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5:22-27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말하기를 “나도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니, 베스도가 “내일,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위엄을 갖추고 나와서, 고급 장교들과 그 도시의 요인들과 함께 신문 장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베스도의 명령으로 바울을 끌어냈다.
24 그 때에 베스도가 말하였다. “아그립바 임금님, 그리고 우리와 자리를 같이 하신 여러분,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나 여기서나, 모든 유대 사람이 그를 이 이상 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면서, 나에게 청원한 사람입니다.
25 그러나 나는, 그가 사형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황제께 상소하였으므로, 나는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26 나는 그와 관계되어 있는 일을 황제께 써 올릴 만한 확실한 자료가 없으므로, 여기서 그를 신문해서, 내가 써 올릴 자료를 얻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를 여러분 앞에, 특히 아그립바 임금님 앞에 끌어다가 세웠습니다.
27 죄수를 보내면서 그의 죄목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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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가이사랴에 찾아온 갈릴리 지역을 다스리던 분봉왕 헤롯 아그립바 2세, 즉 예수님의 탄생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헤롯 대왕의 증손자 되는 아그립바 왕이 베스도 총독에게 바울의 재판에 대해서 들은 후에 자신도 직접 사도 바울이 하는 말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자 베스도가 바울을 아그립바 왕 앞에 데리고 나와 로마 황제에게 이송하기 위해 죄목을 무엇으로 할지 찾아보겠다고 한 내용입니다.
그래서 22절에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말하기를 “나도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싶습니다” 하니 베스도가 “내일, 그의 말을 들어보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 대해 관심이 있었습니다. 바울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것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직접 들어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그립바도 갈릴리 지역을 다스렸기에, 이전부터 예수에 대한 소문을 많이 들었던 것입니다. 증조 할아버지때부터 예수라는 사람이 갈릴리 지역에서 3년간 놀라운 기적과 말씀을 전했고 큰 인기를 얻었으며, 결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건에 대해서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고 그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자로 믿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전국에 그리고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전파되고 있었고 그 전하는 대표자가 바로 바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이사랴에 오게 되었는데 그 바울이 잡혀 있고 재판을 받은 내용을 듣고 직접 만나서 그 예수에 관하여, 그리고 바울이 전하고 있는 그래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도에 대해, 부활에 대해 듣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이 전하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듣고 싶어하고 만나고 싶어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도에 대해 그것이 참된 것인지, 믿을 만한 것인지 알아보고 들어보려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 말씀을 받고 믿는 것입니다.
나중에 나누겠지만 26장에서 아그립바 왕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복음을 들었고, 자신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고, 자신에게 주신 사명은 사단에게 사로잡힌 자들, 죄 가운데 거하는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을 받아 구원 받게 하는 복음을 전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면서 아그립바 왕에게 그 복음을 믿을 것을 권면했을 때 거부하는 것을 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받고 그 말씀대로 회개할 죄를 회개하고, 결단하고 순종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믿음으로 순종하는 축복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왕만이 아닌 그의 아내 버니게와 여러 유명인사들까지 대동한 자리에 바울을 데리고 나옵니다. 23절입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위엄을 갖추고 나와서, 고급 장교들과 그 도시의 요인들과 함께 신문 장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베스도의 명령으로 바울을 끌어냈다”
그리고 바울을 그들 앞에 끌고 나온 이유를 그들 앞에 설명하는 것이 24-26절입니다. “그 때에 베스도가 말하였다. “아그립바 임금님, 그리고 우리와 자리를 같이 하신 여러분, 여러분이 보시는 대로,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나 여기서나, 모든 유대 사람이 그를 이 이상 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면서, 나에게 청원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사형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스스로 황제께 상소하였으므로, 나는 그를 보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나는 그와 관계되어 있는 일을 황제께 써 올릴 만한 확실한 자료가 없으므로, 여기서 그를 신문해서, 내가 써 올릴 자료를 얻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를 여러분 앞에, 특히 아그립바 임금님 앞에 끌어다가 세웠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아그립바 왕과 초대해 온 높은 사람들에게 바울의 말을 듣기 전에 자신이 그동안 재판하며 느꼈던 생각들을 먼저 말합니다. 읽은 그대로 유대인들이 바울을 사형에 처하게해 달라고 청원하며 고발해서 재판을 했지만 자신이 보니 바울에게 사형을 내릴 만한 어떠한 위법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스스로 로마에 가서 로마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청해서 로마로 보내기로 했다는 것입니다.
벨릭스 총독의 한 말만 들어보면 벨릭스 총독 자신은 선하고, 의롭게 재판을 보았고 바울을 살려 주려고 하고 있고, 바울이 스스로 로마에서 재판을 받겠다고 한 상태라 감금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바울을 로마로 보내기 위해서, 황제에게 바울을 보낼 때 어떤 이유, 어떤 죄목으로 재판을 받아야 하는지 알려야 하기에 어쩔 수 없이 이 자리를 만들었다는것입니다. 그것이 27절 마지막절의 내용입니다. “죄수를 보내면서 그의 죄목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스도가 얼마나 교묘한지를 잘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먼저는 바울을 재판하면서 바울에게 어떠한 죄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유대인들이 고소한 내용에 어떠한 증거나 증언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면 무죄를 선언하고 석방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에 가서 황제에게 재판을 받겠다고 스스로 말한게 아니었습니다. 베스도 총독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죄가 없다는 재판을 가이사랴 이 자리에서 했는데 유대인들이 요청한대로 예루살렘에 내려가서 다시 한번 재판을 하면 어떻겠냐는 어처구니 없는 제안을 했기에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도 이미 재판을 받았고 아무런 죄목을 찾지 못해서 천부장의 제안으로 가이사랴로 와서 지금 재판을 받았는데 다시 내려갈 필요가 없다고 거부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이기에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겠다고 한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에 가서까지 재판을 받을 필요도 없었던 것입니다. 베스도 총독에게 판결할 수 있는 권세와 재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아그립바 왕과 고위 높은 사람들 앞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 두어서는 안된다며 고소했지만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으면서 바울이 스스로 원해서 로마로 이송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27절에는 “죄수를 보내면서 그의 죄목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기에 이제 바울의 죄목을 찾아보기 위해서 이 자리를 만들었다”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죄가 없는 사람을 끌고 와서 죄목을 만들어 보자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일 때도 대제사장들과 종교지도자들이 행한 일입니다. 그러한 일들을 지금도 이 시대에 우리가 행하고 있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교만함 때문에 누군가 열심을 내는 사람, 섬기는 사람, 의로운 사람을 죄인으로 몰아 붙이고, 비난하고 정죄하고 시기하는 모습이 있지 않습니까?
유대인들을 보면 죽이려고 애를 씁니다. 사단이 하는 짓입니다. 우리는 살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동기를 가지고 격려하고, 칭찬하고, 돕고, 세우고 살리려고 애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구원 받은 자의 모습, 예수를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유대인들과 같이 죽이는데 힘을 쓰는 모습을 너무 많이 보고 살아 왔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 역시 살리기보다 죽이는 것에 더 편하게 지내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더욱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다른 영혼들을 죽이고, 무시하고, 비난하고, 비판하는 악한 영에 속지 말고 살리시는 성령으로 복음에 합당한 믿음의 삶, 순종의 삶, 사랑의 삶, 살리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깨어서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