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요나서 1:1-3
1 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2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
3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다. 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배를 탔다.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갈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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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십니다. 1-2절 “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는 이유가 있어서 부릅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아담을 부르셨습니까? 아담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에 대해 물으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에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왜 부르셨습니까? 소명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부르시고 마태를 부르시고 바울을 부르셨을 때 소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신 이유도 소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외쳐라.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까지 이르렀다.”라고 되어 있지만 히브리어 원어를 보면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라 하시니라” 라고 “일어나 가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에게 소명을 주실 때 “일어나 가라” 라는 말씀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사울이 다메섹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빛 가운데 만났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사울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6절 “일어나서 성안으로 들어가거라” 였습니다. 그때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주님께서 소명을 주십니다. 11절“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는 자를 찾으라” 일어나 가서 라고 명령하십니다. 소명 받은 자는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하신 곳으로, 하라고 하신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28장19절에 교회에 주신, 우리 믿는 자들에게 주신 소명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라” 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는 소명을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를 이 땅에 우연히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편하게 사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명을 따라 살게 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 자리에 계신 한분 한분들이 하나님의 소명을 깨달아 그 소명을 따라 일어나 가는 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부르시고 소명을 주십니다. 그 소명이 무엇입니까? “너는 일어나 니느웨 성으로 가서 회개의 복음을 전해라. 그 성의 악독이, 그들의 죄악이 내 앞에 상달되었다”하나님께는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그 죄악이 끝까지 차 오르면 징벌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그러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은 멸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디모데전서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얻고 진리를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니느웨 성에 사람들이 죄악이 도에 달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또한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더 이상 놔두지 못하고 징벌하셔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요나에게 그 성의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라는 소명이었습니다.
그런데 3절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명령을 어떻게 합니까? 불순종합니다. 3절 말씀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다. 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나 뱃삯을 내고 사람들과 함께 그 배를 탔다. 주님의 낯을 피하여 스페인으로 갈 셈이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불순종할 때가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이유 없는 무덤이 없지 않습니까? 요나는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왜 불순종하고 반대편인 스페인으로 갔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요나에게는 니느웨로 가기 싫은 이해할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합당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나가 살았던 그 당시는 앗시리아 나라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었던 시대입니다. 앗시리아는 또한 이스라엘을 침략해서 나라를 빼앗은 나라였습니다. 앗시리아는 소수민족 말살정책을 했던 나라입니다. 나라를 완전히 없애려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제로 다른 민족들과 결혼을 시켰습니다. 그래서 나온 사람들이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강압적으로 식민지 정책을 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식민지 했던 나라 가운데 가장 악독했던 나라가 바로 앗시리아였습니다. 그 앗시리아 나라의 수도가 바로 니느웨입니다. 지금도 연세 드신 분들 가운데 일본하면 치를 떠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인 이스라엘이 앗시리아 나라에 압제를 당하고 있습니다. 말 못할 식민지 생활을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 나라의 수도인 니느웨를 하나님께서 죄로 인해서 멸하시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요나가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런데 요나에게 그 니느웨로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가서 전하라는 것입니다. 요나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아마 이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일은 못합니다. 다른데 가라고 하면 다가도 그곳은 못갑니다” 요나가 니느웨 성으로 가지 않고 도망가려고 한 인간적으로 이해되는 이유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은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 나라를 못살게 하는 이방인 나라, 그렇게 치욕을 주고 곤욕을 주었던 이방인들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한단 말인가? 그래서 스페인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해 도망한 것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으로 가는 배가 들어오는 욥바로 간것 입니다. 그런데 욥바에 내려가서 항구에 가보니까 3절에“마침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를 만난지라”그 당시에 스페인으로 떠나는 배가 매일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년에 몇 번 없습니다. 요나가 뱃 시간을 알아 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낯을 피해 스페인으로 가야겠다고 계획하고 왔더니 마침 그 배가 떠나려고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내 뜻대로, 내 계획대로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내 인생이 내가 원하는대로, 내가 계획하는 대로 착착 진행된다고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잠시는 그것이 축복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소명대로 살지 않으면 잠시는 잘되는 것 같고, 성공한 것 같고, 내 뜻대로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망합니다. 그러나 뭔가 착착 이루어지지 않고, 내가 원하는 시간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면 마지막에는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십니다. 사명을 주십니다. 분명 말씀 속에서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이렇게 하지 말라. 저렇게 하지 말라” 라고 명하실 때 인간적인 기준이나 내 상황, 내 감정, 내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할 때가 진정 믿음으로 순종해야 할 때입니다. “니느웨로 가라” 라고 할 때 나는 원하지 않지만 주님의 마음을 깨닫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