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1:9-12

9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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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토요새벽 예배에서 9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라는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부르심’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으로 인해 받은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신 거룩한 부르심은 우리가 잘나고, 의로운 삶을 살고, 구원 받을 만한 자격이 충분하기 때문이 아닌 그 반대인 자격이 없는 세상의 기준으로 보아도 지혜 없는 자, 권력 없는 자, 비천하고 멸시 받는 죄인 된 우리를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시어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이나 어떤 행위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뭔가 특별하고, 선한 모습과 행위가 쌓여서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면 우리 스스로 자랑할 만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전혀 그런 선함이 없는 죄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주셔서 믿게 하심으로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 은혜의 부르심을 받아 구원 받은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하나님의 우리를 구원하심은 영원전부터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구원의 뜻과 거룩한 부르심을 분명하다는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임을 10절에 알려 주십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10절에 “이제는”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그 구원이 이제는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 구원의 길을 우리가 환히 볼 수 있도록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은 창세기 첫 인간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는 죄, 즉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에덴 동산, 즉 하나님과 동행하며 교제하며 살던 관계에서 끊어져 쫓겨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구약의 선지서를 보면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죄,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버리고 세상을 쫓는 죄로 인해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구원자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계속해서 주심으로 그들이 절망 가운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 주실 구원자를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기대하고 바랬던 구원자는 강력한 힘을 가진 장군이나 왕이였고 자신들을 경제적인 어려움, 국가적인 어려움에서 건져내어 부유하고 풍족한 육신의 자유와 삶을 누리게 해 줄 정치적이고 권력있는 구원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구원자는 죄와 사망의 권세, 사단과 지옥의 죽음과 형벌에서 영원한 생명, 죄 용서함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셨습니다.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분명히 볼 수 있는 나타나심이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요한사도는 요한복음 1장1절과 14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나타나심, 즉 이 땅에 오신 이유를 10절 후반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썩지 않음을 환히 보이셨습니다”죽음을 폐하셨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죽음은 누구나 두려워하는 인생의 가장 두려워하는 일입니다. 그 죽음은 죄로 인한 저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음을 폐했다는 것은 단지 우리가 육체의 몸을 가지고 이 땅에 70-80년 살다가 죽는 그 죽음을 없앴다는 것이 아닌 죽음 후에 이 땅에서 지은 죄의 심판을 받아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는 둘째 죽임인 영혼의 죽음에서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나타나신 이유, 이 땅에 오신 이유가 바로 그 영원한 죽음의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 오셨고,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대속의 죽으심으로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게 되었고, 삼일 후에 우리의 의를 위해 부활하심으로 우리 또한 죽음 후에 부활하여 의로운 자, 거룩한 자로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게 되는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10절에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타나심으로 환히 드러났습니다”라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 그리스도’라고 부른 것입니다. 구주 즉 생명을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라는 호칭도 ‘메시야’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를 나의 죄를 대속하여 죽으신 구세주요 주님으로 믿기만 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의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알려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이 놀라운 구원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시고 보내셨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11절에 “나는 이 복음을 전하는 선포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단지 아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복음의 사명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복음을 받고 그 복음을 따르고, 그 복음을 전하는 삶은 녹녹치 않는 삶이었습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 온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수많은 고난과 고통, 핍박과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무시를 당하고, 멸시를 당하고, 천대함을 받았습니다. 더 나아가 그 복음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끝없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 모든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16절에서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바울이 그러한 담대한 삶을 살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오, 생명의 주님이요, 구원자가 되심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복음을 믿고 있는 복음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은 지옥의 형벌도 받지 않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게 될 완전한 생명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분명히 알고 믿는다면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아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자랑하며 담대하게 전하는 삶, 따르는 삶,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들은 복음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다. 복음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역자가 되어야 합니다. 구원의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늘 기억하며, 복음을 위하여 사는 일이 무엇인지 기도함 속에 주님께서 주시는 말씀과 인도하심을 따라 복음의 삶에 힘쓰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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