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6:11-15

11 우리는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서,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갔고,
12 거기에서 빌립보에 이르렀다.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 우리는 이 도시에서 며칠 동안 묵었는데,
13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14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15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침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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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사도 바울이 2차 선교 중에 원래 가고자 했던 아시아와 비두니아, 갈라디아 지역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계획에 없었지만 에게해를 건너 더 먼 유럽으로 건너가게 된 첫 번째 도시인 빌립보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제 함께 나눈 것처럼 바울이 항구도시 드로아에 이르렀을 때 밤에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간청하는 환상을 봅니다. 그 환상이 하나님의 부르심이요 그곳으로 가라는 뜻임을 확신하고 바울 일행이 배를 타고 마케도니아 즉 유럽으로 건너갑니다. 네압볼리라는 항구에 도착하여 내륙으로 16km 들어간 곳에 있는 빌립보로 간 것입니다. 빌립보가 어떠한 도시였는지를 12절에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으뜸가는 도시요, 로마 식민지였다”라고 말해 줍니다. 역사적으로 보면 빌립보라는 이름은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필립 2세가 자신의 이름으로 명명했고 그 뒤를 이은 알렉산더 대왕이 야심차게 증축한 도시였고 로마와 아시아를 있는 마게도냐 지방의 큰 도시가 되었습니다.

바울의 일행은 생각지 못한 마케도니아 지역의 빌립보 성에 왔지만 그곳에 유대인들은 만나지 못했고, 유대인의 회당도 찾지 못하고 며칠을 지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던 중 13-14절을 보면 “안식일에 성문 밖 강가로 나가서, 유대 사람이 기도하는 처소가 있음직한 곳을 찾아갔다. 우리는 거기에 앉아서, 모여든 여자들에게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는데, 그는 자색 옷감 장수로서, 두아디라 출신이요, 하나님을 공경하는 사람이었다.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단기 선교를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람들을 만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만날지는 모르지만 복음에 마음을 열고 받아들이고, 그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동참하여 도움을 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평화의 사람”을 만납니다. 어떨 때는 나이 드신 노인이기도 하고, 청년이기도 하고, 어떠할 때는 어린아이가 될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할 사람과 집을 찾을 때 자기 집으로 인도하여 부모님께 소개하고 자리를 만들어 줍니다. 그러면 그들도 외부인인 우리들에게 마음을 열고 전하는 복음을 호의적으로 듣고 받아 믿겠다고 영접하는 열매를 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빌립보 성에 두아디아 출신 루디아라는 여자가 바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평화의 사람이었습니다. 옷감 장수였던 루디아라는 여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에 대해 알고 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그가 바울이 말을 귀 담아 들었습니다. 바울의 말이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었습니다.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죄 사함을 위해 흘리신 대속의 죽음임과 죽음에서 삼일 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구세주요 주님되심을 전한 말이었습니다. 이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이었습니다.

그 복음에 루디아가 귀를 기울였고 귀담아 들어 믿고 영접한 것입니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을 14절에 “주님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여셨으므로, 그는 바울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이 더 이해가 되고 깨달아집니다. 복음을 듣고, 받고, 믿는 것이 주님께서 마음을 열어 주셔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할 영혼들의 마음을 열어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귀담아 들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경험 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 모든 사람들이 다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과 천국의 선물을 받는다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어야 함을 전한다고 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그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복음을 깨닫고 믿을 수 있는 마음을 주실 때 복음을 받고 믿는 축복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주신 것처럼 우리가 기도하는 구원 받아야 할 영혼들, 예수를 믿어야 할 영혼들, 믿음이 회복되어야 할 영혼들의 마음이 열릴 수 있도록 포기하지 않고 힘써 간절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루디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믿은 후에 어떻게 합니까? 15절입니다. “그 여자가 집안 식구와 함께 침례를 받고나서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
루디아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한 행동을 간단하게 알려줍니다. 자신과 그 집안 식구가 다 함께 침례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그녀가 먼저 복음을 듣고 믿었고 그 후에 자신이 들은 복음을 그녀 식구들이 다 들을 수 있게 했고 그로 인해 그 집안 식구들 모두가 믿은 것입니다.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원의 복음, 죄 용서함의 복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음, 천국의 복음을 듣고 믿어 구원을 받았다면 어찌 자기가 제일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전하지 않고, 믿도록 하지 않겠습니까? 루디아가 집안 식구들과 함께 침례를 받았다는 것은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듣게 했고, 믿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과 그 일행, 실라와 디모데를 강권하여 자기 집으로 초대하여 지내게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듯이 루디아를 통해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집니다. 곧 나눌 부분이지만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귀신 들린 여종을 고쳐 주고 그로 인해 감옥에 갇혔다가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으로 감옥문이 열리는 사건을 통하여 빌립보 간수가 복음을 듣게 되고 그의 가정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루디아 가정과 빌립보 간수의 가정을 중심으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고 빌립보 교회가 그래도 여유가 있었던 루디아 집에서 교회로 모이게 되고, 바울의 선교 사역을 돕는 교회로 유럽에 복음을 전파되게 하는 일에 쓰임 받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루디아가 예수를 믿고 침례를 받은 후에 15절에 “나를 주님의 신도로 여기시면, 우리 집에 오셔서 묵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우리를 강권해서,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다”라고 하는 간청과 강권하여 바울을 집으로 데리고 간 것은 의무적으로 마지못해서가 아니라 자진해서 섬겼다는 것입니다. 자진하여 교회와 복음을 전하는 선교의 일에 헌신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 구원 받은 자의 마음과 태도가 아니겠습니까? 교회를 섬기는 일과 복음을 전하는 일에 강권하고 자진하여 헌신하고 섬기는 것이 구원 받은 자의 당연한 모습인 것입니다.

루디아가 그러한 섬김, 그러한 헌신을 자청하고 강권하여 감당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마음을 열어 주셔서 복음을 듣게 하셨고 받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거기에서 머문 것이 아니라 자기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여 믿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열어 바울의 일행을 머물게 하여 복음을 전하는 일에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자신의 집을 교회로 열어 하나님의 나라와 복음을 위해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 루디아의 믿음과 헌신과 자원함이 저와 여러분들의 믿음이 되고 섬김이 되기를 원합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받은 구원과 하나님의 은혜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며 교회를 세우는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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