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후서 2:24-26
24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25 반대하는 사람을 온화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 반대하는 사람들을 회개시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26 그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악마의 뜻을 좇았지만, 정신을 차려서 그 악마의 올무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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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종이요 일꾼인 디모데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주님의 종으로 어떠한 태도로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24절에 먼저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라고 명령입니다. 다투지 말라고 하신 명령은 14절의 말씀에 주신 “신도들에게 이것을 일깨우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그들에게 엄숙히 명해서 말다툼을 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것은 아무 유익이 없고, 듣는 사람들을 파멸에 이르게 할 뿐입니다”라는 명령과 연관된 말씀입니다.
즉 다투지 말라는 명령은 우선적으로 복음의 진리,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잘못된 구원을 말하는 이단이나 사이비들, 잘못된 가르침을 가르치는 자들과 논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투고 논쟁해 보아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전도를 보내는 제자들에게 명하신 명령 중에 마가복음 6:11절과 마태복음 10:4절에 “어느 곳에서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 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라고 하셨습니다.
진리의 복음은 다투고 논쟁하고 이겨서 믿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전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억지로 열매를 맺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마음의 문이 열린 사람들, 마음에 문이 열린 곳으로 가서 전도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복음의 진리를 거부하며 잘못된 사상을 전하려고 하는 이단들이나 사람들과 다투지 말아야 함과 동시에 어느 누구와도 다투고 싸워려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다툼과 싸우는 논쟁으로 하나됨을 이루고 선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배우자와의 관계, 자녀와 부모와, 회사나 가게, 혹은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툼과 논쟁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에서 다툼을 버리기를 축원합니다.
24절에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라고 라고 명령하십니다.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라고 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온유”는 단순히 부드럽거나 약한 성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고 순종적인 태도를 가지고,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며 타인을 배려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특히 온유는 힘을 가지고 있으나 그 힘을 자랑하거나 남용하지 않고, 오히려 그 힘을 절제하며,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태도를 보이는 모습입니다.
나에게 잘하는 사람, 내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친절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내 감정을 조절하기 어렵습니다. 부드러움과 절제하며 사랑하는 마음으로 잘못된 것을 책망하고 바르게 잡아 주기가 어렵습니다. 내 힘으로 온유함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렵기에 온유를 성령의 열매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절에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온유, 절제”라고 알려주시면서 온유는 성령의 영향력 아래에서 나타나는 열매임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6:1절에서도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어떤 죄에 빠진 일이 드러나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사는 사람인 여러분은 온유한 마음으로 그런 사람을 바로잡아 주고, 자기 스스로를 살펴서,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라고 성령의 충만함 속에 온유함으로 바로 잡아 주고 가르치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24절에 “주님의 종은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하고, 잘 가르치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라고 성령의 열매인 온유함이 있을 때 잘 가르치고 참을성을 가질 수 있다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주의 종은 참을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을성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인내하고 견디는 태도입니다. 신앙의 길에서 때로는 어려움이나 고난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만납니다. 분노하고, 답답하고, 좌절되고, 소망이 없어 보이는 그러한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그러할 때 견디지 못합니다. 우리의 죄성은 참음과 인내함이 없습니다.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되는 말을 내 뱉습니다. 절제하지 못하고 분노를 다 드러냅니다. 참지 못하고 해서는 안되는 행동을 합니다.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고 도망치고, 미워하고, 싸우고 대적하며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그것이 죄성의 모습이요 사단이 주는 마음입니다.
우리의 힘과 결단만으로 참지 못합니다. 잠시는 참을 수 있겠지만 참는 마음을 품고 살면 어느 순간에 억눌러져 있던 분노가 터져버립니다. 우리에게 “참으라”고 명령하신 주님의 명령은 그러한 참음이 아닙니다. 우리의 힘과 결단으로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성령의 충만함 속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과 은혜로 참고 견디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 사람과 상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분노가 아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원망과 불평의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있음을 믿는 믿음과 확신으로 인해 담대하고 고요하게 견디고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참음과 견딤이 온유함으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부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꺾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로 인하여 나타나는 결과가 25절인 것입니다. “반대하는 사람을 온화하게 바로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마도 하나님께서 그 반대하는 사람들을 회개시키셔서, 진리를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온유함과 오래 참음이 반대하는 사람, 잘못된 신앙과 성숙하지 못한 여전히 죄성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로 잡아 주는데 쓰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반대하는 사람, 변화되어야 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받은 자가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일군이요 종이 되었다는 것은 더 이상 나를 위한 삶이 아닌 주님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만을 위한 삶을 산다면 온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참지 않고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의 감동하심과 능력으로 온유하고, 인내하고, 견디고, 참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온유함과 참음을 통하여 변화되고, 구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회개시켜 깨닫게 하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즉 영혼을 구원하고, 그 영혼이 주님께 돌아오게 하시는 일을 우리를 통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 일을 감당하기 위해서 우리가 보여야 할 모습이 바로 다투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 모든 일에 온유함과 인내함 즉 참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의 충만함으로 참된 종의 모습으로 사랑할 때 26절에 “그들은 악마에게 사로잡혀서 악마의 뜻을 좇았지만, 정신을 차려서 그 악마의 올무에서 벗어날 것입니다”라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살아야 함을 기억하며 우리의 온유함과 오래참음을 통하여 사단에게 사로잡혀 살아가던 구원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진리를 깨달아 회개함으로 돌이키며 켜야 할 영혼들이 주님께 돌아오는데 쓰임 받는 종으로 살아야 함을 깨닫고 그렇게 쓰임 받는 종의 모습으로 살아가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