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 디모데전서 1:3-4
3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4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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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영적인 아들이라고 부르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이미 나누었지만 디모데는 바울이 2차 선교 중에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고 그에게 사람들에게 인정 받는 참된 믿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이 있음을 보고 합류할 것을 권면했을 때 동참합니다. 그리고 바울에게 꼭 필요한 동역자가 됩니다. 특별히 바울과 함께 복음을 전하여 세워진 교회인 빌립보 교회, 그리고 에베소 교회, 그리고 고린도 교회 등 여러교회를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역을 감당합니다.
그러한 디모데에게 로마 감옥에 갇혀 있던 바울이 성도들을 잘 감당하라고 권면한 내용이 담긴 편지가 디모데전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을 받고 믿어 교회를 이루어 생활하고 있는 성도들, 즉 우리들에게 바른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권면한 귀한 말씀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나의 죄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이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임을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어 구원 받은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시오 하나님이심을 믿고 삶의 주님으로 믿고 따르기로 결단한 것은 놀라운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을 통하여 죄 용서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이제는 새로운 신분, 새로운 생명, 새롭게 태어났기에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 뜻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와 성도된 우리들이 힘써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도록 공격합니다. 유혹합니다. 잘못된 길을 바른 길처럼 보이게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남겨 두었다고 3-4절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마케도니아로 떠날 때에, 그대에게 에베소에 머물러 있으라고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그대가 거기에서 어떤 사람들로 하여금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못하도록 명령하고,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과 말씀을 전하다가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갈 때 디모데를 에베소 교회에 머물러 있으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에베소 교회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성도들로 잘못된 신앙에 빠지게 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 시대에도 이미 이단 사상이 많았습니다. 이단이란 하나님을 말하고, 구원을 말하고, 말씀을 말하지만 잘못된 해석과 믿음을 전하는 참된 복음과 다른 사상들입니다. 그 당시 에비온 (Ebionites) 파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을 살펴 보면서 늘 부딪혔던 율법주의에 가까운 이단사상입니다. 즉 구약의 율법 준수를 강하게 주장하고 율법과 유대인의 전통 위에 기독교를 이식시키려고 했습니다. 즉 여전히 율법과 전통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율법주의입니다. 바울의 사도성을 부인했고, 유대교를 배신한 배반자라고 불렀고 바울의 서신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합니다. 한 마디로 유대교적 율법주의자들로, 기독교의 유대주의화를 주장했던 이단이었다.
또한 영지주의(Gnosticism) 가 있었습니다. 영지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앎, 깨달음, 비밀스런 지식을 소유한 사람’ 등의 뜻을 가진 그노시스(gnosis)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즉 지성적인 이해를 넘어선 신비한 영적인 지식을 얻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단입니다. 물질적 창조를 악한 것으로 간주했기에 우리의 육신은 악하다고 가르쳤고 구원도 오직 영이 받는 것으로 가르쳤습니다. 당연히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 죽음이나 부활도 실제적인 것이 아닌 영적 현상이라고 가르쳤고 예수님을 하나님이나 구원자가 아닌 영지를 전하기 위해 온 계시자 정도로 가르쳤습니다.
더 나아가 몬타누스주의(Montanism) 라는 예수님의 재림과 새 하늘과 새 예루살렘이 이 땅에 도래할 것을 강조하여 금식, 엄격한 규정들, 그리고 결혼까지 금하는 금욕주의를 강조하며 임박한 종말의 두려움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이 시대 나타나는 다미 선교회 같은 이단이 있었습니다.
이 시대에도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 예수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다고 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잘못된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에 빠집니까? 마찬가지로 초대 교회와 디모데가 목회하고 있는 에베소 지역에서도 그러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미 수많은 이단들, 수많은 거짓 선생들이 교회에 침투해 있습니다. 바른 교훈보다도 더 많은 잘못된 교훈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바른 교훈을 따르기가 어려운 세상에 되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바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바른 교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 죄가 무엇인지, 오직 예수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다는 것, 우리가 믿고 따라야 할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배우는데 힘써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우리에게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바로 알아서 바른 교훈을 따라야 합니다.
이 시대 다른 교훈이란 단지 이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내 생각과 내 경험, 내 감정, 내 판단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고, 거부하는 신앙, 세상과 하나님께 양발 걸치고 상황 따라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다른 교훈, 세상을 따르는 잘못된 신앙에 빠지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 분별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바른 교훈을 따르고 있는지, 진정 좁은 길, 생명의 길, 십자가의 길, 복음의 길을 따라 가고 있는지 돌아보아 바른 교훈을 따르는 참된 믿음에 굳건히 서기를 축원합니다.
4절을 보면 “신화와 끝없는 족보 이야기에 정신을 팔지 못하도록 명령하려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들은 믿음 안에 세우신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기보다는 도리어 쓸데없는 변론을 일으킬 뿐입니다” 라고 하십니다. 그 당시 그리스 사상과 철학이 전 세계를 사로 잡고 있었기에 사람들은 그리스 신화 즉 이방신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야기와 철학에 빠져 살고 있었습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사상과 가치관, 흐름을 따르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단은 믿지 않는 자들은 이미 그의 손에 있기에 믿는 자들을 더욱 삼키려고 애를 씁니다. 창세기에 에덴 동산에 있는 아담과 하와를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벗어나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것이다” 라고 유혹했던 것처럼 여전히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살라고 유혹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이 옳은 길이고 좋은 길이라고 유혹합니다. 세상이 흐르는대로, 세상이 돌아가는대로 편하게 따라 가라고 유혹하고 그것이 옳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세상의 방법을 따르고, 세상 흐르는대로 살고, 넓은 길, 하나님의 뜻과 명령이 아닌 내가 하나님이요 주인으로 살아가면 그 결과는 결국 다툼과 싸움, 분열과 변론으로 망하는 길입니다.
이 시대가 말세입니다. 점점 더 바른 교훈이 아닌 하나님의 진리와 말씀과 뜻에서 벗어나게 하는 사단의 역사와 흐름이 강하게 흐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른 교훈을 따르기 위해서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 위에, 믿음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참된 복음과 진리의 말씀을 바로 배우고 지켜 나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