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23:6-10
6 그런데 바울이 그들의 한 부분은 사두개파 사람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파 사람인 것을 알고서, 의회에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바리새파 사람의 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7 바울이 이렇게 말하니,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회중이 나뉘었다.
8 사두개파 사람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데, 바리새파 사람은 그것을 다 인정하기 때문이다.
9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바울 편을 들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10 싸움이 커지니, 천부장은, 바울이 그들에게 찢길까 염려하여, 군인더러 내려가서 바울을 그들 가운데서 빼내어, 병영 안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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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바울이 3차 선교를 마치고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 갔다가 바울을 이단자요 반역자로 보는 유대인들에게 잡혀서 성 밖에서 매를 맞아 죽을 상황에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출동한 천부장과 군사들에게 잡힌 상황에서 바울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안 천부장이 정식 재판을 하기 위해서 그 당시 권력을 잡고 있는 산헤드린 공회원들인 대제사장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사두개인들을 모아 재판하는 상황입니다.
피고인으로 서게 된 바울이 공회원들에게 자신을 변호하려고 1절에 “동포 여러분, 나는 이 날까지 하나님 앞에서 오로지 바른 양심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바울이 변절자요 반역자로 여기는 대 제사장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바울의 입을 치라”고 명하고 그 말을 들은 바울이 그가 대 제사장인줄 모르고 “회칠한 벽이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실 것이다” 라고 반박합니다.
바울은 지금 이 재판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지금 모여 있는 공회원들인 산헤드린 공회는 사실 예수님을 십자가 형에 처한 공회원이었습니다. 지금도 자신을 재판하는 대 제사장이 자신을 공정하게 판단할 재판장이 아닌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을 단지 유대교를 배신하고 변절한 자로 혐오하고 있고, 그들이 하나님을 진정 경외함으로 참된 진리가 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듣고 돌이킬 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파악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 재판을 파기하려는 마음을 갖습니다. 그래서 6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그들의 한 부분은 사두개파 사람이요, 한 부분은 바리새파 사람인 것을 알고서, 의회에서 큰소리로 말하였다. “동포 여러분, 나는 바리새파 사람이요, 바리새파 사람의 아들입니다. 나는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 때문에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그 당시 종교 재판을 담당했던 산헤드린 공회원의 대부분은 두 부류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과 바리새파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둘다 유대인들이었지만 그들이 추구하고 믿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성경공부를 통하여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차이점을 배우신 분들은 이미 아시겠지만 사두개파 사람들은 믿음이나 영적인 것보다 세속적이고 현실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권력과 재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들은 유대인들을 식민지 삼아 다스리고 있는 로마 제국에 가까이 하는 우리 표현으로는 친일파와 같이 그들에게 붙어서 권력을 차지하고, 자신들의 편함과 세력, 재물을 추구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대제사장이 직분이나 권력층이 대부분 사두개파 사람들이 잡고 있었습니다.
또한 사두개파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영적인 것은 믿지 않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8절에 나오는 것과 같이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시대로 보면 자유신학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기적이나, 능력, 부활, 천국과 지옥조차 믿지 않는 사람들이 사두개인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말씀들을 제거하고 자신들이 이해되고 이익이 되고, 믿고자 하는 부분만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파 사람들은 성경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인정하는 부류였습니다. 부활도, 천사도, 영도, 천국과 지옥도 믿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율법에 자신들이 정한 것으로 더하여 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겉으로 볼 때는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섬기는 열심히 있는 부류였습니다. 십일조 생활, 기도생활, 금식생활, 예배와 제사 철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로마 제국을 미워하는 세력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백성들에게 인정을 받고 인기가 있는 부류는 바리새파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은 서로 추구하는 것과 믿는 것이 다르기에 서로 대적하는 관계였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한마음이 되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함께 했지만 그 때는 예수님이 자신들에게 위협이 된다고 느꼈기에 함께 예수님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에, 결국 십자가에 처형으로 예수를 메시야로 생각하고 따르는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가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 마음으로 모의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의 다름과 서로 미워하는 관계를 바울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에 공의회 안에 있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싸울 수 있도록 바울이 “나는 바리새파 사람입니다. 지금 죽은 사람들이 부활할 것이라는 소망을 전하는 일로 재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화제를 바꾼 것입니다.
바울이 바리새인으로 부활의 소망을 전하기에 이 재판을 받는다는 말로 인해 자신들이 믿는 부활의 신앙이 다르기에 공의회 안에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싸움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바울이 이렇게 말하니,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 사이에 다툼이 생겨서, 회중이 나뉘었다”라고 상황을 말합니다. 9절을 보면 “그래서 큰 소동이 일어났다” 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바리새파 사람들과 사두개파 사람들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들의 잘못된 신앙과 삶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그들의 신앙을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이 가진 잘못된 신앙과 삶의 모습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영원한 천국을 믿지 않고 이 땅에서 잘 살고 잘 먹는 것에 초점을 둔 사람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0:27절을 보면 사두개파 사람들이 예수님을 넘어트리려고 시험하기 위해서 질문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영원한 하늘나라와 하나님의 심판과 상, 그리고 부활후에 영원한 천국에 대한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7절을 보면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개파 사람 가운데 몇 사람이 다가와서, 예수께 물었다”라고 하면서 모세의 법에 의하면 형이 자식 없이 아내를 두고 죽으면 그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서 대를 이러야 하는데 일곱 형제가 있는 집에서 형들이 자식없이 계속 죽어 형수가 그 막내와 결혼까지 했고 결국 다 죽으면 부활 때 일곱 형제 중에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질문을 합니다.
부활이 없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가지고 예수님이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하였다”라고 책망하십니다. 부활 후에도 이 세상 사람들처럼 사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했다는 것입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죽음 후에 천국와 지옥, 천사나 영이나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 땅에서 잘 사는 것에 마음을 두는 세속적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든, 지금 나라가 망했던 말았든 로마 세력에 붙어서 자신들의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삶을 사는 잘못된 신앙과 삶을 살았던 자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이 시대에도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믿는다고 하는 교회 안에 성도들 가운데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시고 알려 주신 천국 지옥에 대해 믿지 않습니다. 죽음 후에 하나님 앞에 심판이 있고 부활 후에 하늘의 상과 영원한 형벌이 있음을 믿지 않고 여전히 이 땅에서 내 뜻과 원함과 편함과 이익을 위해 살아갑니다. 사두개파 사람들과 같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로마 세력에 붙기도 하고, 상황에 따라 바리새파 사람들과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안에는 바리새파 사람들과 같은 신앙을 하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사두개파 사람들과 달리 죽음 후에 영원한 천국과 부활, 영적인 천사도, 사단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바리새파 사람들은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의롭다 함을 율법을 지킴으로,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종교적인 열심을 가지고 얻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겉으로 볼 때는 기도도 하고, 예배도 빠짐없이 드리고, 성경도 박식하고, 교회 생활도 잘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지 못합니다. 나의 죄인됨을 분명히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를 믿음으로 받은 것을 깨닫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그 은혜와 사랑, 성령님의 감화 감동으로 율법의 정신,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으로 살아가지 않고 자신의 의와 교만함으로 정죄하고 판단하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것을 좋아하는 모습의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늘 우리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내 뜻과 내 상황과, 내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버리는 신앙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타협하는 신앙,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믿고자 하는 것, 받고자 하는 말씀만 받는 신앙을 내어 던지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믿고 순종하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고 믿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신앙이 바리새인의 신앙을 벗어야 합니다. 형식적인 신앙, 나 정도면 된다는 교만의 신앙, 나의 신앙의 경륜과 행함으로 나는 의롭다, 잘났다, 내가 옳다라는 교만함과 다른 사람들 비난하고 정죄하고 판단하는 잘못된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랑, 그 은혜로 인해 감사함과 겸손함, 온유함으로 주님을 섬기고, 영혼을 섬기고 세우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 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이 땅에서 모든 것을 누리고, 이 땅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이 땅에서 속된 말로 쇼부를 보겠다고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나의 마음을 마시고, 나의 섬김의 동기를 아시기에 마지막 부활의 때에 주님께서 나를 칭찬하시고, 인정하시고, 상을 주시고, 면류관을 주실 것을 알기에 그 소망과 확신 가운데 기쁨으로 인내하며 겸손함과 조용함으로 감당해 나가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붙들어야 할 신앙이 사실 부활의 신앙이 아니겠습니까? 영원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해야 할 신앙의 바로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이 신앙을 전해야 하고, 이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놀랍게도 9절을 보면 “바리새파 사람 편에서 율법학자 몇 사람이 일어나서, 바울 편을 들어서 말하였다. “우리는 이 사람에게서 조금도 잘못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만일 영이나 천사가 그에게 말하여 주었으면, 어찌하겠습니까?” 라고 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이러한 깨달음과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복음에 눈을 돌리고, 마음을 열어 믿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삶과 교회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