 선한 일을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하신 그 일들에 대해 바리새인들은 비난하고 비판하고 충돌을 일으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우고 아는 사람들이었지만 참된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어 있습니다.

갈등과 충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본질과 비 본질을 분별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진리와 나의 선호도를 분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2:18절을 보면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에게 왜 자신들은 금식을 하는데 금식을 하지 않느냐고 시비를 겁니다. 이 말의 의미는 당신은 왜 내 방식대로 신앙생활 바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일주일에 두 번씩 한 금식은 하나님의 명령, 즉 진리와 본질이 아닙니다. 금식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해야 하는 진리가 아니라 각자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인해 스스로 결단하고 하는 것입니다. 대부분 우리는 본질 때문에 부딪히지 않고 나의 선호도, 비본질적인 것들로 인해서 부딪히고 마음상해 합니다. 어떤 의견이나 생각이 본질적인 것이 아니고 선호도에 대한 것이라면 넘어가는 마음과 양보할 때 갈등과 분쟁이 생기지 않습니다. 내 생각과 내 의견만이 옳고 내 생각과 내 의견, 내 방법대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진리와 나의 선호도를 분별하여 지킬것과 양보할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갈등과 충돌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어떠한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 결정, 생각, 말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하시는 일에 대해 정죄하고 비판했던 바리새인들의 문제의 근원은 무엇이었습니까? 사람들을 살리는 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 왔던 중풍병자의 육체의 고통과 아픔, 생명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수치와 고통과 어려움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배고픔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바리새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진리와 본질이 아니라 자신들이 정해놓은 종교적인 규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픈 자들, 병든 자들, 소외된 죄인들을 살리는데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고통과 회복에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섬기는데 관심이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늘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생각이 하나님께서 온 것인가 사단으로 온 것인가를 알려면 내가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가 죽이려고 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충돌의 문제, 갈등의 문제에서 해결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살리는 결정을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사람을 죽이는 말, 결정을 한다면 물을 것도 없이 사단에게 속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으로 새 가죽부대와 같이 다른 사람을 살리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섬기며 포용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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