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사도행전 13:49-52

49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
50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51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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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안식일에 비시디아 안디옥의 유대인 회당에서 갔다가 모여 있는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에게 구약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보내시겠다고 하신 구원자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시고 그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이 바로 죄용서함을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요 은혜임을 전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 복음을 듣고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닌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에게 다음 주 안식일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해 전해 달라고 요청했고 그 지역에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들이 듣고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와서 들으라고 초대했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했고 바울을 시기하여 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 반박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전하는 일에 더욱 힘을 썼습니다. 그 결과를 49절에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져 나갔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받고 믿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아니라 이방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구약의 말씀, 선지자들이 쓴 예언서를 알고, 자신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가 바로 그리스도 즉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이신 구원자임을 거부했습니다. 이방인들이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그들을 내쫓습니다. 그것이 50절의 내용입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였고, 그들을 그 지방에서 내쫓았다”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대부분 힘이 없는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거부하고 더 나아가 그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내어 쫓는 일을 한 사람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 유대인들은 회당에 리더들이었고, 힘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성에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지도층 인사들을 선동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대적하고 박해하고 쫓아냈습니다.

경건한 귀부인들이란 회당 예배에 잘 참석하는 높은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아내가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의 지도층 인사들이란 권력이 있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힘이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선동해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내 쫓았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게 하는 사단의 역사인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가 그 당시에만 있는 것이 아닌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단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 되는 것을 철저하게 방해합니다. 물리적인 박해만이 아닌 모함과 거짓으로 복음을 비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합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수많은 나라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조차 금지하고 전하는 자들이나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사는 미국이나 한국은 물리적인 핍박은 없지만 복음에 대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하고 더 나아가 교회 안에 다툼과 싸움으로 인해 비난과 손가락질을 받게 함으로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해 거부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한 두려운 마음과 창피한 마음, 불편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넣어 주어 복음을 전하는 것을 주저하게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단은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을 막는 것입니다. 믿고자 하는 사람들의 마음 문을 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 한 영혼이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이 힘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 기도함으로 담대하게 전할 수 있는 성령의 능력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는 영혼들이 사단의 세력과 손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힘 있는 고위 지도자들을 선동하여 박해하여 물리적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그들의 지역에서 쫓아냅니다. 그랬을 때 본문 51절을 보면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갔다”라고 말합니다. 발의 먼지를 떨어버렸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하셨던 행동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둘씩 짝을 지어 전도를 보냈을 때 마태복음 10:13-15절에 이렇게 명하십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신과 발에서 먼지를 떠는 행위는 ‘아무 상관 없음’의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이것은 빌라도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 처형을 요구했을 때 그 요구를 들어주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자신이 아무 상관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손을 씻은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신과 발에서 먼지를 털었다는 것은 복음을 전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의 책임이지 우리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는 모습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우리가 반드시 해야할 일이지만 예수를 믿게 하는 것을 끝까지 책임질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받지 않는다고 전도자가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쫓겨나 이고니온이라는 지역으로 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52절을 보면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지금 기뻐할 분위기가 아닙니다. 박해를 받아 쫓겨난 상황입니다. 억울해 하고, 분노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이 기쁨이 충만했다는 것은 그들의 기쁨 뒤에는 성령의 충만이 함께 하는 기쁨이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기뻐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통해서 볼 때 지금 상황은 기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기쁨은 성령님의 충만하심을 통해서 바른 복음을 전파했다는 기쁨입니다. 비록 유대인들의 박해가 있었고 쫓겨남을 당했지만 하나님께서 예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을 인하여 기뻐한 것입니다. 복음을 거부하고 반항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님을 알고 신발의 먼지를 털고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 받을 자들을 향해 갈 수 있었기에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명령을 받고 전도하러 나갔는데 복음을 전하는 중에 여러 가지 이적들을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기뻐하며 돌아와서 예수님께 보고하기를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이 보고를 들은 예수님께서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장 기뻐할 것은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된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증거는 우리가 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기에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증거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기쁨이 충만한 것은 모든 일이 다 잘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의 복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다가 박해를 받은 것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팔복의 말씀 가운데 마태복음 5:11-12절에 “너희가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으면, 복이 있다. 너희는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하늘에서 받을 너희의 상이 크기 때문이다”라고 알려 주십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가장 큰 기쁨은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고 헌신하는 삶이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이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 손해와 희생, 헌신과 충성하는 성도들과 교회를 하나님께서 축복하심을 알고 복음을 전하는 일로 인해 크게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Category말씀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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