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열왕기하 2:4-5
4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나는 주님의 분부대로 여리고로 가야 한다. 그러나 너는 여기에 남아 있거라.” 그러나 엘리사는 “주님께서 살아 계심과 스승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나는 결코 스승님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함께 여리고로 갔다.
5 여리고에 살고 있는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물었다. “선생님의 스승을 주님께서 오늘 하늘로 데려가려고 하시는데, 선생님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나도 알고 있으니, 조용히 하시오.”
———————————————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하늘로 부르시기 전에 길갈로 부르셔서 구원의 자리를 기억하게 하시고 벧엘로 부르셔서 하나님을 만나고 받은 축복의 약속과 서약을 지키며 나가는 삶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세 번째 여리고로 가라가고 명하십니다. 여리고는 성경에서 여러번 등장하는 우리에게 익숙한 도시입니다. 요단강을 건너 첫 번째 정복한 가나안 땅의 성이 바로 여리고 성이었습니다. 여리고는 예루살렘으로 가기에 꼭 지나가는 도시이고 동서남북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여리고는 예수님과 연관된 많은 사건이 있었던 곳이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나타난 도시가 여리고 성입니다. 또 뽕나무위로 올라간 삭개오를 예수님이 만난 장소도 여리고입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 바디메오가 눈을 뜬 곳도 바로 여리고입니다. 여리고는 예수님을 만나는 사람들의 삶이 변화된 장소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예배 가운데 하나님을 만난다면 그 다음에 나타나야 할 모습은 변화된 삶, 변화된 모습입니다. 진정 구원을 받고, 하나님을 만난다면 변화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과 믿은 후의 삶, 구원을 받기 전과 받은 후의 삶, 하나님을 만나고 순종하는 삶에는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은 길갈이 있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약속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벧엘이 있다면 돈에 사로 잡혀 세리로서 도둑질을 하며 돈의 노예가 되었던 모습에서 회개함으로 착취한 것을 배로 돌려주겠다는 변화된 결단과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살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만나고 눈을 뜬 것처럼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서 그동안 보지 못한 영원한 천국과 영원한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에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복과 영광을 위해 하나님을 위해 사는 새로운 삶으로 변해야 합니다.
여리고는 사실 풍요한 세상의 도시였습니다. 풍요한 곳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세상의 풍요함으로 인해 참된 구주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살아계신 예수님을 경험하지 못하고 관심없이 살아갔습니다. 단지 호기심으로 잠시 예수님을 보기 위해 나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던 여리고에서 진정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고 고침을 받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도 그런 여리고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진정 구원 받아 날마다 주님을 예배하며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주님의 뜻대로 동행하며 주님을 만나는 체험속에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는 변화된 삶이 없이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안다고 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안다고 하고, 기도도 하지만 속사람이 전혀 바뀌지 않았던,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난 사람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입니다.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세상을 의미하는 여리고 성은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어떤 제사장이 보고 피하여 그냥 지나칩니다. 제사장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을 예배하며 예배를 담당하며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누구보다 믿고 알고 섬긴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레위인 역시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갑니다. 레위인 역시 하나님을 알고 믿고 섬긴다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변화 받지 못한 형식적이고 종교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사마리아인은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며 쓰러져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어떻게 합니까? 누가복음 10:33-35절을 보면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측은한 마음을 갖습니다. 가까이 가서 그 상처를 치료하고 자기 짐승에 태어 돌볼 수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치료 비용을 기꺼이 지불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을 믿는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사람의 변화된 삶이란 이런 삶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여리고 성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첫 번째 성이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모든 사람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을 때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주고 이 성이 하나님께서 넘겨주실 것을 믿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열어 주었던 기생 라합이 있었습니다. 여러분의 여리고는 어떻습니까? 하나님을 향해 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의 풍요와 가치관, 방법대로 살아가는 곳입니까? 아니면 진정 구주 되신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만나고 경험하여 놀라운 변화와 능력을 경험하는 축복의 장소입니까?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있는 곳이 하나님의 능력과 기적, 축복을 경험하여 변화되는 여리고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 성벽이 무너지고 멸망당하는 여리고 성이 아니라 그 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참된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축복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으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변화와 축복의 삶을 살아가는 변화되는 여리고가 되기를 기도하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